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의 性 탐욕으로 희생된 여배우 영상 4백만 기록 인터뷰 1
21분
https://www.youtube.com/watch?v=UHDio7NNq5E
'박정희의 디테일한 여자관계' 최초
공개한 김현철 기자의
"시대의 어둠을 밝힌다"
책 주문하기
서울의 소리가 "[단독] 박정희의
상습 성폭력에 한 맺인 영화배우 김삼화"라는 기사와 함께
2014년 03월 13일 유튜브에 올린, 미국거주 김현철 전 기자의 국회 언론탄압공대위 토론회 증언 동영상이 29일 400만 조회를 넘어서는 기록을 세웠다.
30일 팟케스트 "새가
날아든다" 녹음실에서 화상을 통해 400만 조회
돌파 기념 인터뷰를 가진 김 기자는 "김삼화 씨가 발설하면 박정희가 나를 죽인다고 두려워해
취재하기가 어려웠다"며 "그러한 이유로
취재내용도 김 씨 사망 후 공개 할 수 밖에 없었다"고 주장했다.
1980년대 폴로리다 한인회 행사에서 만난 김삼화를 직접 취재를 한
김현철 기자의 취재에 따르면 박정희의 상습적인 성탐욕의 희생물이 된 천재 무용가 이자 영화배우 김삼화씨는 평생을
'박정희가 무섭다"고 두려움에 떨며 노이로제로 인해 괴로워하다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김현철 기자는 "영화배우 김삼화의 기구한 사연 증언 영상이 400만 조회로 널리 알려지게된 이유는 지금까지 박정희의 디테일한 여자 관계가 공개 되기는 최초 이기때문에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서 이기도 하지만 박근혜가 이를 막으려고 이 내용을 퍼나른 네티즌들을 사법처리 하는 과정에서 더 많이 알려진것 같다"고 말했다.
김현철 기자는 MBC 서울본사 기자 생활을 하다 1974년 미국으로 이주해 한국일보 시카고 주재기자, 중앙일보 마이아미
지국장, 한겨레 마이아미 지국장 등을 지내다 은퇴 후 미주한겨레저널 창간해 언론 활동을 해오다 암투병으로
활동을 접고 있다. 김현철 기자는 김영랑 항일저항시인 삼남 이기도 하다.
-------------------
2탄
박정희의 性 탐욕으로 희생된 여배우 영상 4백만 기록 인터뷰 2
14분
https://www.youtube.com/watch?v=uw9f4FO4xnA
당대의 유명한 우리 전통무용가요, 영화 양산도, 대심청전, 논개 등 16편의
영화 주연배우였던 김삼화씨는, 신혼 가정인 상태였음에도, 박정희의
성폭력과 그에따른 강제이혼, 35년 연상의 말이 안 통하는 유대계 미국인 노인에게, 강제 결혼 후 미국 마이애미로 추방당하는 등, 악당박정희 때문에, 통한을 안고 일생을 보낸 비운의 주인공입니다.
이러한 내용은, 서울의소리 출판사에서 내 놓은, ‘시대의 어둠을 밝힌다’는
책에, 제가 자세히 밝혔습니다만, 못 보신 분들을 위해 간략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자신의 과거가 창피했던 탓으로, 김삼화씨는 동포사회와는 담을 쌓고
살았던 마이애미에서, 미국 지방정부 주최로 처음 열리는 ‘한국의
날’ 국제행사에 출연해 달라는, 정부 공관의
간곡한 요청을 끝내 거부했습니다.
그러다가, 당시 제가 발행하던 신문 애독자였던 김삼화씨는, 공관의 협조 요청을 받은 저의 집요한 설득 끝에, 결국 출연을 승낙했고, 그 행사를 대성공으로 이끈 것을 계기로, 그 분은 가정을 가진 저에게, 연정을 품게 되었습니다. 그 분이
45세 때의 일입니다.
평소 저는, 김삼화씨가 당시, 잘
나가던 국내의 영화 배우 생활과, 김삼화전통무용학원의 운영을, 하루
아침에 접고 갑자기, 말이 전혀 안 통하는 35년 연상의
미국 노인과 결혼해, 마이애미에 와서 숨어 산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터라, 그 분의 과거를, 언젠가는 밝혀내야겠다는 기자의 욕망이 항상 잠재해
있었습니다.
이미 신랑은 몇해 전 노환으로 세상을 떠, 독신 생활 중이던 그 분은, 한국의날 행사 전 후, 저를 자꾸 집으로 초청했고, 감성적으로 제게 너무 기울어 버린 그 분을, 활용해서 그 분의 과거를
취재히게 되었습니다. 당시,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쓰라린
과거를 고백하던, 김삼화씨의 쓰라린 과거를 들으며, 저 역시
같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런데 이 사실을 밝힌 영상 조회수가, 최근 4백만건을 기록했다는 소식을 듣고, 많이 놀랐습니다. 더구나 이대로 가면 1년 후면 5백만
건을 넘어 간다니, 이는 전 국민의 10%에 달하는 수라
어안이 벙벙해 집니다.
당시, 취재 결과는 깜짝 놀랄만한 특종 기삿감이었지만, “자기 죽기 전에 보도되면 박정희 잔당에게 자신이 죽게 되니, 자기 죽기 전에는 절대로 보도하지 않는다”는, 그 분의 간곡한 요청을 저버릴 수 없었기에, 결국 그 분이 세상을
뜬 직후에 기사가 공개되느라 33년이라는 긴 세월이 흘렀습니다.
더욱 많은 사람들이, 박정희의 이러한 행각을 알고, 다시는 이런 수 많은 피해자가, 악한 독재자로 인해 양산되는 나라를
만들지 말아야 한다는, 깨우침이, 각자 국민들 가슴 속에
각인되길 바랄 뿐입니다.
박근혜 정부가 좀더 현명했다면, 이 글을 퍼간 분들을 기소해서 재판에
붙여, 1심에서 3심까지의 예고 기사 및 재판 결과를, 여러차례 보도해 국민의 관심을 자꾸 자극할 게 아니라, 그냥 모르는
척 내버려 두었어야 했습니다. 그랬다면 조회수가 이토록 올랐겠습니까?
결과적으로, 현 정부는 혹 떼려다 혹 하나를 더 붙이고 만, 우를 범하고 만 것입니다.
또 하나는, 수많은 여성들이, 박정희의
안가라는 궁정동으로 끌려갔다는 사실은 세상에 많이 알려졌는데도, 그 여성들이 어떻게 당했다는 사실은, 단 한번도 알려진 적이 없던 터에, 김삼화씨의 눈물 속 고백은, 많은 국민들에게 너무 큰 충격을 주었고, 따라서 너도 나도 지식층
분들이, 그 영상을 보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는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