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모든 사람들은 크게 두 종류의 일들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즉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로마서 8:5) 하심 같이, 육에 속한 사람들은 육신의 생각(육적인 지혜와 능력)을 좇아 육신(사단)의 일을 하고, 영에 속한 사람들은 영의 생각(예수님의 지혜와 능력)을 좇아 영(하나님)의 일을 합니다. 다시 말해, 사단은 사람들을 육신의 생각대로 행하게 하여 하나님께 범죄하도록 유혹하고, 예수님(성령)은 사람들을 영의 생각대로 행하게 하여 의를 쌓아 하나님께 상받도록 도우십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요한복음 14:26) 하심 같이, 하나님께 들림 받을 의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나게 하는 성령의 뜻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반대로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로마서 8:7) 하심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는 불신앙인들과 안티 기독인들과 타종교인들과 행악자들은 육신(마귀)의 습관을 좇아 하나님의 말씀을 제 뜻대로 해석해 불신하고 거역하기만 합니다.
성령은 믿는 분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시시때때로 생각나게 하여 지키도록 하고, 마귀는 믿지 않는 자들에게 세상 사람들의 말들을 생각나게 하여 지키게 합니다. 즉 마귀는 사람들이 지어내고 꾸며 놓은 말들을 깊이 생각나게 하여 따르도록 유혹합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의 철학과 사고방식과 주의주장과 기복신앙과 쾌락을 근거로해,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지키고자 하는 의인들을 율법주의자로 폄훼하고 목사들이 꾸며 만들어 섬기는 신학의 하나님(예수님)만 섬기려 합니다. 특히 오늘날의 기독교인들 중에는 성령의 가르침보다 목사들의 교훈을 더욱 존중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로마서 8:6) 하심 같이, 영의 도구이어야 할 인간 육신이, 자기 몸의 주인 되시고 운전수가 되신 영을 주도해 이끌고자 생각하는 것 자체부터가 주제넘은 짓이기 때문에 그에 대한 결과는 오직 죽음과 고통 뿐입니다. 그러나 영의 뜻대로 좌우되어야 할 육신에게 자기 본분을 일깨워 성령에게 순종하는 분들에게는 생명과 평안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육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생각은, 오직 자신이 영의 도구임을 확실히 깨달아 순종하여야만 비로소 육신도 평안할 수 있고 또 자신의 주인된 영도 평안이 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그런데 흙으로 빚어진 육신은 이 같은 분수와 도리에 합당한 생각을 자력으로는 할 수 없고 오직 육신과 일심동체로 살게 된 영만이 이런 분수와 도리를 깨달아 육신에게 가르칠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야만 육신도 살고 영도 살 수 있습니다. 그렇지 못하고 에덴동산의 아담과 같이 아내된 하와가 남편인 자신과 함께 동반자가 된 신분을 높이 평가해 하와의 말이 비록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나더라도 거부하는 것이 안쓰러워 그만 하나님의 말씀은 무시해 버리고 하와의 말을 따른 것이 그만 사람으로서의 대표권(생각)을 하와에게 넘겨 준 일이 되었습니다. 아담이 부부의 대표권을 하와에게 일임하였다는 것은 곧 영과 육이 하나된 사람의 대표권을 육신에게 넘겨 준 참담한 비극이 되었습니다.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골로새서 3:2) 하심 같이, 흙으로 조성된 인간 육신은 오직 땅엣 것만 생각하고 위엣 것은 생각할 줄 모르는 외골수 도구입니다. 끝 모르는 무저갱으로 추락하고자 하는 것이 육신의 무지한 본성이기 때문에 사람의 영이 이러한 육신에게 자신을 주도해 이끌 수 있는 생각을 넘겨 준다는 것은, 마치 자동차를 운행하고 있는 운전수가 자신의 생각을 포기해 버리고 운전대를 차체에게 맡겨 차체가 마음대로 굴러가게끔 하는 짓과 같습니다. 운전수가 차와 일심동체가 된 상태에서는 운전대를 잠시라도 차체에 맡길 수 없는 것과 같이, 사람들의 영 또한 육신과 일심동체가 된 이상, 생각이라는 운전대를 육신에게는 잠시라도 맡겨서는 안됩니다.
예수님이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아 처참한 십자가를 짊어지고 죽어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말하자, 베드로가 제자된 신분을 앞 세워 충언을 하듯 예수님을 붙들고 만류하였습니다. 이 때에 "예수께서 돌이키사 제자들을 보시며 베드로를 꾸짖어 가라사대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마가복음 8:33) 하시며 질책하였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고 그런 죽음의 길을 택하건만, 베드로는 제자의 신분을 앞세워 생각해 예수님의 그 같은 선택을 방해하고자 하였습니다. 이처럼 사람이 이느 쪽 말을 선택해 생각하고 행동하느냐에 따라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도 있고 또 사단의 노예가 될 수도 있습니다.
세상에 직종이 수없이 많아도 그 모든 직종은 크게 두 종류에 불과합니다. 즉 선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 노릇을 하는 일과, 거짓되고 악하고 게으르고 음란한 마귀의 종 노릇을 하는 일 뿐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된 일(직업)에 충실하려면 예수님의 말씀을 생각하여야 하며, 마귀의 노예된 일(직업)에 충실하려면 지옥불에 들어갈 자들의 말들을 생각하여야 합니다. 말(뜻, 사상)은 행동의 소스(source)이기 때문에 이런 소스에 근거(생각)하여야만 비로소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마귀의 종 노릇을 하지 않으려면, 무엇보다 시림들이 개발해 낸 악습을 보고 듣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하여야만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고린도전서 13:5)라는 말씀을 지킬 수 있습니다.
오늘날의 신앙인들이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는 근본적인 자료, 곧 세상을 이길 수 있는 믿음들을 듣고 보고 읽은 것이 없습니다. 기껏 주일날 예배 시간에 목사들의 기복신앙 설교(신학 강의)를 듣는 것 이외에는 세상을 이길 수 있는 믿음의 말과 글들을 전혀 접할 수 없고, 오직 세상에서 유행되고 있는 온갖 잡된 말(마귀의 뜻과 사상)들만 주로 배워 익힙니다. 이때문에 성령이 믿는 자들로 하여금 세상을 이길 수 있는 일들을 생각나게 하고자 하여도 저들의 생각과 마음에 저장된 자료(말, 글)들이 없어서 그런 말씀들을 생각나게 할 수 없습니다. 즉 예수님의 심령에서만 생성되는 세상을 이길 수 있는 믿음을 듣고 보고 읽은 것이 없기 때문에 성령이 그런 말씀들을 도무지 생각나게 해 줄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이 시대의 부패타락한 기독인들의 심령 상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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