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련하고 측은한 정세현 전 통일부장관
인터넷 위키백과를 참조하면 정세현의 생애는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1945년 6월 16일에 만주국 헤이룽장 성에서 태어난 '해방둥이'이다. 아버지가 젊었을 때 당시 만주라고 불린 중국 동북3성의 북쪽 헤이룽장 성으로 이주해서 한의원으로 자리를 잡고 있었고 정세현이 태어나고 두 달 뒤 해방이 되었다. 생후 100일 만인 9월 말에 강보에 싸여 그곳을 떠나 만주와 한반도를 관통하는 40일간의 여정을 거쳐 아버지의 고향인 전주에 도착하였다. 중국에서 태어났고, 아버지가 한의사여서 어렸을 때부터 한문에 친숙해서 중국에 관심이 많았다. 1973년에 중국 고대 정치사상 연구(한비자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고, 1977년에 이용희 교수가 국토통일원 장관이 돼서 뽑은 공산권 연구관 중 한 명으로 통일원에 들어간 것이 통일 관련 업무를 시작한 계기가 되었다. 1982년에 모택동 시대의 중국 외교에 대한 논문(모택동의 대외관 전개에 관한 연구)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직업적인 전공은 남북관계지만, 학문적 전공은 중국 외교였다.
1977년 국토통일원 공산권연구관실 연구원으로 특채되었고, 1995년 대통령비서실 통일 비서관 시절 '베이징 쌀회담'에서 뛰어난 수완으로 능력을 발휘했고, 1998년 통일부 차관 시절 비료 지원과 이산가족 문제를 연계한 차관급회담에 수석대표로 활동했다. 남북 당국간 회담만도 30여 차례가 넘었던 2002년에는 장관급회담 대한민국 측 수석대표로서 매끄럽게 업무를 수행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정세현이 통일부 장관으로 재임한 2002년부터 2004년까지는 남북 접촉이 가장 활발한 시기였는데, 남북대화만 95차례나 이어졌고 1971년 이래 남북 간에 체결된 143개 합의 가운데 73개가 정세현의 장관 재임기간에 이뤄졌다. 남북 관계에서 획기적 분수령으로 평가받는 개성공단은 오롯이 정세현의 손에서 나왔다고 할 수 있는데, 2000년 남북 정상 회담 이후 철도 연결 사업이 시작됐지만 별다른 진전이 없을 당시 정세현이 주도적으로 나서서 문제를 해결했고 끝내 정세현이 개성공단의 첫 삽을 떴다. "
뭐......... 간단히 요약하면, 정세현은 중국과 어울리지 않으면 밥벌이 할 수 없는 부류이다. 만약 정세현이 사드 찬성한다면, 중국은 정세현에게 중국 입국 비자를 내주지 않을 것이고, 정세현은 밥줄이 끊기게 될 것이다.
정세현이 작금에 중국의 기관지를 통하여 보여주고 있는 사대매국 행태는, 결국 중국 정부에게 " 내 밥줄을 보호해 주세요"라고 거지 근성의 구걸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인터넷 위키 백과 -
https://ko.wikipedia.org/wiki/%EC%A0%95%EC%84%B8%ED%98%84_(1945%EB%85%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