KISTI의 과학향기
10번만 흔들어 주세요, 젤리탄산음료의 비밀 본문 이미지 1
“아휴, 더워!”
여름처럼 더운 일요일 집에 들어온 태연은 냉장고부터 열었다. 바로 눈에 띈 것은 형형색색의 음료수캔. 태연은 지체 없이 캔 뚜껑을 열고 내용물을 들이켰지만 음료는 입술을 간신히 적실 정도만 흘러나왔다.
“비었나?”
분명히 캔은 음료수가 가득 들어있어서 묵직했다.
“뭔가 들어있는데? 얼었나?”
캔을 흔들면 분명 안에서 무언가 출렁거렸다. 태연은 슬슬 짜증이 몰려왔고, 아빠를 불러 답답함을 해결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빠. 캔에 음료수가 들어 있는 것 같은데 안 나와요.”
아빠는 기다렸다는 듯 벌떡 일어나 냉장고에서 새 캔을 꺼내 마구 흔들었다. 처음부터 이럴 생각이셨던 것 같다. 태연은 불안했다. 거실을 음료수로 범벅하고 싶지 않았다. 탄산음료를 흔들고 나서 뚜껑을 열면 사방으로 음료수가 튀는 법이다.
“아빠, 그럼 뚜껑 딸 때 넘쳐요.”
“괜찮아. 이 음료는 흔들어야 마실 수 있어.”
아빠가 뚜껑을 열었다. 태연은 흠칫 놀랐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태연이 음료를 한 모금 마시자 부드러운 젤리와 톡 쏘는 탄산이 입안에 맴돌았다. ‘와우!’ 젤리를 무척 좋아하는 태연의 입맛에 안성맞춤이었다. 목을 어느 정도 축이자 호기심이 고개를 들었다. 대체 이 음료의 정체는 뭘까.
“신기하지? 나도 처음에는 사오자마자 미지근할 때 마셨었는데 그때는 탄산도 적고 물 같아서 별로 맛이 없었어. 확실히 온도를 낮춰 시원하게 하니까 젤리도 탱글탱글하고 탄산도 많네.”
“왜 차갑게 만들어야 하는데요?”
“이 음료는 젤리 안에 탄산을 가둬 만든 것인데 온도가 높아지면 그물 형태로 이뤄진 젤리의 분자구조가 느슨해져서 탄산을 제대로 붙잡을 수 없어. 그래서 젤리를 차갑게 만들어야 한단다.”
“제가 처음 냉장고에서 꺼냈던 음료를 마실 수 없었던 이유도 젤리가 단단하게 굳어 밖으로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군요.”
“그렇지. 그래서 캔에 친절히 ‘세게 10번 흔든 뒤 마시라’는 안내 문구가 쓰여있잖니.”
“그런데 왜 10번일까요?”
“캔을 흔드는 이유는 반고체 상태인 젤리를 서로 부딪혀 깨뜨리기 위해서야. 하지만 너무 많이 흔들면 젤리가 잘게 부서져 먹을 때 물과 별 차이가 없겠지. 특히 태연이는 젤리의 탱글탱글 씹히는 맛을 좋아할 텐데 말이야.”
“맞아요.”
“젤리를 씹으면 젤리가 깨지면서 갇혀 있던 탄산이 밖으로 빠져나온단다. 탄산엔 과일향을 내는 분자가 들어 있어 음료를 마시기 전 후각을 자극해 입맛을 돋우는 역할도 해. 탄산음료를 마시기 전 톡 쏘는 향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무척 매력적이겠지.”
“와! 그럼 우리 딸기 맛이 나는 젤리 탄산음료를 만들어 봐요.”
“아빠도 그러고 싶지만 아직 이런 음료를 집에서 만드는 방법은 없어. 과일맛 젤리는 차갑게 식으면 말랑말랑하게 굳는 ‘한천’이나 ‘젤라틴’에 과일주스를 첨가해 만들 수 있겠지. 하지만 과일주스 대신 탄산음료를 사용하면 젤리 속에 들어 있는 탄산음료가 젤리에 구멍을 만들어 버리니 말랑말랑하지 않고 푸석푸석한 젤리가 만들어질 수밖에 없어.”
“조금 푸석거려도 좋아요. 만들자마자 먹으면 되잖아요?”
“젤리탄산음료는 제조사에서 젤리 자체를 그물형 분자구조로 만든단다. 그리고 특수한 고압장치를 이용해 젤리 안에 높은 압력으로 탄산을 가둬 둔 거지. 집에서 한천이나 젤라틴으로 그물형 분자구조의 젤리를 만들 수는 없지 않겠니?”
“그렇구나. 그럼 사다 놓은 음료를 냉장고에서 꺼내 마실 수밖에 없겠네요.”
“그렇단다. 참. 젤리탄산음료는 차갑게 식혀두지 않으면 캔 뚜껑을 열 때 음료가 넘칠 수도 있으니까 주의하렴. 온도가 높아지면 젤리의 분자구조가 느슨해지니까, 이때 음료수에 들어있던 탄산도 전부 빠져나간단다.”
“알았어요. 이번엔 꼭 10번 잘 흔들어서 하나를 더···.”
“태연아, 그래도 집에 들어오자마자 탄산음료 2개를 연속으로 마시면 안 돼. 지난번에 아빠랑 약속한 ‘키 크기 프로젝트’ 실천에 방해가 되지 않겠니?”
글
전동혁 -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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