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조직론. 보충설명(14): 그래도 우리가 일본에게 미안한 것...
그래도 일본에 미안한 점은 있다. 우리가 가야와 신라와 백제와 그리고 고구려를 통하여 일본을 내내 식민지로 가지고 있었지만은, 백제 멸망 이후에는 그들을 잘 지켜주지는 못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지.
즉, 우리는 그들에게 소위 '비조'라고 불리던 우리의 유민들을 잘 지켜주지 못했다는 것이지.
그래도 그들은 선을 넘은 것이야. 일본의 조선으로의 침공과 그리고 일본제국주의 시대에 우리를 강제로 합병하려한 시도들은 모두 하늘의 이치인 천륜을 어긴 것 같은 아주 큰 대역죄를 지은 것이라는 것이다, 아주아주 큰 죄를 지은 것이지. 우리에게.
그리고 그것은 절대 용서되지 못할 죄야, 따라서 그 죄에 대한 응징은 절대로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도 우리가 그들을 버려두었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어.
'우리 유민의 일본인으로의 우리의 유민의 동화작업'인 그들의 '기모노 축제'를 보면, 우리의 씁쓸한 그곳에서의 우리의 역사를 다시 보는 것 같아 아주아주 씁쓸하다는 것이야.
백제는 아주 특이한 종족이야, 외국에서의 식민지를 아주 적극적으로 개척했지. 그게 바로 '22담로'를 통해서야. 백제의 식민지는 일본과 중국과 그리고 많은 곳으로의 식민지 개척이 있었지.
특히 백제의 '22담로'는 중국의 상당부분을 지배했다는 것을 의미해.
중국의 산둥지역과 강동지역과, 그리고 중국에서의 제나라 지역과 또 지금의 홍콩이 있는 광동지역과 중국의 남부지역과 또 그 내륙에까지 진출해있었어.
그리고 오직 그것만 있는 것도 아니야. 동남아시아의 상당부분에도 이미 백제가 진출해있었지. 특히 베트남과 그리고 아프리카의 마다가스카라 섬까지도 말이야. 특히 동남아시아 지역에서의 백제 진출지역은 우리에게 바로 '흑치'라고 알려진 지역이지.
백제말의 '흑치상지' 장군도 사실은 바로 이 지역 출신인거야. 그 지역의 땅에 과도한 아연 성분으로 인하여 이가 검게 변하는 특징이 있었거든?
일본에서의 어느 영화였었는가? 이가 검게 변한 일본인 모녀의 장면이 나오는 부분이 있는데 그들은 모두 백제유민의 후예였다는 것이지. 일본에서의 동남아시아로 진출한 백제인의 후예가 아주 많이 공공연하게 왕래했었다는 것이지.
그리고 베트남과 그리고 아프리카의 마다가스카라 섬에서의 '외부에서 갑자기 쌀농사를 가지고 온 선진 종족'의 이야기가 있는데, 이것은 모두 백제 이야기이야.
동남아시아의 벼농사의 시작도 사실은 우리의 백제인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이지.
대신 고구려는 요하지역과 그리고 연나라 지역까지 모두 진출되어 있어. 만주와 그리고 연해주 지역은 처음부터 고구려의 지배영역이었고.
다만 신라와 가야는 일본으로의 진출로 제한되어 있었어. 물론 일본에 최초의 식민지를 개척한 나라와 족속은 신라가 아니라 바로 가야야. 가야가 해외개척에 좀 더 적극적이었었어. 그들이 가진 땅이 그들에게는 좀 좁았거든?
그들은 한반도에서 각축이 좀 심했어. 그들은 중국에서 한반도로 내려온 외래종족이야, 원래는 그들은 중국대륙의 평양을 중심으로 세워진 고조선의 또하나의 부분인 변한의 출신들이야.
고조선은 단일 국가를 추구하지 않았어. 그들의 신앙대로 하늘의 모양이 세개로 나뉘었다고 생각했거든? 그래서 나라도 하나가 아닌 셋이어야만 해. 그게 고조선의 국가형태이지. 그렇게 해서 그들은 진한과 마한과 그리고 변한으로 나뉘어 있었지.
한반도에서의 삼한이 아니야. 바로 중국 대륙에서의 삼한이지. 그러다 변한이 쇠퇴하게 되었거든? 그래서 국가적 대이동이 필요했었지. 그리고 마한은 만주 중심의 진한에서 발생한 부여와 고구려에 의해서 눌려서 결국 한반도의 남쪽으로 밀리고 줄어들었고.
그래서 가야는 외래 식민지를 개척하는데 좀 더 적극적일 수 있었지. 외래종족이거든? 그리고 가장 발전된 철기문화를 가진 종족이었었기도 했고. 그들은 그들의 철기문화를 그들의 가장 강력한 지배수단으로 사용했었어.
그러니 신라의 진한과 그리고 변한의 가야도 다 그런 연고로 한반도에 들어온 것이야.
그런 신라는 일본에서의 그 식민지를 두고 다시, 가야와 뺏고 빼앗는 그런 경쟁하는 관계가 된 것이고 말이야.
나중에는 주로 백제와 신라가 일본에서의 그들의 영역을 두고 서로 다퉜지. 그러니 일본은 처음부터 신라와 그리고 백제의 각축장이었었다는 것이야. 특히 백제는 쌀농사를 그들의 지배수단으로 삼았다. 그들은 그것으로 '22담로'를 개척하는데에 아주 유용하게 썼다는 것이지.
일본에서의 고유의 지배계층은 처음부터 없었지. 울릉도와 쓰시마와 탐라와 그리고 오끼나와에 모두 고유의 지배종족이 다 있었는데 말이야. 물론 일본 전체도 이미 다 물론이고 말이야.
그들은 그들을 '65개 지역으로 나뉘어' 서로 다투고 각축을 벌렸거든? 구주(쿠유슈우)는 그냥 9주로 나뉘었었고, 그게 그들의 이름이 된거야. 그리고 일본은 일본에서의 '65 영주시대'의 기원이 된 것이야.
일본에서는 원래 왕은 없었어. 그냥 호족뿐이지. 그리고 그들은 오직 그 지역을 지배하는 지방호족인 영주만 있었어.
그래서 그들을 지배하는 방식으로는 종교적인 간접지배 형식으로, '하늘의 제관'인 즉 '천황'을 두었었다. '천왕'은 정확하게는 '하늘의 제신, 천황을 위한 천관'으로, 즉 '천황을 위한 제관'의 역활이야. 그게 바로 '천황(제관)의 (본래의)역활'이라는 것이지.
그것은 바로 우리의 '제관 의식'이지. 우리는 항상 하늘에 제사를 드리고 있었거든? 바로 '신녀'와, 그리고 제사를 드리는 '제관'으로.
신라의 '화랑'도 원래는 '하늘에 제사하는 종교적 의식을 위한 청년집단의 모임'에서 출발한거야. 그리고 그 중심에는 '신녀의 역활'을 하는 '화환'이라는 '신녀'도 있었고. 결코 '화랑'으로 남자 중심의 군사조직은 전혀 아니었었다는 것이지.
그래서 일본에서는 지방호족과 그리고 그들을 지배하는 백제와 신라가 있었던 거야. 그게 상당부분 유지되다가 백제가 망하면서 그들의 그 모든 지배종족이 '한반도에서의 도래인', 즉 '비조'와 또는 '도래인'으로 불리게 되었지.
일본에서의 '기모노'는 그들의 고유의상이야. 우리가 아닌 그들의 더운 기후 환경에서만 가능한 의복 형태이지. 따라서 그들의 나무신발인 '게다'와 끝이 갈라진 '쪽버선'과 그리고 밑이 허술한 그들의 '기모노'는 그들의 남방식 고유의 의상이었었다는 것이야.
거기서 바로 그 말에서 '쪽발이'란 말이 생겨나기는 했지만 말이야.
즉, '쪽발이'는 '게다를 신고, 쪽버선을 신는' 그런 족속이란 뜻이야.
그들은 '그들의 신을 신고, 그들의 옷을 입는 그런 문화'라는 것이다.
달리 다른 뜻은 없어. 다만 문화수준의 차이로 경시의 뜻은 좀 있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