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회와 광화문으로 이원화된 촛불 집회에 대해서 말이 많았다. 심지어 정권이 바뀌었는데 뭣하러 시위를 하느냐며 대통령의 앞길을 막지 말아달라는 여론도 여기저기 보인다

그러나 내가 보기엔 더 큰 그림을 못보고 흑백논리에 매몰된 생각이라고 본다.

우리의 시위는 어느 정권에게는 자리에서 얼렁 내려오라는 탄핵의 촉구일 수 있지만 어느 정권에게는 눈치보지 말고 소신을 맘껏 펼치라는 응원과 채찍질의 함성일 수 있는 것이다.

처음에 박근혜 정권의 비리가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했을 때 문재인은 이재명 시장같은 사이다 발언도 못하고 주저하는 눈치였고 그에 실망한 사람들도 많았다. 그러나 대세가 확고해져가는 양상을 보이자 문은 조금 더 과감한 행보를 보이게 된다.
그런 것이다. 그 대세의 흐름을 바꾼 건 촛불이었다. 그 대세를 확고하게 만든 건 크나큰 시민들의 열정이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문재인의 선의나 소신을 의심하지는 말자. 아무리 소신있고 줏대있는 정치인도 표심과 여론의 변덕 앞에서는 흔들리고 주저앉혀져 버리는 법이니까. 아무리 세상의 비리와 부조리를 깨부수고 뒤엎을 파도를 가지고 횃불과 칼을 가슴에 지닌 사람이라도 그 기회를 얻지 못하면 바람 앞에 등불 같이 희미해지다가 역사 속에서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그럴 때 노련하고 끈기있는 정치인은 가슴의 불을 잠시 칸막이로 가리고 바람이 어느 방향으로 불기 시작하는지 예의주시하면서 그 입은 무겁게 침묵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세상을 바꿀 힘은 대통령에게 있는 것일까? 우리에게 있는 것일까?
우리는 선거일에만 광포한 힘을 드러냈다가 선거가 끝나면 세상이라는 배가, 정치라는 배가 어디로 흘러가든 구석에 찌그러져 있어야 하는 건가

노무현 대통령 생전에 이런 말씀을 하셨다고 한다. 한 나라의 민주주의는, 그 수준은 그 국민의 의식수준을 넘어서지 못한다.

노무현 대통령도 당선 이후에 순수했고 가슴에 칼을 품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사 되돌아보면 그의 집권기를 볼 때 아쉬운 부분도 많았다. 이라크 파병을 추진했고 비정규직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었다. 여전히 삼성에 노조는 없던 시절이다. 국가보안법도 그대로 였고 빈부격차 문제는 점점 벌어져 갔다. 탄핵국면 이후 헌재에서 탄핵무효 판결이 나고 열린우리당은 대선에서 대승을 거두었다. 여대야소였지만 여전히 정치는 답답했고 개혁은 아예 없어진 단어 같았다.

그런데 과연 그 상황들이 모두 정치인들의 책임이었을까? 우리의 무관심과 식은 열정이 그 상황을 몰고 간 건 아닐까?
어떤 순수한 사람을 그 자리에 앉히든
어떤 열정을 가진 사람을 그 자리에 앉히든
상황은 똑같이 전개되었을 것이다.
소중한 사람을 보내고서야 우리는 끝내 후회하고 마는 것인가

여론을 주도하는 것은 침묵의 미덕이 아니라 목소리의 크기다. 우리가 조중동을 아무리 무시해도 계속 떠들고 목소리가 자주 회자되면 그것은 의견이 되고 대다수의 중론이 되었다가 사실이 되어버린다.

집회와 시위는 사회에 항상 불만만 가진 투덜쟁이로 자주 비춰진다. 과격파로 보이기도 하고 아드레날린의 분출을 찾는 행위의 하나로 보여지기도 한다. 그 당위성을 지지하는 사람들에게도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어리석은 패잔병으로 자주 보인다. "그렇게 한다고 세상이 쉽게 바뀔 줄 아느냐. 세상이 그렇게 물렁하지는 않다고"
그러나 인원이 더 모이고 몇 주간이고 끈질기게 지속하면, (쉽게 식지 말아야 한다.) 시위는 여론이 되고 열정이 되고 헌재의 판결문보다도 강력하게 사회에 작용을 한다. 세상은 그렇게 물렁해질 때도 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여론의 바람을 오랫동안 기다려온 노련한, 가슴 속 횃불과 칼을 지닌 정치인에게는 칭찬의 노래가 될 것이다. 갈 곳 잃은 돛단배의 순풍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