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서는 초자연적 능력에 의해 외부로 나타난 현상을 가리키는데, 히브리어로는 ‘오트’로서 대개는 ‘이적’, ‘표징’과 동의어로 사용된다. 성경전서간이국한문에서는 ‘標的’(시 74:4), ‘標示’(살후 3:17)로도 표현되나 원어는 모두 동일하다.
표적과 관련하여 사용된 용례들을 살펴보면 구약에서는 ① 노아 대홍수 후의 무지개 - 인간을 물로 심판하지 않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창 9:12-13). ② 아브라함의 할례 - 하나님이 택한 선민의 표시(창 17:11). ③ 출애굽 전날 밤 이스라엘 백성의 집 문설주에 발라진 어린 양의 피 - 이스라엘의 구원 약속(출 12:13). ④ 라합의 집에 드리워진 붉은 줄 - 구원의 표적(수 2:18). 이상에서 보듯이, 하나같이 진리를 입증하거나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수단으로 나타난다. 한편, 신약에서 ‘표적’을 가리키는 헬라어로 ‘세메이온’은, 예수님께서 메시야이심을 드러내는 수단으로서의 이적을 가리킨다(마 12:38; 요 6:30; 20:30).
성경에서 ‘이적’이라 함은, 단순히 기이하고 놀라운 일(출 15:11; 눅 5:26)이나 이상한 일(마 21:15)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권능(출 7:3-4; 신 4:34; 행 4:28)이나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일(눅 3:17), 혹은 그 배후에 어떤 초자연적인 실재나 영향력이 있음을 나타내는 능력(마 12:38), 또는 기사와 표적(행 7:36)을 의미하기도 한다. 특히, 성경에서 ‘이적’과 ‘기사’와 ‘표적’은 거의 동일한 의미로 쓰이고 있는데, 각각은 의미상 약간의 차이가 존재한다. 즉, ‘이적’은 상식적이고 이성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초자연적이거나 초이성적인 비상한 사건이나 일을 가리킨다. 이에 비해 ‘기사’(奇事, wonder)는 놀라운 일을 경험한 자의 입장에서 나타낸 표현으로 그 사건의 신비성에 강조점을 두고 있으며, ‘표적’(sign)은 이적을 실현하는 자의 신분과 그 이적이 뜻하는 바를 밝히는 데 목적이 있다(막 16:20; 행 14:3).
한편, 성경에서 이적은 주로 하나님의 백성을 보호 인도하고(단 3:19-27), 또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여금 더욱 확고히 하나님을 신앙하게 하며(출 14:21-31), 하나님의 일꾼들의 권위를 세우는 데 동원되고 있다(출 4:21). 또한 하나님 나라의 역동성을 나타내며, 복음의 진실성과 생명력을 증거하는 일에 동원되는 것을 보게 된다(마 10:1; 행 3:1-10; 28:1-10). 그리고 무엇보다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 나라의 도래와 종말적 구원의 완성 및 메시야 예수의 권능에 찬 역사 곧 왕적 통치가 실현되고(마 12:28; 눅 4:16-21) 그로 인해 사탄의 나라가 붕괴되고 있음을 드러내 보이는 데 사용되고 있다(눅 10:18). 참고로, 성경에서는 하나님으로부터 기인하지 않은 사탄이 나타내 보이는 이적을 언급하기도 한다(막 13:22; 계 16:14). 사탄의 이적은 하나님을 부인하게 하고(요일 4:1-3), 하나님 나라와 그 백성을 대적하며 파괴하는 데 동원된다(계 13:11-18). → ‘예수께서 행하신 이적들’을 보라.
<H4><EM class=pcate>원어이해</EM></H4>
(모페트) - 원래 ‘아름답거나 장엄한 행위’를 일컫는 말(대하 32:24). 표적, 기사, 징조(시 71:7; 78:43), 미래 사건의 징조나 암시(사 8:18). 특히, 하나님께서 당신의 능력과 권세를 나타내시기 위해 보이시는 ‘경이’, ‘기사’를 가리킨다(출 4:21). (오트) - ‘표시’, ‘표적’(창 1:14; 출 12:13; 31:13)이나 ‘징조’, ‘미래의 어떤 것을 나타내는 표’(출 13:9; 신 6:8). 특히 ‘하나님의 뜻을 확인시켜주는 확실한 증거’를 나타내는 말(출 4:8). (팔라) - 기본 의미는 ‘분리(구별)하다’, ‘놀랍다(기이하다)’, ‘어렵다.’ 하나님 이외에는 그 누구도 행할 수 없는 기이하고 뛰어난 일(출 15:11), 하나님 자신을 다른 존재와 구별되게 보이는 놀라운 일(욥 10:16) 등을 의미한다. (세메이온) - ‘표시’, ‘상징’, ‘증거’(마 26:48; 눅 11:29), 또는 ‘기적’, ‘신적 기원의 이적’(마 12:38; 요 2:11), ‘마지막 날에 나타날 징조’(눅 21:11; 계 12:1). (테라스) - ‘경이로운 일’, ‘놀라움’, ‘기적’(살후 2:9), ‘기사’(마 24:24; 고후 12:12). (뒤나미스) - ‘가능하다’, ‘능력 있다’는 뜻의 ‘뒤나마이’에서 파생. ‘이적적인 권능’(마 7:22)이나 ‘능력’(마 24:30).
일반적으로 종교현상으로서의 기적은 종교에 대한 귀의ㆍ입신의 기회나 동기가 되는 이상한 일을 의미한다. 동서양, 고금을 불문하고 교조, 고승, 종교적 천재의 생애는 불치라고 생각된 질환을 즉시 치유하거나, 미래 또는 먼 곳의 일을 눈에 본 것처럼 맞추는 등, 인간의 통상 능력을 훨씬 초월한, 기지의 자연법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사적으로 아로새겨져 있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기적이 특히 큰 문제로서 거론된 것은 그리스도교에서이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교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기적의 밀접한 관계를 주장하고, 또한 그리스도교는 끊임없이 고도로 발달한 철학이나 과학과 접촉을 유지하였기 때문에 기적의 본질이나 가능성에 대해서 엄격하게 질문될 수밖에 없었다.
신학적 개념으로서의 기적은 종교적 상황 중에서 신 자신에 의해서 초자연적인 상징으로서 발생하는, 여러 사람에게 지각될 수 있는 놀라운 일이라고 정의 할 수 있다. <종교적 상황 중에서>라는 것은, 예를 들어 예수에 의한 병자의 치유는 단순한 의술이나 마술이 아니라 자신이 불러온 사신의 진실성을 나타내며, 목격자를 신앙이나 개전으로 가져가기 위한 것으로, 기적은 항상 종교적 배경을 전제로 한다는 것이다. <신 자신에 의해서 초자연적인 상징으로서 발생했다는 것>은 기적은 사람의 마음을 관통해서 일상적인 경험 세계에 깊이 작용하고 있는 신의 섭리를 인정시키는 강렬한 빛이기 때문에, 그 작자는 신 자신이며, 그것이 표시로서 지시되어 있는 것도 자연적 질서를 초월하는 신의 업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여러 명이 지각할 수 있는 놀라운 일>이라는 것은 기적이 본래 사람들을 역사나 경험의 세계에 매몰하고 있는 상태에서 탈출시키기 위한 부름이기 때문에 그것은 직접적으로 감각에 호소해야 하며, 또한 사람들을 움직여서 경험 세계로부터의 초월을 실현시킬 정도의 충격적인 이상성을 지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가톨릭 교회의 <성체의 비적>에서 빵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화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신앙에 의해서만 인식되는 것으로, <신앙의 기적>이라고는 하지만 일반적인 의미의 기적은 아니다. 또한 <놀라울 만한>ㆍ<이상성>이라고 할 정도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논의가 있는데, 기적에서 본질적인 것은 현상의 이상이 아니라, 오히려 그로써 지시되고 있는 신의 구원의 업의 위대함과 불가사의함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기적 부정론자는 기적을 자연질서의 파괴를 의미하며 과학적으로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신이 자신이 창조한 세계의 질서를 무시하는 것으로 부조리하다고 하는데, 실제로 기적에서 자연은 그에 통상적으로 할당되어 있는 한정된 역할을 초월해서 구원의 역사라는 보다 고차원으로 둘러싸여서 새로운 역할을 받는 것이기 때문에, 자연의 파괴가 아니라 오히려 완성이다. 기적의 역사에 대해서 언급할 때는 먼저 성서에서 이야기되고 있는 여러 가지 기적에 대해서 언급해야 한다. 그것은 <상징과 불가사의>ㆍ<위대한 업> 등으로 불리며, 그 대부분은 이스라엘 역사의 중대한 시기에 집중되어서 기적이 신의 구원의 업과 결부되어 있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예수가 행한 많은 기적은 그가 가져온 복음과 떼어낼 수 없기 때문에, 특히 부활은 구원의 역사 전체를 이해하기 위한 열쇠이며, 최대의 기적이다. 사도시대 이후에 기적은 성인들의 성성(聖性)에 대한 신적 보증으로 보는 경우가 많으며, 교회법 중에는 기적의 진위인정을 위한 절차가 규정되어 있다. 근대에서 가장 유명한 기적은 1858년 남프랑스 루르드에서의 소녀 베르나데트(Bernadette)에 대한 성모 마리아의 출현과, 그 출현장소에 용출한 샘에 의한 난치병 치유이다. 1882년 이후 상설 의국이 조사에 임하고 있는데, 1903년 순례단 의사로서 루르드를 방문, 자신이 진찰한 빈사상태의 환자의 기적적인 치유를 목격한 A. 카렐(1912년 노벨 의학상 수상)에 의해서 엄밀한 과학적 연구에 대한 길이 열렸다. 가톨릭 교회는 수차에 걸친 조사 결과, 1923년에 처음으로 성모 출현을 공식적으로 사실로서 인정하고, 33년에 베르나데트를 시성(諡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