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미국 하와이에 한국 최초의 남녀공학 학교인 한인기독학원을 설립
- 1914년 7월 이승만이 하와이 호놀룰루에 기숙사를 설립하고 각 지역에서 이곳으로 와서 공부하던 여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교육한 것이 그 모체가 되었다. 다음해에 대한인국민회의 지원으로 3에이커의 토지를 구입, 교실을 건축하였으며, 기숙사도 새로 마련하였다.
1916년 3월 1일에는 기숙사명칭을 한인여자성경학원(韓人女子聖經學院)으로 개칭하였다. 이는 우리나라 최초의 남녀공학제 학교였으며, 이 과정에서 3만달러의 건축비 결손이 나자 이승만은 학생고국방문단을 결성, 조국에 파견하여 이를 충당하였다.
4. 곧 독립할 것이라며 무국적을 선택(중국, 미국 국적을 가졌던 다른 독립운동가들과 달리)
- 해외에 있던 당시 대부분의 주요 독립운동가들은 편의상 중국 국적이나 미국 국적을 가졌는데, 이승만은 끝까지 중국 국적도, 친미파였음에도 미국 국적도 갖지 않고 무국적자 망명객 신분으로 살았다. 예컨대 김구는 대표적인 중국 국적 독립운동가였고, 안창호와 서재필의 경우 대표적인 미국 국적 독립운동가였다.
때문에 이승만은 미국에서 미국 밖으로 나갈 때마다 번거로운 절차를 밟아야 했고, 그때마다 미국 국적 취득을 주변의 지인들로부터 권유를 받았지만, 한국이 곧 독립될 것이므로 필요가 없다며 거절하고는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