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범 씨(64)는 건설노동자다. 1970년대 초반부터 허리에 못주머니를 차고 건설현장에서 일했다. 중동도 여러차례 다녀와 돈도 좀 모았다. 2000년대 초반 그는 몇 개월 치 임금을 떼였다. 업체가 부도나 임금을 못 받고, 팀장이 도망가 임금을 못 받는 것은 건설현장에서 종종 일어나는 일이었지만, 이 사건은 그의 인생이 바뀌는 계기가 됐다.
그는 체불임금을 받기 위해 건설노동조합 문을 두드렸다. 그곳에서 두 명의 여성 활동가를 만났다. 김 씨는 그 두 여성을 보고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
"그 두 여성은 건설노동자도 아니었어요. 그런데 건설노동자들의 권익을 위해 노력하는 거예요. 그들을 보면서 '정작 건설노동자인 나는 뭐 하고 있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게 계기가 돼서 노동조합 활동을 시작했어요."
2007년 3월 창립한 전국건설노동조합의 창립선언문 마지막은 이렇게 끝난다. "건설노동자 하나되어 인간답게 살아보자." 건설노조 창립 전부터 따져 김태범 씨는 15년 여를 건설노동자들이 인간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는 지금 건설노조 경기중서부건설지부 지부장을 맡고 있다.
불법이 판 치는 건설현장
지난 20일 경기도 안산에서 김태범 지부장을 만났다. 땀이 밴 그의 조끼 등판에는 '건설현장 법을 지켜라'는 문구가 붙어 있었다. 그와 함께 차량을 타고 인근의 아파트 건설현장을 찾았다. 건설현장엔 다단계 하도급이 만연해있다.
건설산업기본법상 원청 건설사-하청 전문건설업체-건설노동자까지의 관계가 합법이다. 그러나 실제 건설현장에선 원청-하청-재하청 등 다단계 하청이 빈번하게 행해진다. 불법이다. 아파트 4동을 짓는 이 현장도 예외가 아니었다.
"거푸집, 철근, 타설 등을 각각 다른 전문건설업체가 하도급을 받았는데, 철근을 예로 들면, 전문건설업체가 톤당 33만원에 도급을 받았어요. 그리고는 면허증이 없는 오야지한테 26만원에 넘겼죠. 이걸 또 팀장한테 19만원에 넘기고, 팀장이 일꾼 데려다 13~16만원 주면서 일을 시키는 거죠."
원청 건설사 - 전문 건설업체 -오야지 - 소장 - 팀장 - 건설노동자로 이어지는 구조다. 먹이사슬의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면서 인건비를 떼 먹는다. 중간에서 많이 떼 먹으면 먹을수록 맨 밑바닥 건설노동자들의 환경은 더욱 열악해진다. 저임금, 장시간 노동, 안전 무시 등등.
"현장의 안전이 얼마나 개판이었는지, 노동부에서 작업중지 명령까지 내리기도 했어요. 일자용 사다리는 이동용으로만 쓸 수 있지 작업용으로는 쓸 수 없는데, 작업대 제작하는 시간과 돈을 아끼려고 일자용 사다리를 작업용으로 쓰고, 타워크레인이 물건을 올릴 때는 일정한 반경 이내에 사람이 있으면 안 되는데 밑에서 작업하는 가운데 타워크레인이 움직이는 등 한 두가지가 아닙니다. 쉼터도 없어서 노동자들이 작업장 내 바닥에 누워서 쉬고요." 김동호 경기중서부건설지부 조직부장이 거들고 나섰다.
노동조합 활동이 공갈?
건설노조는 지난 십수년 동안 최소한의 근로기준법조차 지켜지지 않는 건설현장을 바꾸기 위해 노력해왔다. 불법다단계 하도급이 아닌, 원청 건설사 - 전문건설업체 - 건설노동자의 합법적 고용을 요구했다. 적정임금, 노동시간 단축, 안전한 건설현장을 내용으로 한 단체협약을 전문건설업체와 체결해왔다.
"노조가 산업안전보건활동을 강화해 현장의 안전을 개선한 건 노동부 근로감독관들도 인정하는 겁니다. 체불 임금이 줄어든 것도 노동조합 활동 덕분이고요."
건설자본은 다단계 하도급 구조를 유지하는 속에서 단물을 빼 먹길 원하고, 건설노조는 이 구조를 깨려고 하니 자본의 입장에서 노조가 달가울리 없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최근 경찰청은 5월부터 7월 말까지 건설현장 불법행위를 특별단속하겠다고 밝혔는데, 노동조합을 타겟으로 삼고 있다. 건설노조가 조합원 채용을 요구한 것 등을 '떼쓰기식 집단 불법행위'로 규정하고 단속에 나선 것이다.
건설 현장이 개설되면 팀장이 인맥으로 건설노동자들을 데려다 쓰기도 하고, 인력소개소를 통해 들어가기도 하고, 노동조합이 전문건설업체에 조합원 채용을 요구하기도 한다.
권두섭 변호사(민주노총 법률원)는 "사용자측이 조합원 채용을 배제하는 전략을 추구해왔기 때문에 노동조합의 채용 요구는 조합원들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방어수단이다. 또 건설현장에서 노동3권을 실현시키는 핵심적인 수단이기도 하다"라고 지적했다.
200년 전 단결금지법 부활시키는 꼴
200여년 전 영국엔 '단결금지법'이 있었다. 산업혁명 이후 기계에 밀려 직조공과 같은 숙련 기술자들이 사라지고 비숙련 노동자들이 노동인구의 상당부분을 차지하게 됐다.
이들은 매우 열악한 처지에서 일했다. 사회적 발언권도 없었다. 그러나 노동자의 수가 증가하면서 노동자의 권리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17세기 영국에선 우애조합, 공제조합 등 최초의 노동조합이 결성됐다. 하지만 초기 노동조합 활동은 자본과 국가의 탄압을 받았다. 영국 의회는 단결금지법을 제정하기도 했다.
법을 지켜 적법하게 고용하고, 산업안전을 지키라는 노동조합의 활동에 대해 '공갈', '협박' 등으로 옭아매려 하는 것은 200여년 전 '단결금지법'을 건설현장에 부활시키는 것과 마찬가지다.
"사용자 입장에서는 노동조합이 뭐가 예쁘겠습니까? 더군다나 대한민국 같은 사회에서 말이죠. 노동조합이 없으면 법이고 뭐고 무시하면서 자기들 마음대로 할 수 있는데, 노조가 있어서 그렇게 못하니 그게 싫은 거 아니겠습니까."
건설노동자 안전교육, 현장 점검 등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김태범 지부장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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