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믿는 믿음의 대상이 그 사람의 말이기 때문에 말의 실체가 무엇인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말은 영(심령)의 표현(형상)입니다. 영은 생각, 뜻, 사상, 의지, 마음 등등 다양한 뜻을 지녔습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요한복음6: 63)고 하신 것처럼, 말은 곧 그 사람의 육신을 주관하고 있는 영의 실체임과 동시에 그의 근본 생명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실제 주인은 육신(몸)이 아니라, 그 육신을 주관하여 운행하고 있는 영, 곧 말이 그 사람의 실제 주인입니다.
영은 사람의 육신 안에 거하면서 육신의 무지한 장막 안에 거하는 다른 사람의 영에게 말로써 자신(영)의 뜻을 그 사람의 영에게 전합니다. 그러므로 어떠한 사람을 제대로 보려면, 들어난 육신의 형체나 또 육신이 걸치고 있는 옷이나 육신이 소유하고 있는 재물이나 직위나 권세나 명예를 볼 것이 아니라, 오직 그 사람 육신의 실제 주인이 되는 영(사상), 곧 말을 들어 보면 가장 정확하게 그 사람의 내면(영)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육신은 태어나자마자 자신의 주인된 영의 존재를 무시하고 다만 육신의 형체와 그 형체가 사용하고 누릴 수 있는 재물과 지위와 권세와 명예 같은 것들만 가지려고 할 뿐, 몸의 주인되신 영(말)의 정당성과 진실성은 일체 갖추려 하지 않습니다.
사람의 생사화복은 말의 정당성과 진실성에 의해 좌우되기 때문에 이것을 갖추기 위해 사람들은 외형적인 육신의 미모나 지위나 신분보다도 오직 그 육신의 주인된 영이 지니고 있는 실력을 알아보기 위해 어려운 입시 시험을 치르기도 하며, 또 그 외 직장의 일꾼이나 나라의 공직자들을 선출할 때에도 사람의 외형적인 모습이나 지위나 소유물이나 명성보다도 실제 그 육신의 주인되는 영의 실력을 알아보기 위해 면접 시험을 치르기도 하고 또 선거 유세를 통해 후보자의 말을 들어보기도 합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밝고 맑은 투명한 영만 존재하고 무지무능한 육신의 장막이 없었더라면, 아예 그 사람의 말을 들어볼 필요가 없이 영의 생각만 보고도 능히 상대방의 뜻을 알 수 있습니다.
영과 영 사이는 모든 의사가 거침 없이 소통됩니다. 그러나 영이 육신 안에 갇혀 있는 상태하에서 자기 영의 속사정을 남들의 영에게 전달하려면, 먼저 내 영이 육신의 목청을 진동시켜 ‘빵’이라는 소리를 발하게 됩니다. 그러면 듣는 사람들의 귀가 ‘빵’이라는 소리를 자기 주인이 되는 영에게 보고하여 그 소리가 무엇을 뜻하는 것인가를 판단하고 대응토록 합니다. 그러면 그 사람의 영이 ‘빵’이라는 소리는, "어떠한 식재료와 방법을 사용해 만들어진 음식이다."라는 것을 그 사람 육신의 두뇌에 기록해 둔 자료를 찾아 연상(聯想)케 하고 그에 합당한 반응을 하도록 지시합니다.
이처럼 사람의 말이란, 음성의 형태와 강약과 순서에 따라 무엇을 뜻하는 것임을 서로 인식하는 목소리의 공동약속입니다. ‘밥’이라는 소리는 무엇으로 인식하고, ‘하늘’이라는 소리는 무엇으로 인식하자라는 목소리 인식의 공동약속이 곧 말(글)입니다. 이 말(생각)은 반드시 자기 육신 안에 거하는 영의 지시에 따라 나와 자기의 오관을 통해 다른 사람의 오관에게 전달되며, 또 다른 사람의 오관은 그 말을 자신의 주인된 영에게 보고하여 좌우간 선처하도록 합니다.
그러므로 내 영의 속사정을 남의 영에게 알리는 과정에서 육신이라는 무지한 장애물 때문에 말이 생겨나 중개 역할을 합니다. 육신의 눈은 육신에 속한 것들만 감지할 수 있으나 남의 속사정인 영의 형체는 확인해 볼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남의 속사정이 되며 남의 참된 실체인 영을 보려면, 그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듣고 판단해 주는 나의 영만이 그 사람의 영의 실상을 제대로 깨달아 대처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말이란, 듣는 귀가 감지할 수 있는 목소리 인식의 공동약속이며, 또 상대방의 주인되는 영의 실체(형상)인 그 사람의 의지, 생각, 뜻, 사상의 참된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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