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갈라디아서 2:16) 하신 이 말씀을 오늘날의 신앙인들이 크게 곡해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이 말씀은 율법을 지키고 행하는 것으로는 사람이 구원받을 수 없고, 오직 복음의 행위로만 사람이 구원받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신학자들은 사람이 무얼 행하고 지키는 일의 공로로 혜택(구원)받는 일은 율법이라 하고, 예수님이 모범적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하신 말씀을 믿음으로 지키고 순종한 의의 행위로만 사람이 의롭게 되는 될 수 있다는 진리를 따르지 않습니다.
이 같은 곡해는 예수님의 언행을 따라야 할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그의 언행을 따르지 않게 하고 다만 그가 우리 대신 하나님의 말씀을 죽기까지 순종해 지켰다는 것을 믿는 믿음으로만 의롭게 되어 구원받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의 언행은 따르지 않고 옛 구습인 사단의 행습을 그대로 반복해 살아도 얼마든지 하나님으로부터 자녀나 종 대접 받으며 육적인 축복과 더불어 죽은 후엔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게 한 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이고 복음이라 합니다. 이 때문에 육적인 지혜와 술수와 계산에 뛰어난 금수(禽獸) 같은 자들이 너나 할 것 없이 교회 안으로 몰려 들어와 버젓이 유병언 같은 짓들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가르치고 생활하는 신학자들의 믿음으로만 그리스도인이 되었을 뿐, 예수님과 사도들과 뭇 성도들의 행적을 믿음으로 따라 실행하고자 하는 성령의 근심을 지닌 그리스도인들이 되지 못하였습니다. 성령의 근심, 곧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고린도후서 7:10)라고 하였는데, 이런 성령의 근심은 예수님도 지니고 한 때는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마태복음 26:38) 하셨습니다. 세상에 속한 자들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하는 영이 잠든 상태이고, 하나님께 속한 분들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하는 영(성령)이 활동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저는 성경말씀부터 먼저 읽고 교회에 나갔기 때문에 심히 성경말씀과 교회 교인들의 믿음이 불일치 함을 젊었을 때부터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무슨 말을 하고자 하면, 나같은 믿음의 초년병이 교만하게 무얼 아는 체 한다는 저들의 단죄에 짓눌려 잠잠하였습니다. 그래도 사도 바울의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빌립보서 3:12~14)는 열정이 저를 이처럼 말하도록 하였습니다.
이런 믿음으로 생활하다 보니 하나님의 성령이 율법과 복음의 뜻을 더욱 깊게 깨닫게 해 주셨고, 그 깨달은 지식으로 세상 교회의 목사들과 그들의 가르침으로만 살고자 하는 뭇 교인들의 행적을 보니 참으로 가관이었습니다. 율법이 무엇인지 복음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율법 운운하고 복음 운운하는 그들의 신앙생활에서 파생되는 것은 오직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일들과 지옥의 자식들로 성장하는 일들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제 가난한 생활에 힘겹도록 빚을 내어 최초로 '율법과 복음'이란 소책자를 노태우 전 대통령 당시에 출판하였습니다.
율법은 죄인에게 주는 죄의 법, 즉 이러 저러한 것이 죄이니 이런 저런 죄를 저지르면 반드시 그에 상응한 형벌을 받게 되니 그러한 죄를 저질러 벌받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계명입니다. 그리고 복음은 이러 저러한 것이 의이니, 이런 저런 의를 행하면 그에 상응한 상급을 받게 되어 의의 하나님과 그의 아들이 거하시는 천국에서 영원히 살 수 있는 법(말씀)입니다. 다시 말해, 율법은 죄가 나쁜 것인지도 모르고 그것을 자행하고 있는 뭇 죄인들에게 그와 같은 짓들을 계속 저지르면 다음과 같은 징벌을 받게 되니 삼가하라는 법이며, 복음은 이러저러한 일들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의이니 그런 일들을 행하여 하나님께 상받는 자녀들이 되라는 법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죄인의 죗값을 다 치르지 않는 상태하에서는 결코 의의 교훈으로 상받을 수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즉 지난 세월에 하나님께 원수 노릇한 일들을 말끔히 청산하지 않고 그저 하나님께 상(사랑, 복)받게 되면, 그 받은 상(사랑, 복)을 갖고 반드시 이스라엘 민족처럼 또다시 죄를 저지르는 일에 악용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기존에 저지른 죗값에 대한 죄벌이 최소한으로 이 같은 고통이라는 것을 예수님의 고난을 통해 깨달음과 동시에 자신들의 지나간 허물을 회개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예수를 입으로 주로 시인한다는 것은, 이제부터는 사단의 야욕을 좇는 죄의 대열에서 떠나 하나님께 상(사랑, 복)받을 수 있는 의의 대열에 가담하였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죄인(이스라엘 민족)들에게 율법을 주어 우선적으로 죄의 결과가 참혹한 고통이라는 깨닫게 하였고, 다시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의 피로 속죄받은 후 하나님의 말씀 잘 듣는 자녀로 살게 하였습니다. 율법의 대표격인 십계명에는 하나님(남편) 이외에 다른 신(돈환, 조폭)들을 섬길 수 있는 음녀의 기질이 있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찌니라"(출애굽기 20:3)는 법을 주셨으나, 예수님 같은 아들들에게는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명기 6:5) 하셨습니다. 그래서 바리새인은 죄인으로서 다른 신을 섬기지 않는 율법에 치중하였고, 예수님은 아들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일에 치중하였습니다.
죄인은 율법을 지키는 일에 치중하고, 의인은 복음을 지키는 일에 치중합니다. 그런데 율법을 지킨 청년 사울은 의인 예수를 죽이는 일을 하게 되었고, 사도들과 성도들은 예수님의 교훈(복음)을 지키는 일을 하였습니다. 즉 율법을 철저히 지킨 사울은 복음을 따르는 자들을 핍박하였고, 그런 사울이 회개하여 바울 되었을 때에는 복음을 지키고 순종해 하나님께 사랑 받는 아들이 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사도 바울이 율법의 행위로는 구원에 이를 수 없다고 하였는데, 이 시대의 신학자들이 이를 곡해해 사람이 무얼 지키고 실행하여 의롭게 되고자 하는 것은 모두 율법의 행위로 규정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만 구원받는다고 곡해해 가르쳤습니다.
운동 선수들이 감독들로부터 듣는 말이 대체적으로 크게 두 종류입니다. 즉 첫째는 남들과 겨루어 이기는 일에 대해 부적절한 일, 곧 술과 담배와 이성의 교제 같은 것을 금하라고 하는 율법이고, 두번 째는 온 몸과 마음과 정성과 뜻을 다해 감독이 가르치는 말을 지키라고 하는 복음입니다. 운동 선수들이 매달을 딸려면, 율법(금욕생활)을 잘 지킨 것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즉 술과 담배와 음란을 금하라는 명령은 아무리 잘 지켜도 매달을 딸 수 있는 기량에 이르지는 못하지만, 몸과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비지 같은 땀을 흘리며 감독이 가르치는 기량(복음)을 연습하면 가능합니다.
하나님께서도 이 같은 이치로 사람들을 가르치십니다. 죄를 티끌만큼도 저지르지 않았다는 율법의 준행은 죄인으로서 죄를 범하여 벌받지 않게 되었다는 상태일 뿐, 의로운 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일이 아닙니다. 인간의 구원이란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의의 교훈을 지키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일로 상(사랑, 복)받는 일입니다. 율법의 행위, 곧 죄를 저지르지 않았다는 것은 아직도 하나님께 매맞을 짓을 하지 않았다는 것일 뿐, 하나님께 상(영광, 복)받을 수 있는 의로운 일을 한 것이 아닙니다. 상받는 일은, 오직 예수님의 심성으로 남들을 죄로부터 건져내어 살리는 일들입니다. 이런 일들은 오직 예수님의 말씀을 지키고 순종하는 행위로만 터득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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