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분위기가 너무 을씨년스럽기만하다.
20여년 전만해도 이때쯤이면 거리에는 크릿마스 캐럴이 가득하고
그 캐럴에 걸맞는 함박웃음의 사람들이 선물을 고르는 등
행복한 연말의 분위기를 자아내곤 했는데
캐럴송에 사용료가 발생하면서부터 캐럴송이 뚝 끊기게 되었고
캐럴송이 끊긴 거리는 그야말로 황량하고 을씨년스럽게 된 듯하다.
그만큼 캐럴송의 힘이 크게 느껴진다.
거기에 지금은 탄핵정국이라 더욱 썰렁하기 그지없는데
만일 캐럴송의 사용료가 없어서 지금도 그때처럼
거리에 캐럴송이 울려퍼지고있었다면 조금은 덜 황량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선물을 하고
또 누군가에게 선물을 받을까 하는 기대감에 부풀게 마련인데
지금은 우리 아이들도 최순실이 나라를 망쳤다며
다가오는 크리스마스보다 정치적 이슈를 논하곤 한다.
1차대전 당시 연합군과 독일군의 대치상황속에
크리스마스에 연합군 장병 한 명이 적의 총부리앞에서 캐럴송을 불르기 시작했고
그러자 독일군과 연합군 들이 하나 둘 씩 총을 내려놓고 합세해서 합창을 해서
전쟁터에서 크리스마스의 축제를 열어 그 날 하루동안 전쟁이 중단되었다고 하는데
이렇게 삭막한 상황을 풀어나가는데에 캐럴송이 한 몫을 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오늘 당장 여의도와 광화문 광장에 캐럴송을 울린다면
광분한 시민들의 마음에 조그맣게라도 평화가 찾아오지 않을까
탄핵을 찬성하는 이들이나, 탄핵을 반대하는 이들이나
모두 나라사랑과 구국의 일념일진대 누가 옳고 누가 그른지는
역사가 판단해 주기 마련이므로 나만 옳다고 주장하기에 앞서
한 발짝 물러나서 상대방의 의견도 들을줄 아는 성숙한 국민의식이 아쉽다.
이런 감정을 추스리게 하는것 또한 음악의 힘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캐럴송의 사용료를 내더라도 캐럴송을 울리는게
더 많은 이익을 창출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