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화 즉 산업화, 정보화가 이루어지게 되면 여자들의 사회 진출이 활발해지고 따라서 대체로 처녀로 지내는 기간이 길어지게 됩니다. 우리나라도 요즈음은 20대 중반이 지나서 결혼하는 경우가 많아지므로 대학 4년 그 후 사회 경험도 쌓고 결혼 자금도 모으기 위하여 3년 정도 직장 생활을 하게 되면 저절로 20대 후반이 되는 것이지요. 물론 10대 후반이나 20대 초반에 결혼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최근에 여행 갔다가 들린 곳에서 20대 초반의 아가씨처럼 보이는데 벌써 애가 둘이라는 소리에 놀란 적이 있습니다. 아마도 고교 졸업 후에 바로 결혼하였겠지요.
아무튼 이렇게 길다면 긴 기간을 처녀로 지나게 되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게 될 수도 있고 자연스럽게 같이 밤을 보내며 선을 넘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배가 부른 상태에서 결혼식을 올려야 하는 경우도 여러 번 목격하였습니다. 이런 경우는 대부분 결혼으로 이어지므로 그렇게 큰 문제는 아니지만 불의의 사고 또는 집안의 반대로 헤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도 그렇게 큰 문제는 아니지요.
또한 남자는 결혼 전에 많은 처녀들과 성관계를 맺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다가 전작 결혼할 여자는 순결할 것을 요구하는 이중적인 태도도 약간의 문제입니다.
보다 심각한 문제는 강제로 성관계를 맺는 즉 강간에 의하여 순결을 잃어버리는 경우와 술 등에 의하여 원하지 않았던 성관계를 맺는 경우 및 직장 상사 등에 의하여 성희롱 내지는 성추행을 당하는 경우입니다. 지금은 반드시 그렇지도 않지만 학업이나 직장 관계로 고향을 떠나 홀로 자취할 경우에 인근 불량배에 의하여 밤에 자다가 강간당한 경우가 신문 매체에 보도된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운 나쁘게 임신이라도 하게 되면 그야말로 인생 종치게 되는 것이지요.
이런 강간이나 성추행 사건을 신고하는 여성도 드물지만 신고하더라도 범인이 중하게 처벌받는 경우는 희귀합니다. 지금도 이런 사건은 여자가 잘못하여 즉 옷을 야하게 입고 다녔다든지 친절한 태도를 보여서 납자로 하여금 오해하게 만들었다던 지 또는 남자가 술에 취하여 실수를 하였다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아주 가벼운 벌만 받고 끝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아무리 여자가 옷을 야하게 입고 야한 행동을 하거나 또는 친절하게 대한다고 하더러도 그것이 강간 등의 면죄부가 되어서는 사회 정의가 바로 잡히지 않습니다.
사회의 분위기가 아직도 보수적이고 남자의 행동에는 너그러운 것에 덧붙여 재판관들의 상당수가 남자이라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재판에서도 대체로 피해자인 여성에게 아직까지는 가혹한 편입니다.
인근 불량배들에게 집단적으로 강간을(윤간) 당하고 그로 인하여 임신을 하게 된 아가씨가 세상을 비관하여 반드시 복수하겠다는 글을 남기고 자살하였다고 가정하고 이야기를 진행하겠습니다.
대학을 졸업하여 직장에 들어간 친구들 5명이 어느 날 함께 술을 마시고 있었습니다. 한 병 두병 비우면서 이야기꽃을 피우다가 문득 구석자리에 아주 예쁘게 셍긴 한 젊은 여자가 혼자 술을 마시고 있는 것을 보게 된 것입니다. 밤중에 젊은 여자가 홀로 술을 마시는 장면이 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였습니다. ‘실연하였나? 애인이 죽었나?’ 등의 말을 하다가 한 명이 대표로 여자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습니다.
「저기, 무슨 이유로 홀로 술을 드시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것도 인연인데 우리 같이 합석하는 것이 어떨까요?」
한참을 말이 없이 남자를 응시하던 이 여자가 드디어 입을 열었습니다.
「좋아요! 그 대신 술값은 댁들이.」
그렇게 하여 여자와 어울려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헤어질 때 전화번호를 서로 교환하였습니다.
이제 등장하는 남녀에게 이름을 붙여줍시다. 경수, 영남, 수익, 용우, 정섭 그리고 연지.
며칠이 지나 집으로 가고 있는 경수 핸펀이 요란하게 울렸습니다.
「여보세요? 누구세요?」
「저기 며칠 전에 같이 술자리에 합석한 연지인데요? 내일 저녁에 시간이 있으면 그 때 거기서 만나요. 혼자 나오세요.」
잘 모르는 여자가 먼저 만나자고 유혹하니 의아스런 생각이 들기는 하였지만 그래도 이 좋은 기회를 놓칠 수는 없지 하면서 승낙하였습니다. 다음 날 그 술집에 가보니 예쁘게 차려 입은 여자가 웃으면서 맞이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날 이후로 둘의 관계가 급진전되어 주말에는 북한산 등에서 만나기 시작하다가 4월 어느 주말에 멀리 남이섬으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남이섬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가 저녁 무렵에 드디어 자연스럽게 입술을 교환하게 된 것입니다.
그 후 만나는 시간이 점점 늘어가면서 둘의 스킨쉽도 점점 진하게 되어 옷 위로 유방을 만지다가 어느 날은 눈치를 보면서 대담하게 옷 속으로 손을 넣어 보았습니다. 순간 움칠하던 연지가 웃으면서 오늘은 여기까지 허락할게라고 하였습니다. 경수는 마음껏 연지의 유방을 탐닉하였지요.
그리고 다시 몇 달이 지나 경수가 연지에게 보채기 시작하였습니다.
「이제 우리 만난 지도 꽤 되었고 상당히 서로를 알게 되었으니 같이 밤을 보내자.」
「싫어! 아직은 아니야. 대신에 오늘은 마음껏 만져.」
이런 대화가 몇 번 반복되다가 어느 날은 못이긴 척 연지가 마음대로 하라고 허락하였습니다.
경수가 처음으로 연지를 안아보고 연지의 몸을 마음껏 탐닉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흐뭇하게 잠이 들었는데 갑자기 이상하게 서늘한 기운이 느껴져 눈을 또 보니 머리를 풀어헤치고 하얀 소복을 걸친 연지가 칼을 배에 대고 찌르려고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다음 날 경수가 심장마비로 사망하였다는 소식을 들은 나머지 네 명 즉, 영남, 수익, 용우, 정섭은 의아하게 생각하였습니다. 최근에 모였을 때 곧 결혼할지도 모른다며 기뻐하던 경수가 갑자기 십장마비로 죽다니 그것도 젊은 나이에. 그러나 시간이 지나가면서 잊혀져 갔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끝이 아니었습니다. 약 6개월 뒤 또 6개월 뒤 영남과 수익이 차례로 역시 심장마비로 사망하자 남은 두 명 용우와 정섭의 막연했던 불안은 공포로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둘이 만나 의논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죽은 경수, 영남, 수익이 여자를 만나고 있다면서 일이 잘 진행되어 가고 있다고 했거든.」
「뭔가 이상해. 혹시 전에 술집에서 만났던 여자를 차례로 만난 것은 아닐까? 이름이 뭐였지?」
「내 핸펀에 저장되어 있는지도 몰라. 찾아볼게.」
한참 핸펀을 검색하던 정섭이 입을 열었습니다.
「그 여자 이름이 연지이군. 전화번호도 있네. 전화해볼까?」
「잠깐, 이 여자가 꾸민 일이라면 만나기 전에 계획을 짜야 해. 아니면 이 여우같은 계집에게 우리도 당하기 쉬워!」
그날은 일단 헤어지고 각자 대책을 강구한 뒤 다시 모이기로 하였습니다.
며칠 뒤 다시 만난 두 사람은 한적한 산장에서 전화를 걸어 연지를 만나기로 하였습니다.
그날 아침부터 눈이 빠지게 기다리던 두 사람 그러나 와야 할 연지는 저녁이 되어도 코빼기도 안 보이다가 8시가 되어서야 전화가 왔습니다.
「지금 근처까지 왔는데 정확한 위치가 어디예요?」
「큰 길에서 언덕을 조금 올라오면 산장이 보입니다. 빨리 오세요!」
그러나 정작 여자가 나타난 것은 11시 경입니다.
문을 두들기는 소리에 문을 여니 하얀 소복을 한 여자가 머리는 산발하고 입에는 날카롭게 보이는 칼이 물려 있었으며 또한 입 주위에는 빨간 피(?)로 칠갑하고 서 있는 것이 아닙니까?
「귀신?」
안으로 들어온 여자는 칼로 위협하여 가지고 온 노끈으로 서로를 묶게 하였습니다. 다 묶인 것을 확인한 여자가 이야기를 시작하였습니다.
「5년 전에 너희들과 이미 죽은 세 놈이 여자를 윤간한 적이 있었지. 언니는 그 후에 원수를 갚아달라는 유사와 일기를 남기고 자살하였지. 그로부터 오랫동안 수소문하여 너희 놈들을 찾아내어 한 명씩 죽게 만들었어. 공포와 죄책감으로 심장마비를 일으키게 하여.」
「네가 그 여자의 동생이냐? 귀신이 아니고?」
「그래. 귀신 놀이를 했을 뿐이야!」
말을 하는 중에 몸을 움직여 간신히 자유로워진 용우가 갑자기 일어나 연지를 밀치고 밖으로 나가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문을 여니 자신들이 강간한 여자가 서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너무 놀라 뒤로 물러서다가 넘어져 바로 죽음을 맞이하였습니다.
홀로 남은 정섭을 향해 칼을 든 연지가 다가왔습니다. 정섭은 그때 노끈은 간신히 풀었지만 친구들이 다 죽게 된 것을 알고는 연지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내가 죽을죄를 지었으니 마음대로 하세요.」
눈을 감고 죽기만을 기다리는데 연지가 앉더니 울음을 터뜨리는 것이 아닙니까?
「밖에 서 있는 여자는 내가 가져온 인형이구요. 어제 꿈에 언니가 나타나서 ‘이제 그만 되었으니 용서해주거라’라고 했어요. 나는 도저히 너희들을 용서할 수 없지만 언니의 뜻을 따라 오늘 혼자만 살겠다고 뛰쳐나가다가 제풀에 놀라 죽은 놈은 할 수 없고 당신만 살려 주겠어요.」
그 후 정상을 참작 받은 연지는 (직접 죽이지 않았다는 연지의 진술과 정섭의 탄원을 인정한 여자 판사에 의하여 비교적 가벼운 벌을 받았습니다. 지금은 수녀원에 들어가 생활하고 있다는 군요. 한편 혼자 살아난 정섭은 아프리카 오지에서 봉사활동하고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