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헌재 증언에서 "누가 내 편인지 네 편인지 모르겠다"고 말한 게 귀를 세게 때렸다. 최순실씨에게 대통령측 변호인들이 "걔네들"이라고 했을 때 그 걔네들이 누군지 말해 보라 했을 때 "고영태 류상영 노승일 김수* 박헌영"을 지목했다. 대통령도 정규재tv에서 "이제 우리가 좀 알게 되었다."고 했다.
최순실씨나 대통령이나 우리 국민이나 이 정도까지 인식할 때까지 시간과 대가를 많이 치른 것같다.
그런데 우리는 적이 아직도 누군지 잘 알 수 없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불신의 시대는 싫다. 그러나 지금은 전쟁이다. 제2의 6.25체험이다. 서울점령 인천상륙작전 서울수복 중공군참전같은 과정이 유혈만 없다 뿐이지 유사하게 있다. 어쨌든 평화시로 착각하면 낭패한다.
며칠 전 하태경 의원에 피소되어 경찰조사를 받았다. 고소 내용은 한 마디로 고소를 위한 고소일 뿐 쟁점조차 모호했다. 조사는 가벼운 마음으로 끝냈지만 배은망덕이란 단어가 계속 떠올라 힘들었다.
그런데 어젯밤 허현준 일병 구하기를 위해 하태경을 어제의 동지였나 싶을 만큼 거세게 비난하는 최홍재 씨 동생 최공재 씨의 글을 읽고 배신과 배반은 이미 일상이고 우리가 어디로 가야할지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된다는 생각뿐이다.
내게 좀 독특한 면이 있다면 나는 서울대 89학번이고 우리 세대가 거의 전원 받았던 공산주의 사상 수업을 어느 정도 받았지만 단 한순도 공산주의에 동조한 적이 없다. 아마도 내가 고등학교때 강렬과 체험과 함께 기독교인이 된 때문일 것이다.
대학때 우리 세대가 겪은 일은 그 세대가 아니면 쉽게 추측하기 어려울 것이다. 언젠가 자세히 말할 때가 오겠지만 지금은 각설하고 어쨌든 소위 반대한민국 세력이 대거 성장한 시절에 대학을 다니면서 나는 직감적으로 이 세대 전체의 중심 사상과 싸우는 것이 내 사명이라는 것을 그때 이미 자각했다.
1990년대부터 본격적인 싸움을 하며 가장 큰 사건은 1999년 강철 김영환 전향 사건을 보도, 아니 기획보도하는 데 부름받은 것이다. 시간이 없으니 짧게 말하자.
지금 비전향 주사파가 장악한 당을 일단 접어두고 전향 주사파가 깊이 침투한 새누리당에서 국회의원으로서는 하태경이 있지만 청와대 쪽으로는 고대 주사파 출신 최홍재와 전북대 주사파 출신 허현준이 먼저 진출했다. 그리고 최홍재 라인을 탄 전북 출신 신보라가 국회에 들어갔고 탄핵 입장에 섰다.
현직 허현준이 지금 특검조사를 받는 중이다.
하태경은 전향 주사파의 방계에 불과하다. 이들의 강고한 조직은 민족민주혁명당이라는 지하당 형태에서 출발했고 그 조직의 실체는 아주 소수만이 알 뿐이다. 김영환은 민혁당 당수로서 2인자 하영옥에게 조직을 나눠주며 대학생 조직을 양보하면서 대신 전북 전남을 직속 관할했다. 덕분에 전북은 북한인권운동 조직으로 변화되었고 덕분에 전북 출신의 허현준이 청와대에 그리고 유재길은 새누리당 공천을 받았다.
허현준 증언을 들으며 오래 전 하태경이 통진당과 싸울 때 박수쳤던 순간이 떠오른다. 이들은 지금 어디까지 와 있을까?
나는 하태경류든 김영환류든 전향이 없었다고 생각한다. 1999년 그들은 내게 전향하지 않았고 김정일의 실정에 대해 싸울 뿐이라고 했고 지금도 변함이 없다고 믿는다.
그래서 그들이 김정일과 싸우는 것을 도왔지만 언제나 동시에 싸워왔다. 글로도 말로도. 이제는 법정에서 싸우게 생겼다.
최공재라는 인물은 전혀 다른 관점에서 봐야 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번에 대통령 탄핵편에서 단식했던 최홍재는 핵심인물이다. 허현준도 마찬가지다. 조직의 관점에서. 그들의 리더는 김영환이고 김영환은 일찌감치 대통령 하야를 주장했다.
하태경이 정치적으로 몰락하는 장면을 보며 김영환은 오판을 인정하고 허현준 사수에 나선 것일까? 그들 모두의 진짜 얼굴을 보고 싶다. 허현준이 맡은 자리는 국회의원 공천에 막대한 권한이 주어져 있다.
대한민국 소위 우파들 순진성에서 벗어나야 한다. 나는 혼자 오래 많이 싸웠고 승리해 왔다. 또 이길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소수의 싸움으로 소용이 없다. 진짜 통일이 올 것같다. 자유민주주의 아니면 그냥 분단이 낫다. 깨어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