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엔 당연하게 여겨졌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은 것들이 있다.

가령 TV 드라마에서 밥상을 뒤엎는 아버지. 1990년대까지도 가끔 등장했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 장면에 익숙함보다는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이 더 많아졌기 때문일 것이다.

프로야구에서 오랜만에 과거 자주 봤던 장면이 나왔다. 김성근 한화 감독은 10일 대전 홈 경기에 앞서 취재기자을 앞에 두고 한 선수를 공개 질책했다. 허리가 아프다는 선수를 거론하며 “언론에서 잘 한다 잘 한다 해주니까 진짜 잘 하는 줄 안다. 하루 쉬면 자기 자리 빼앗긴다는 걸 알아야 한다. 하루 쉴 정도면 어제도 나갈 수 있었다”고 했다. 전날 이 선수는 선발 라인업에서 빠졌고, 경기 후반엔 더그아웃 앞에서 배트를 돌렸다. 하지만 출장 기회는 없었다. 김성근 감독은 공개 질책을 한 10일엔 교체 멤버로 두 타석에 그를 내보냈다. 김 감독이 일종의 ‘충격 요법’을 썼는지도 모르겠다.

프로야구단에서 언론을 가장 자주 상대하는 직책은 홍보팀장과 팀원, 그리고 감독이다. 언론을 잘 다루는 감독도 있었다. 언론을 통해 선수단, 혹은 특정 선수에게 메시지를 전하곤 했다. 감독의 의도를 감 잡고 거론된 당사자의 사정을 한 번 더 확인하는 건 야구 기자의 ‘스킬’이기도 하다.

하지만 언론을 통해 특정 선수를 공개질책하는 건 최근에는 드문 일이다. 프로야구가 발달함에 따라 선수단 통솔은 감독에게 어려운 일이 됐다. 밥상을 뒤엎는 식의 가부장적 리더십은 점점 설득력을 잃어 갔다. 선수와 갈등을 빚는 감독은 다른 구단에도 있다. 그래도 감독이 선수의 잘못을 미디어에 알리지 않는다. 김성근 감독처럼 언론을 이용해 반론권 없는 선수를 일방적으로 비난하는 건 드문 일이다.

지난 달 하순 한화의 한 선수가 감독으로부터 질책을 받고 경기 전 땡볕에 30분 가량 서 있었다. 한화 구단은 "오해가 있었다"고 해명했지만,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당시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에는 “당신들은 뭘하고 있느냐”는 항의가 빗발쳤다. 그러나 선수가 침묵을 지키면 선수협회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최근에는 “프로야구 선수는 산업재해 처리가 되나요”라고 푸념한 한화 선수도 있었다.

세 사례는 모두 선수에 대한 육체적, 정신적 혹사와 연관돼 있다. 김성근 감독은 지난달 30일 “예전에는 감독이 어떻게 하든 터치하는 사람이 없었는데 요새는 난리가 나지 않나”고 언론에 불편한 심사를 드러냈다. 기억력이 감퇴한 모양이다. 김 감독 자신이 오래 전부터 “언론으로부터 유독 공격을 많이 받았다”고 말해왔다. “다른 구단 담당 기자들이 타 구단 감독인 나를 공격했다”는 식으로 음모론을 슬쩍 끼워 넣곤 했지만, 그때도 김 감독이 자주 공격받았던 이유 중 하나가 혹사였다. 당시에는 선수 혹사에 대한 경각심 수준이 지금보다 낮았는데도 그랬다.

프로야구 환경은 달라졌다. 더 이상 혹사와 강압적인 리더십을 예전처럼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 현역 선수 은퇴 뒤 심리학을 공부하겠다는 이들을 여럿 만났다. “내가 현역 시절 정말 필요로 했고, 아쉬웠던 것이기 때문”이라는 이유였다. 선수들부터 달라졌다. 김성근 감독이 달라지지 않았을 뿐이다.

지금 프로야구 팬의 주축은 30대와 40대 남성이다. 김 감독이 최근 한 말처럼 어느 나라 사람들보다 혹사라는 단어와 가까운 세대다. 이들에게 지금 김성근의 한화 선수단 운영은 어떻게 다가올까. 20대에서 10대로 갈수록 야구 팬의 비율은 줄어든다. 선수를 공개 모욕하고, 땡볕에 세우고, 직업 수명에 위기를 느끼게 하는 감독을 멋있다고 느끼지 않을 세대다. 한화그룹은 올해는 '나는 불꽃이다' 광고를 내보내지 않고 있다.

최민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