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기후 좋고 아름답다고 소문난 시애틀에 살고 있습니다. 26년째 이곳 서북미에 사는 동안, 4년간 오리건 주 포틀랜드 인근 비버튼에 살았던 것 빼고는 거의 이곳에서 살았지요. 그러면서 이곳만큼 아름다운 곳은 없다고 생각해 왔고, 이곳에서 사는 것에 대해 일종의 자부심도 느껴 왔습니다.
그러나, 이곳에 살면서 한가지 걱정되는 것이 있습니다. 언젠가 일어날지 모르는 대지진의 공포. 학자들은 늘 시애틀 지역에 진도 9가 넘는 초강진, 이른바 '빅 원'이 일어날 수 있다고 오래전부터 경고해 왔습니다. 실제로 비버튼에서 살 때인 2001년, 당시 세 살이었던 지호를 껴안고 문틀 사이에 서서 지진의 공포를 피해야 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당시 진앙지에서 몇백 킬로미터나 떨어져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지진의 흔들림은 꽤 심하게 전해왔고, 뉴스엔 시애틀의 유서깊은 곳들이 지진의 여파로 무너져 내리는 화면이 전해져 왔습니다. 당시 진앙에서 가깝게 살았던 고모 내외는 가게에 진열해 놓았던 와인병들이 다 쓰러지는 등의 피해를 입기도 했었습니다.
지진의 공포는 꽤 현실적이어서, 시애틀의 주요 건물엔 지진 발생시 행동요령 같은 것들이 붙어 있고, 저는 연간 몇백불의 지진 보험을 들고 있기도 합니다. 이곳이 환태평양 조산대, 이른바 '불의 고리'위에 놓여 있기 때문에 지진은 상존하는 위험입니다.
그런데, 지진의 안전지대라 여겨져 왔던 우리나라에서 최근 지진이 꽤 일어나고 있고, 뉴스를 보니 진도 5의 지진이 일어나 많은 사람이 놀랐다고 하더군요. 문제는 이 지진이 하필이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원전이 많이 몰려 있는 곳에서 가까운 곳을 진앙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고.
우리는 이미 지난 2011년 일본 도호쿠 강진 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있습니다. 그때 일어난 지진과 쓰나미로 인해 후쿠시마 지역에서부터 시작된 방사능 오염은 오늘날까지 우리의 삶의 질을 실제적으로 위협하고 있는 불안요소가 됐습니다. 아직도 물고기를 먹으려면 뭔가 불안하고, 어디서 나온 건지 괜히 한번 더 확인하는 게 현실입니다.
지진 자체로도 엄청난 재앙입니다. 큰 지진 앞에서 사람은 자기가 지구 표면에 사는 미물의 하나일 뿐이란 사실을 인식하게 됩니다. 자연 재해들이 다 무섭지만, 내가 서 있는 지표가 흔들리며 내가 서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는 순간, 사람은 무력해질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곳에 살면서 지금까지 세 번 정도의 지진을 경험했고, 그것은 놀라움과 공포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지진이 가장 많이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은 곳이 아마 지금 핵발전소와 방폐장들이 있는 경상도 일대일 것입니다. 그리고 역사를 봐도 큰 지진의 기록들이 역사서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발해의 멸망은 백두산의 화산 활동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고, 신라 말의 큰 지진 이야기도 삼국사기 등을 통해 읽을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지진 안전지역이라고 장담할 수 없는 곳이란 말이지요.
게다가, 전략적으로도 원전이 한 지역에 집중돼 있다는 것은, 유사시 한반도가 공격을 받으면 한반도 동남부는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으로 변할 수 있다는 말도 됩니다. 사실 우리가 원전을 짓고 사용하는 것은 '깨끗한 에너지'를 쓰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남긴 핵 폐기물은 결국 우리 후손들이 '대대로' 짊어져야 하는 피할 수 없는 짐이 될 겁니다.
세계 각국이 핵발전소를 폐기하고 재생 가능한 환경에너지를 개발하는 데 힘을 쏟아 붓는 현실 속에서도 우리나라는 전혀 다른 스탠스로 서 있는 것 같습니다. 아마 여기엔 건설 마피아, 원전 마피아라고 불리우는 세력들의 이권이 얽혀 있겠지요. 자손들의 미래를 판돈으로 걸고 벌이는 이들의 도박을 언제까지 지켜봐야 할까요. 중동의 산유국들도 재생가능 에너지를 찾아 나서는 지금 21세기에.
시애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