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전이면 이 나라 농촌에 자동차를 구경해 보지 못한 사람들이 태반일때이다.
손으로 벼를 베고, 모든 농사를 쇠스랑과, 낫, 크게는 소를 이용한 운반, 논갈이 빼놓고는 손으로 하는 농기구 에 의존하던 시절 , 집에서 할머니들은 당시 검정 고무줄 넣은 속옷을 벗어 속옷의 주름진곳이나 재봉된 사이, 겹쳐저 쮀멘 틈사이에 기생하는 "이" 를 잡는데 하루를 보내던 시절이었습니다. 왠만한 부잣집 집안의 할머니들도 .. 또는 목욕이란것은 잘해봐야 한달에 한번씩 ..
또는 명절때만 하던 시절이 있기도 했으니...
집안이나 또는 사람들이 입는 속옷에 기생하는 "이" 들은 득실거렸고,
또는 방바닥 에 바른 종이 사이로, 또는 찢어진 벽지 사이사이에는 "빈대" 가 꼭 몇마리씩() 기생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기생충들이 70년대 들어서면서부터 급격히 줄어들기 시작했는데, 그 기생충들을 줄어들게 한 일등 공신은 바로 DDT 라는 가루 농약 이었습니다.
사람 머리에는 이들이 득실거리고, 그 이들은 사람의 머리카락에 꼭 붙여 알 을 까놓습니다.
사람들은 그로인하여 가려움증에 시달렸고, 씻지도 않은 손으로 머리를 박박 긁어 댔습니다.
그러다보니 두피에 상처가 나고 그 상처가 기계독, 또는 칫커리(일명 부르는 이름) 이라하여 머리에 상처가 짓무르고 하얀곰팡이가 끼고 두피가 갈라지고 피부에 곰팡이균이 부푸는 그런 피부병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이 별로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런 병들을 해치운 일등 공신이 바로 "DDT"라는 종이봉투에 든 하얀색 가루농약 이었는데..
그것을 사람들의 머리에 한움큼 쥐어 뿌리고, 심지어는 속옷에 뿌려 입고 다녔으니.........
사람들 옆에 있으면 그 사람에게서 지독한 농약냄새가 풍겼습니다. 그러나 그시절에는
온 몸에서 농약(DDT)냄새가 났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는 시절이었습니다.
약이라고는 한약방이나 가서 구할수 잇었던 때라...
심지어는 상처나 곪은곳까지 약의 상식이 없던 사람들은
무조껀 DDT 면 만병통치약처럼 뿌리고 쓸때였습니다.
그래도 다행스러운것은 먹어서는 안된다는 상식 하나는 있었던지
그걸 먹고 죽었다는 소리는 거의 들을수는 없었습니다.( 뉴스가 없던 시절이라 우리 동네에서만 ...하지만 나라전체로 따지자면 DDT로 인하여 많이 죽었겠지요.)
-- "DDT" 란
1874년 황산을 촉매로 하여 클로랄과 클로로벤젠 을 방응시켜 최초로 만들어졌고
그 효능은 농작물을 해치는 곤충이나, 장티푸스, 쥐 에서 쉽게 옯겨지는 페스트, 말라리아등
을 박멸하는 독극물임.
DDT는 지금은 쓰지 않는 독극물 로 취급되는데, 이것을 닭 에게 뿌려 사람들에게 먹도록 했다면 이는 어린이나 노약자들에게는 치명적일수도 있다.
정말 부모를 죽이고, 어린 자식들을 죽이는 일이 될수도 있는 것인데......
농장 주인들은 아마 농장 한켠에 따로 친환경 닭을 키워 자신들은 좋은 깨끝한 달걀을 먹고
지냈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