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MB아바타입니까?
안철수가 "내가 MB아바타입니까"라고 언성 높일 때 셀프 네거티브라며 조롱하는 사람이 많지만 저는 계산된 선거전략이라 보았습니다. 지금 안철수는 소위 보수표(그러나 보수와는 거리가 먼)를 끌어당기느라 주적론에 편승하고 햇볕정책도 거부하는 무리수를 남발하고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남의 보수 유권자들이 보기에는 "박지원 아바타"거든요. 문재인보다 더 보기 싫은 박지원 아바타를 뽑아줄 일이 없거든요. 그런데 "내가 MB아바타입니까"라고 먼저 이야기함으로써 "박지원 아바타는 아닙니다"라고 말하려는 속내를 드러낸 것이거든요.
문재인 후보가 점잖게 대응해줬는데, 사실 거기서 안철수에게 "우리 안 후보님은 박지원 아바타잖아요"라고 해줬으면 게임 끝이었을 겁니다. 그 다음에는 홍준표가 이어받아서 관뚜껑까지 닫아줬을 겁니다. 물론 선한 방법은 아닙니다. 이 또한 지역감정의 연장선에 있는 전략이므로 문재인 후보가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을 잘 했다고 생각은 합니다만, 아무튼 "골로 보낼" 기회를 놓친 건 좀 아깝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골로 보낸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겁니다. 상왕 나리.)
* 영남을 위한 단일화
이 일이 있고나서 바른당을 시작으로 일제히 단일화 이야기가 나옵니다. 바른당에서는 홍,안,유 3명의 단일화를 사실상 결정했습니다. 유승민이 반대한다고는 하지만 꼴찌 지지율을 가지고 버티는 것에 한계가 있을 것입니다. 결국 유권자가 판단할 문제인 만큼 여론이 단일화를 원한다고 나오면 유승민도 더 버티기는 힘들겠지요. 홍준표는 안철수 빼고 유승민 등과는 단일화 가능하다고 나옵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유승민 사퇴하면 그 표는 안철수에게 간다고 단일화 관심 없다더니 말이 바뀌었죠.
왜 하필 이 시점부터 단일화 이야기가 나오느냐가 중요합니다. "내가 MB아바타입니까"라며 안철수가 영남 유권자에게 추파를 던졌거든요. 홍준표는 자기 텃밭인 영남을 치고 들어오니 견제가 필요하고, 바른당은 이러나 저러나 권력의 중심에서 멀어지게 생겼으니 안철수가 영남에 추파를 던지는 이상 안철수까지 묶어서 묻어가려고 하는 것이겠지요. 마침 손학규도 3자 단일화의 여지를 남기면서 대꾸를 해줍니다.
박지원은 반대하는 뉘앙스의 인터뷰를 했더군요. 당연합니다. 지금 박지원은 호남의 마크맨 역할입니다. 자유당과 단일화한다면 호남 유권자 다 뚜껑 열리겠죠. 박지원이 아니라고 쉴드 치면서 다독이다가 "국민이 원해서 어쩔 수 없다"며 단일화를 추진할 여지를 남기는 것이라 보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자유당보다 문재인이 더 나쁘다"는 생각을 갖게 만들어야 하므로 앞으로 박지원은 호남을 돌면서 오로지 문재인만 까댈 것입니다. 일일이 연설문을 들어볼 수 없어 답답하지만 "가짜뉴스"도 많이 섞일 것이라 예상합니다.
현재 패색이 짙은 수구세력에게는 영남의 반민주당(반문재인) 정서에 기대는 것 외에는 뾰족한 수가 없습니다. 그러려면 그 정서를 대표할 주자는 한 명만 필요합니다. 지금 논의되는 단일화는 결국 그 한 명을 고르기 위한 수순입니다. 당장은 안철수가 지지율이 높으니 안철수로 단일화 될 확률이 높을까요? 저는 홍준표가 더 가능성 높다고 봅니다. 빠른 시일 내에 영남의 반민주당 정서를 결집하려면 그 주인공은 영남에 조직을 갖고 있는 자유당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 단일화가 무서운 이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단일화는 호남의 반발을 불러 국민의당을 곤경에 빠트릴 것입니다. 하지만 3자 단일화 중 밀실에서 "딜"을 주고 받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가령, 자유당이 대통령할테니까 바른당은 다시 들어와서 원내대표 하고 국민의당은 총리를 주겠다는 식으로 나눠먹기가 가능하죠. 국민의당에 속한 호남패권주의자들도 결국 자기들에게 권력을 준다면 호남 유권자의 민의를 거스르고 깽판에 동참하고도 남습니다. 대신 정동영, 천정배 등 소수의 의원들은 그 깽판에 동참하지 않고 탈당할 확률은 있겠네요.
하지만 단일화가 무서운 것은 이런 야합이 가능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단일화하더라도 북풍 조작이나 부정선거 등의 이슈가 없다면 현 선거구도에서 문재인을 넘기 힘듭니다. 지금 안철수+홍준표+유승민의 표를 더한만큼 득표할 일은 없겠고, 오히려 호남에서 이탈한 표가 문재인에게 더해지겠고, 적폐가 스스로 통합했으니 적폐 청산을 외치며 촛불의 명령에 답하는 것도 더 쉬워지니 문재인이 당선될 확률은 매우 높아집니다.
그걸 알면서도 단일화를 하겠다면 둘 중 하나죠. 북풍 조작 등 반칙을 준비되었을지 모른다는 뜻이거나 그게 아니면 낙선 후 3당이 연합해 과반 의석을 무기로 사사건건 문재인의 발목을 잡겠다는 뜻인 거니까요. 단일화가 성사된다면 그 준비가 끝났다는 뜻. 그러면 문재인이 당선되어도 문제, 낙선해도 문제입니다.
* 단일화는 막는 것이 좋다.
당연히 민주당으로서는 단일화를 저지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런데 "3당 야합" 같은 정치적 구호로 공격하는 건 유권자에게 크게 와닿지 않습니다. 마침 2012년 대선 당시 이정희 후보가 사퇴하면서 선거보조금 27억을 반납하지 않았다고 새누리당이 "먹튀"라고 물어뜯은 전례가 있습니다. 단일화할 거면 사퇴하는 2명의 후보는 선거보조금 반납하라고 공세를 취하는 게 적절합니다. 자유당과 바른당은 자기들이 한 짓이 있으니 거부할 명분이 없고, 늘 기존 정당을 구태세력 취급한 국민의당도 거부할 명분이 없을 겁니다. 혈세 최소 수십억을 "먹튀"할 거냐고 "선빵"을 날려서 단일화의 동력을 사뿐히 즈려밟아주는 정도의 대응은 민주당이 마땅히 취해야 할 책무입니다.
개인적으로 단일화가 최종 성사될 확률이 높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2012년에 그러했듯 안철수가 징징대다가 판 깨질 겁니다. 그런데 이건 다시 말하면, 안철수만 결단하면 단일화가 의외로 쉽게 풀릴 거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자유당과 바른당이 곧 박근혜 탄핵당이고 적폐라는 것을 유권자에게 전달하고 박근혜 정권이 경제를 말아먹은 것을 심판해달라고 주문하는 것이 너무 늦습니다. 일단 적폐 청산 또는 정권 심판의 메시지가 판 위에 올라오면 안철수는 간 보다가 단일화 테이블에서 빠질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