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권의 탄생은 필연이었다. 이는 민주당의 자체 역량으로 이뤄낼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타당의 소극적 정치로 인한 반작용의 결과로써 정권창출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지층이 최소한 50-60% 이상 되어야 정권의 정당성이 확립될 수 있는데 여기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성과로써 고유의 정책을 제대로 구사하기는 어려움이 따를 수 있다. 구여권은 스스로 탄핵정국의 발판을 열어주어 정권을 퇴출시키고, 대선전에서 1강 2약 체제를 성립시켜 1강에게 조기에 당선권을 확보케 하여 새 정권을 탄생시켰다. 2약 국면에서 쌍방이 끌고 밀면서 1강에게 전폭적인 승리를 안겨주는데 마다할 정당이 있겠는가. 오늘 이러한 선거판이야 말로 후진적 정치판의 본보기요, 이른바 짜고 치는 고스돕판의 전형이다.
노태우 정권을 탄생시킨 13대 대선에서도 36%의 지지율로 새 정권이 창출되었다. 이 선거 역시 김대중, 김영삼, 김종필의 소위 3김이 들러리로 나섬으로써 국민의사와 동떨어진 정권이 만들어졌던 것이다. 이후에 3김은 차례로 대통령 또는 국무총리를 분점했다. 3김은 차라리 노태우 개인에 대한 비방이라도 감췄다면 낯짝 두껍다는 욕은 국민들로부터 면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는 민주제도를 빙자한 국민에 대한 기만이다. 당시 해외의 유력한 저널리즘에서 조차 3김에 의한 노태우 정권 탄생을 비웃으며 대한민국 정치의 후진성을 농락했었다. 복수정당제를 기화로 국민을 투표 기계로 제작하여서는 자신들의 목적을 순차적으로 달성하는 대한민국의 정치판이 언제까지 유효할 수 있겠는가. 새롭고 전체적 국민의사가 즉각적으로 반영될 수 있는 효율적 선거제도가 시급한 시점이다.
여하튼 새 정권은 꾸려지고 새 진용도 갖춰졌다. 시민(서민)층을 대변한다면서 그들에게서 표를 얻기 위하여 안간힘을 쏟은 새로운 정권은 이제 제대로 서민을 위한 행정에 진력해야 할 것이다. 민주주의 선거는 보통, 평등선거로서 보다 두터운 서민층의 지지 없이는 승리를 담보할 수 없다. 이번의 선거 역시 서민층의 전폭적인 지지로써 새 정권이 창출된 것이다. 따라서 새 정권은 민의를 적극 수렴하여 복지국가를 지향하는데 조금도 틈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무엇보다 새 정권은 국민들이 새로운 진용을 보면서 직감적으로 우려하는 부분들을 기우라고 자신 있게 일러줄 수 있어야 한다. 지난 정권의 답습과 계승이 아닌 보다 성숙한 민주주의와 발전적 통일지표를 합당한 청사진으로써 국민께 펼쳐보여야 할 것이다. 국민으로 하여금 이미 식상한 구시대 유물들이 다시금 북녘하늘에서 영상으로 오버랩 되는 국면을 그냥 시대착오적 상상일 뿐이라고 치부할 수 있게 해야 한다. 386 주사파가 언뜻 보인다느니, 백두에서 한라까지의 외침소리가 새록새록 들려온다느니, 임수경의 잽산 걸음걸이가 다시 보인다느니, 이석기가 석방될 준비를 서두른다느니 하는 케케묵은 이념적 정서는 동해바다 창파에 던져져야 할 것이다. 이제 사상에서 주체는 이탈리아 자꼬방 만큼이나 퇴색되고 진부한 이지러진 글자로 되고 말았다. 또다시 이의 외침은 추석지난 들녘의 허수아비처럼 을씨년스럽기만 할 것이다. 주체사상이 시들하다면 정치에서의 자주- 경제에서의 자립- 국방에서의 자위의 구호도 한낱 한시대의, 외진 구석에서의 장식에 불과할 것이다. 다만 유의할 것은 오늘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북녘 집권자의 피집권자에 대한 억압의 수단이며 선동선전 대상이었던 경제에서의 자립은, 그 자체의 모순으로 북녘을 일찍이 피의 무덤으로 만들어 놓았다는 사실이다. 새 정부는 이의 참경을 국민들로 하여금 들여다보게 함으로써 시장경제의 유익성과 우위성을 돋보이게 하고, 덧붙여 북녘 동포들에 대한 구원의 손길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북녘 동포에 대한 인권보호는 물론 인격보존은 새로운 정부의 의무이며 헌법적 책무이다.
노동단체의 아스팔트 투쟁에 의하여 당당하게 집권한 새 정부는 이제 종합적 아젠다를 한시바삐 국민들께 제시해야 한다. 안보 경제 외교의 주요 지표들을 동시에 천명함으로써 새 정부의 발전적 위상을 조기 확보하는 한편, 국민정서를 안정시키는데 총력을 기우려야 할 것이다. 노동단체 부할 만을 꾀하여 이제는 불 꺼져 한줄기 연기조차 시들어 버린 교조주의와 종파주의에 억매여 다시금 겨울잠을 시작할 것인가를 고민하여 대국민 통합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국민의 눈높이는 대기권 높이까지 이르는데, 정치권에서 아직도 교조주의와 수정주의와 주체사상을 운운한다면 이 꼴이야 말로 뒷걸음으로 질주하는 어리석음의 일면이 아닐 수 없다.
오늘 국민들은 이 모든 것을 양보하더라도, 단 하나 죽기 살기로 견지해야만 하는 것이 있다. "능력만큼 생산하고 필요한 만큼 소비한다"는 억측이 이 땅에서 만큼은 범접하지 못하게 하는 환경이 확고하게 뿌리내려야 한다는 것이다. 똑똑한 서유럽 자유민들은 이를 물리쳐 부유한 경제풍토를 마련했고 어리석은 남미와 동남아 일부 국가들은 이를 수용하여 가난함의 악순환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실현 불가능한 이념을 고집하는 분위기 또한 교조주의의 악폐일 뿐이다.
이청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