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세(大勢)라는 말 뜻을 사전적으로는 "일이 진행되어 가는 결정적인 형세, 또는 큰 권세"라고 해석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의 정치인들이 저마다 다수주의에 의한 대세가 되기 위해 치열한 세몰이 싸움(선거전)을 치르게 되었습니다. 이런 세몰이 싸움에서 우승하면 나라의 통치권을 갖게 됩니다. 그런데 이런 세몰이 싸움은 들짐승의 습성에서 비롯된 것일 뿐, 정당한 사람들의 행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닙니다. 들짐승의 습성은 법(아비, 주인)이 없는 상황하에서 각기 서로 다투어 이기는 자가 진 자들 위에 법 행세하는 짓이고, 사람의 행위는 아버지 한 분의 뜻(이상, 법)을 기준하여 그 뜻을 가장 잘 따르고 섬긴 자를 아버지 대신 일하도록 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짐승화된 사람들이 대세라고 하는 말뜻과 순수한 사람들이 대세라고 하는 말뜻이 전혀 다릅니다. 짐승화된 사람들의 대세관은 주로 법(하나님, 부모, 주인)이 없는 상황하에서 전개된 세몰이 싸움에서 승리한 자가 대권을 잡는 것이며, 순수한 사람들의 대세관은 뚜렷한 법(하나님, 부모, 주인)을 근거로해 선의의 경쟁으로 가장 법에 가까운 사람을 법(하나님, 부모, 주인)을 대신케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어느 쪽 대세관으로 살아가느냐에 따라 자신을 들짐승 뱀(사단)의 자손 됨을 자인하게 되고 또 하나님의 자녀로 자인하게 되는 결과에 이르게 됩니다.
예수님이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서 밤낮 사십 일을 주리었습니다. 사람의 육체를 입고 아무 것도 먹지 않고 생존할 수 있는 최후 시간대에 이르게 되자 간교한 들짐승 뱀, 곧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가로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마태복음 4:8~9)고 유혹하였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이,"사단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마태복음 4:10)고 하시며 마귀를 꾸짖었습니다.
예수님이 자기를 시험하는 마귀를 이 같이 질책한 것에 대해서 세상 사람들이나 대부분의 기독인들이 예수님은 세상 부귀영화나 권세 같은 것들에 대해서는 초월하시고 다만 뜻도 내용도 모르는 허황된 자비심에 이끌리어 사는 여느 성자(聖者)로만 취급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인간 세상의 부귀영화나 권세 같은 문제에 대해 초월하셨기 때문에 그와 같이 사단을 책망한 것이 아니라, 세상의 부귀영화나 권세 같은 것들을 취할 수 있는 방법이 마귀의 거짓된 사상이나 권모술수나 반역질 따위에 있지 않고 그 모든 것들의 주인되시는 하나님을 신령과 진정으로 공경하고 섬기는 방법으로만 취할 수 있기 때문에 사단을 그 같이 꾸짖었습니다.
마귀가 가르치는 수법으로 취할 수 있는 권세는 한낱 조폭 같은 사적(私的)인 어두운(불의의) 권세에 불과하나,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이 가르치신 방법으로 취하는 권세는 빛 같이 뚜렷한 공적(公的)인 권세입니다. 마귀가 자신에게 무릎 꿇는 자에게 줄 수 있는 권세란, 에덴동산에서 사람들을 속여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받지) 못하게 하고 반역한 도적의 권세입니다. 즉 마귀가 자기를 지으신 하나님을 잘 섬김으로 받은 공적인 권세가 아니라,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준 권세를 마귀가 사람들로 하여금 받지(믿지) 못하게 하고 그 대신 자신의 반역질에 가담한 자들에게 주는 도적의 권세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는 짓은, 곧 하나님이 주시고자 하는 분복을 받지 않겠다는 짓과 같습니다. 사단이 이런 이치를 알기 때문에 에덴동산에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지 못하게 하고 그 대신 자신의 말을 믿게 하여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준 분복을 버리도록 하였습니다. 이런 내막을 알고 계신 예수님에게 사단이 접근해 에덴동산에서 하든 수법대로 하나님이 주신 계명보다 사단의 수법을 사용해 천하를 평정하고 지상 낙원을 이루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말 같지도 않는 헛된 소리를 일축해 버리고 도리어 사단에게 하나님을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고 호통쳤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았기 때문에 그의 성품마저 닮아야만 참된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자신의 외형을 닮게 하는 일까지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책임하에 있으나, 하나님의 근본 실체이신 성품을 닮는 일에 대해서는 사람들에게 자유를 주어 스스로 선택케 하였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스스로 분발해 하나님의 성품을 사랑해 갖지 않고 도리어 반역자 마귀의 습성을 가지려 하였습니다. 마귀는 하나님이 주신 자유를 갖고 하나님을 배신하고 대적하는 일에 악용하였으나, 예수님은 그 자유로 몸과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하나님께 충효하는 일에 선용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이 같은 충효가 바로 개인이나 가정이나 교회나 사회나 국가를 이끌 수 있는 기초적인 대세(大勢)이며, 이런 기초적인 대세는 반석과 같아서 그 위에 무엇을 세우든 난공불락의 집(가정, 교회, 나라)들로 세워집니다. 이런 기초적인 대세를 갖추지 못한 자들은 모두 마귀와 같은 모래성만 쌓습니다. 모래 위에 세운 집과 성과 나라는 모두 하나님의 진노 앞에 거미줄 같고 토성 같은 것들로써 자기 개인의 육신부터 시작해 가정과 교회와 기업과 사회와 나라를 온통 혼돈의 도가니로 몰아 넣습니다. 그래서 세상이 난장판이 되면 또 다른 도적과 강도와 조폭들이 등장해 자신들이 새롭게 개발한 주의주장이 유일한 대안이라고 선전선동합니다.
예수님이 이 같은 행태로 멸망해 가는 인간들을 구출하려 하였습니다. 난세를 평정하는 대부분의 영웅들이 천하대세를 읽는 눈이 남다르게 정확하고 밝듯, 예수님 또한 마귀의 그릇된(어두운) 대세관에 매여 이전투구(泥田鬪狗)하는 세상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 모든 것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충효하는 일로 천하대세를 삼았습니다. 그러나 마귀의 대세관에 중독된 세상 사람들은 예수님의 대세관을 한낱 종교 선전으로 취급해 무시하였습니다. 마귀의 대세관은 재물과 권세의 힘으로 만민들을 제압하여 세상에 평화를 정착시키려는 것이고, 예수님의 대세관은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을 불신한 세상 사람들의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의 불을 끄는 일입니다.
예수님의 대세관이 세상 죄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진노의 불을 끄는 일이기 때문에 이 진노의 불을 끌려면 먼저 예수님 자신이 하나님이 뜻하시고 원하시는 대로 순종하는 아들이 되어 그를 기쁘시게 하는 일이어야 합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도 자신을 자기 목숨보다 더욱 사랑해 섬기는 아들의 소원대로 모든 부탁을 다 들어주시기 때문에 예수님이 죽음을 불사하고 하나님이 시키시는 모든 말씀을 다 순종해 그를 기쁘시게 하였습니다. 그리한 후 하나님께 나아가 세상 죄인들에게 내리고자 한 모든 고통과 재앙을 아무 잘못도 없는 자신이 다 짊어지고 희생당하였으니, 앞으로 자신의 그 같은 희생 정신을 믿고 따르는 모든 사람들의 죄악을 용서해 달라고 빌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자신을 그토록 사랑한 아들의 소원을 들어주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과 또 그들과 관련된 모든 이웃들의 고통과 재앙을 사해 주셨습니다. 이것이 세상의 죄인들을 살리고 구원하는 예수님의 대세관으로써 그로 말미암아 생존하게 된 오늘날의 사람들은 모두 그 같은 대세관(희생정신)으로만 자신과 이웃을 구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이 같은 천하대세관은 정확하고 밝아 세상에 그 어떠한 흑암한 난제와 재앙도 예수님을 진실히 믿고 따르는 자들 앞에서는 두 손 들고 항복하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란, 예수님의 대세관으로 자기 당대의 모든 난제와 재앙들을 풀어나가는 사람이란 뜻입니다. 즉 개인적, 가정적, 교회적, 사회적, 국가적인 온갖 난제와 재앙들을 해결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목자는 거짓되어 뭇 양 떼들에게 헛된 것을 가르치고 소원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즉 개인이나 가정이나 교회나 이웃들이나 사회나 국가가 당면한 난제와 재앙들의 근원이 모두 재물의 부족과 외세의 준동 때문이라고 하여 물질적인 축복과 함께 강대국(고래)들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새우(마귀) 같은 잔머리만 하나님께 달라고 요구할 뿐, 당대 죄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진노의 불을 끄기 위해 예수님처럼 하나님께 충효하려 하지 않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에게 예언하는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말라 그들은 너희에게 헛된 것을 가르치나니 그들의 말한 묵시는 자기 마음으로 말미암은 것이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온 것이 아니니라 항상 그들이 나를 멸시하는 자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평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며 또 자기 마음의 강퍅한대로 행하는 모든 사람에게 이르기를 재앙이 너희에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하였느니라"(예레미야 23:16~17) 하심 같이, 오늘날의 목자들이 예수님의 대세관으로 하나님께 충효하는 것을 선보이지 않고 다만 물질의 풍요와 세상 죄인들에게 인기 있는 종교인이 되려고 아첨하기 때문에 그들을 닮은 정치인들 또한 국법에 충성하는 것을 선보이지 않고 오직 물질적인 풍요와 김일성 일가들에게 아첨 잘하는 것으로 이 민족을 구원하려 합니다.
이 나라의 정치인들이 자국민을 노예로 삼고자 하는 김일성 일가들의 악행을 꾸짖어 응징하지 않으면, 자국내에 그와 같은 범법자들을 엄단할 수 있는 기강이 모두 무너져 버립니다. 국리민복에 근본적으로 악영향력을 끼치는 이 같은 범법자들을 대범하게 용납하는 것을 오늘날 대한민국 정치인들이 천하대세로 취급하고 어느 누가 김일성 도당과 그와 유사한 범법자들에게 아첨 잘 하느냐 하는 일로 서로 경쟁하고 있습니다. 마귀는 재물의 풍요와 막강한 무기로 남북통일을 이룩하도록 충동질 하나, 예수님은 하나님을 불신하고 불순종하는 악인들을 진멸시키고자 하는 하나님의 맹렬한 진노의 불을 끄기 위해 자신이 먼저 하나님께 충효하는 아들이 되었습니다.
오늘날의 정치인들이 예수님의 정확한 대세관으로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와 정직과 거룩함을 비웃어 대적하는 김일성 일가들의 악행(마귀짓)을 예수님처럼 꾸짖어 물리치려 하지 않고, 도리어 그들과 화목하는 것이 한반도 거민들의 유일한 평안이고 희망이고 살길이라고 버젓이 공개적으로 선전선동합니다. 그리고 어느 누가 그 일의 적임자냐고 경쟁하는 것이 오늘날 자유대한민국이라고 하는 나라의 그 잘난 대선(선거전)입니다. 어런 선거전에 의해 탄생되는 대통령의 안목은 천하대세에 심히 어두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국운을 거는 어리석은 짓을 삼가하고, 지금부터 자기 한 사람이라도 예수님의 참된 대세관으로 하나님께 순복하는 아들이 되려 하십시오.
이 나라 이 민족에게는 천하대세에 심히 눈먼 어리석은 정치인(기독인)들 뿐이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그 어떤 기대와 희망도 걸지 말고, 이제부터는 자기 한 사람이라도 예수님처럼 하나님께 충효하는 아들이 되어야만 자신과 이웃과 나라를 참되게 살릴 수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다수주의 대세관으로 이 죄악 많은 세상을 살펴보면 절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자기 한 사람이라도 예수님처럼 사단(죄악)을 이기는 믿음(씨앗)을 지니게 되면, 하나님이 그에게 소망을 두고, 그의 부탁을 들어주고, 그의 가정과 교회와 이웃과 사회와 나라를 온갖 난제와 재앙들로부터 구출해 주십니다.
참된 애국자는 다수주의 원칙(대세관)에 입각한 죄인들의 천방지축하는 꼴을 보고 절망하지 않고, 오직 예수님처럼 자기 한 사람이라도 이 시대의 죄악 사상을 이기는 믿음을 지니려고 전심전력을 다해 하나님께 충효하려 합니다. 자기 한 사람이라도 진리(공의)로써 세상 죄악을 이기는 일에 국운(목숨)을 걸고 싸우십시오. 그리하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다윗처럼 크게 기뻐하고 또 그를 중심 삼아 세상의 잡초들을 하나 둘 제거해 주시고 나라와 민족을 반석 위에 세워 주십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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