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정약용(1762~1836)의 대표 저서가 무엇일까? <경세유표>와 <목민심서>를 꼽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여기에 <흠흠신서>를 더해 이른바 ‘일표이서(一表二書)’라 부른다. 정약용은 500권이 넘는 저작을 남겼는데, 자신의 저서를 개관하여, “육경사서(六經四書)로써 수기(修己)하고, 일표이서로써 천하·국가를 다스리니, 본(本)과 말(末)을 갖춘 것이다”(‘자찬묘지명’)고 말했다.

   그의 방대한 저작 체계를 ‘유교경전을 연구한 경학(經學)’과 ‘경세제민을 위한 일표이서의 경세학(經世學)’으로 구분했다. 유학의 핵심어가 수기치인(修己治人)! 수기는 개인적 차원의 자기수양이요, 치인은 사회적 차원의 실현이다. 그런데 경학은 수기를, 경세학은 치인을 위한 것이다. 요컨대 정약용의 학문 체계는 ‘경학=수기=본’과 ‘경세학=치인=말’로 구성되어 완성된 것이다.

   조선후기 주자학 독존의 논자들은 수기를 잘하는 것이 급선무이며 치인은 이에 따른다는 논법을 폈다. 도덕적 수양을 바탕으로 치인, 즉 도덕적 교화를 이룬다는 것이다. 도덕과 정치가 분화되지 않고, 오로지 도덕이다.

   농암 유수원(1694~1755)은 비판했다. “성의와 바른 마음을 임금에게 아뢰는 것에 힘쓰면서 주자를 배웠다고 자부하지만, 나랏일을 맡겨보면 제대로 하는 게 없다.”(<우서> ‘논변통규제이해’) 수기만 강조하면서 정작 치인의 능력이 없다는 지적이다.

   실학적 학풍의 논자들은 수기와 치인의 영역을 구분했다. 도덕과 정치의 분리를 의미한다. 치인은 도덕만으로 부족했다. 치인을 위해 법과 제도를 강조했다. 물질적 여유가 생긴 연후에야 도덕이 바로 설 수 있다는 주장도 했다. 그래서 실학자들은 경세의 방략을 세우는 데 힘을 쏟았다.

   위에서 정약용이 일표이서를 말(末)이라 했는데, 결코 소홀히 여긴다는 의미가 아니다. 수기치인론은 본말론이나 도기론(道器論)으로 치환할 수 있다. 본디 도(道)란 형이상학적인 것, 기(器)란 형이하학적인 것을 가리킨다. 이른바 주자학자들이 전자(수기, 도, 본 …)를 강조하면서 후자(치인, 기, 말 …)는 소홀히 했다. 이에 반해, 경세를 고민한 사람들은 도와 기를 구분하되, 양자를 서로 보완적인 관계로 보았다. 양자를 모두 갖추어야 비로소 온전한 것이 된다고 생각했다.

   기(器)로써 뒷받침되지 않은 도(道)는 공허하고, 도(道)를 잃은 기(器)는 맹목이다.   

□ 글쓴이 : 김 태 희 (다산연구소 소장)

창착판소리 "다산 정약용" 초연 (2017년 2월 23일 / 실학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