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토니누스칙령은 212년에 있었다.
누구나 로마시민, 속주민과 로마시민간 모든 차별을 폐지하는 조치였다. 지금으로 치면 어느날 자고 일어나 보니 미국시민권자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세금을 더 내야 한다고 하는 게 좀 찝찝하긴 하지만 당장은 기분이 좋은 일이다. 콧대 높던 본토의 미국놈이나 나나 법적으로 완전히 평등해진 것이니까.
이제 미국 시민이 되기 위해 미국으로 갈 일도 없고
미군 부대에 자원해서 20년간 복무할 필요도 없고
미국 영주권, 미국 시민권 위해 대사관에 줄 설 일도 없다.
무엇보다 세계 최강대국의 시민이 되었다는 자부심.
지금의 프랑스, 독일, 영국남부, 에스파냐와 포르투갈, 북아프리카해안 도시, 지금의 이스라엘과 시리아에 이르는 광대한 제국의 백성들이 로마 황제의 사해동포와 평등에 입각한 자애로운 조치에 감격하여 로마시민으로서의 자부심에 고취되어 제국의 안정과 번영에 한 몸 떨쳐 일어서야 당연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속주민들은 로마시민이라는 소속감과 그에 따른 자긍심을 거부하거나 반기지 않았고 때론 아예 의미를 느끼지 못했다. 그들은 여전히 속주민 그대로 살았다.
그러나 원래부터 로마시민이었던 사람들은 속주민들이 그러하듯 시간이 흘러도 그대로 로마시민으로서의 자긍심을 간직했을까?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그것을 미련없이 버렸다
태어나면서부터 속주민과 로마시민의 차별을 두는 것은 인권에 반하는 것. 로마의 영향 아래 보호받는 지역에서 태어난 이는 누구든 출생부터 똑같아야 한다.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러한 연설을 TV를 통해 전세계를 상대로 연설하는 세계 최강대국의 인권대통령. 감격하여 눈물을 흘리는 지지자들..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원칙.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정규직과 똑같은 신분상 보장과 급여를 받을 권리가 있고 최저임금 1만원은 인간의 존엄을 위한 최소한의 것으로서 절대 물러서지 않겠다고 연설하는 대한민국의 인권대통령.
이 얼마나 정의롭고 아름다운 모습인가?
감격하여 눈물을 흘려야 마땅하다.
절박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은 실제로 감격하여 눈물을 흘린다.
그러나 로마는 칙령 반포가 있던 3세기부터 국력이 급속히 기울어갔고 경쟁국이던 지금의 이란 파르티아에 무릎을 꿇었으며 군인 월급을 주기 어려울 정도로 경제가 파탄이 나면서 4세기 들어서는 사실상 북방 야만족의 나라들과도 외교적 힘이 역전되어 속주에서의 결혼 풍습이 로마시민 여자가 야만족 남자에게 시집가는 것이 대단한 성공으로 인정될 정도였다. 로마는 결국 마지막 몸부림으로 밀라노 칙령을 반포한다. 한마디로 종교에 귀의하는 것이다.
212년, 누구나 로마시민!
313년, 누구나 기독교인!
비정규직의 양산이 빈부격차를 불러온 것은 맞다.
그러나 바로 그 비정규직의 양산이 노무현의 참여정부에서 본격화된 것이다. 어쨌든 자신들이 시작한 일에 대한 실패를 책임지기 위해 다시 되돌리겠다는 것인데
환영할 일이다.
그렇다면 오랜기간 비정규직으로 고통을 받은 사람을 선별해서 보상을 해주는 것이라면 이해가 가지만 그럴 수가 없다. 매우 복잡핟. 부당한 처우를 받은 사람들을 가려내고 그 기간을 심사해서 현행법에서 해줄 수 있는 구제조치를 취하는 것도 아니다. 무조건 비정규직이라는 이유, 그것도 지금 현재, 또한 구제 조치가 현행법과 헌법을 침해하는 구제조치를 한다. 누구나 공무원이다. 그럼 공무원이 못된 운이 없는 사람들은 어떻게 되나? 박탈감을 떠나 경제적 고통이 더 가중될까? 그렇다면 기존 공무원들의 임금을 내려 비정규직이 받는 수준으로 해야 할까? 매우 복잡하고 그 갈등 또한 예측 불가능하며 수시로 갈등 함수 관계가 바뀌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공정이니 정의니 따질 수가 있겠는가? 공정과 정의가 흩어질 것이다. 내가 알기로 정신이 흩어지는 것을 치매라 하고 죽음이라 한다 들었다.
사회는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장이다.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때 갈등을 조정하는 기준은 법이다.
그러나 그 기준이 되는 법보다 더 상위의 기준은 공동체 구성원 누구나 갖고 있는 공정과 정의다
공정과 정의는 법으로 규정될 수 없다.
왜냐하면 상황에 따라 다른 형태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어느 한 형태로 고정시킬 수 있는 게 아니다.
고정된 것이 아니라 하여 법보다 하위 요인으로 간주한다면
공동체는 분열한다.
다른 누군가 또는 다른 집단이 분명히 나서게 마련이며
정치적 분열은 자명하다.
정치적 분열이 나쁜 것인가?
하지만 한국에서의 정치적 분열 요소는 지역이 유일하다.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그러나 그 분열 요소는 미국의 인종간 분열에 비할 바가 못된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공무원화가 처음 시행할 때만 갈등이 심각할 뿐 시간이 흐르면 결국 묻히게 되고 구별할 수도 없게 되고 결국 예전과 같아진다고 생각할 수 있다. 물론 그렇게 될 것이다. 겉으로는.
그러나 과연 그럴까?
만약 그렇게 된다면 로마는 왜 다시 예전처럼 강대국으로 우뚝 서지 못한 것인가? 로마는 부족국가시절부터 공화정, 왕정을 번걸아 가면서 수많은 위기가 있었다. 정신 나간 황제를 한번도 아니고 여러번 겪었고 외세에 의한 침략으로 존망의 순간도 여러번이었다. 그런데 왜 로마는 3세기에 끝장으로 치달았나?
시간이 흐르면 인간은 잊는다고?
그러면 국민들로부터 버림받은 정치인, 정당이 다시 국민의 부름을 받은 적이 있던가?
그렇게 쉽게 잊는 국민들이 왜 한번 외면한 정치인과 정당을 다시 부르지 않는가?
친노의 부활은 노무현의 자살이 아니었으면 있을 수 없는 매우 특이한 사건일 뿐 일반이 아니다. 게다가 대통령의 자살이라는 극단적 쇼크도 모자라 2012년 대선에서 친노는 패하기까지 했다.
조선조나 고려시대도 아닌 삼국시대에나 있을 법한 무당정치, 외계인이나 가능한 원격조정정치라는 5천년 정치 역사에 단 한번도 없었던 일이 벌어지고 나서야 할수없이 국민은 잊혀진 정치인과 정당을 불러들인 것이다. 자신들이 국민의 부름을 받았다고 하여 국민들이 쉽게 잊는 그런 사람들 무더기 말그대로 대중이라고 생각하면 안된다.
그럼에도 국민들은 잊을 수도 있다.
공정과 정의를 한번도 아니고 연속해서 상시적으로 무시하는
그리하여 사회에서 공정과 정의를 말하거나 요구하는 사람이 우스워지는 때..
부자 되세요라는 인사를 감히 생각할 수도 없던 시절에서 오늘날 누구나 모이면 재테크를 입에 올리는 시대로 바뀌었듯이. 아무도 대화 주제로서 공정과 정의를 입에 올리는 이가 없게 되는 때가 올 것이다.
그 때가 되었을 때
우리 나라가 남미의 아르헨티나나, 남유럽의 그리스 스페인처럼 되어 있을 지, 아니면 세계의 부러움을 사는 인권천국, 복지 천국이 되어 있을지, 또 그도 아니면 미국시민이 되어 있을지
나는 모른다.
로마는 누구나 로마시민 이후 딱 100년만에 누구나 기독교인이 되었다. 아마도 21세기 오늘의 한국은 100년까지는 가지 않을 것같다.
누구나 공무원 이후 딱 10년 후쯤이면
대한민국 모든 국민은 '인권'에 귀의해 있을 것이다.
그때도 여전히 나는
인간은 그저 벌거숭이로 태어날 뿐
권리를 쥐고 태어나는 것도 아니고
의무를 짊어지고 태어는 것도 아니라면서
'인권'이라는 신흥종교를 거부하는 마지막 고집불통이 되어 있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