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나다나엘이 가로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이 가로되 와 보라 하니라"(요한복음 1:45~46) 하신 말씀은, 열 두 제자 중 한명인 빌립이 자신의 절친한 친구 나다나엘에게 예수님이 바로 이스라엘 민족이 기다리고 기다리든 구세주라고 소개하였을 때에 나다나엘이 예수님에 대해 하신 말이었습니다. 즉 자기가 성경을 통해 알고 있는 구세주의 출생지는 유대 땅 베들레헴인데 나사렛 같은 이방지역에서 어찌 그런 선한 분이 태어날 수 있느냐는 뜻으로 이 같이 빌립에게 반문하였습니다.
당대의 제사장들과 성경 학자들이 갈릴리 나사렛 같은 이방 지역에서는 구세주가 태어날 수 없다는 여론을 예수님이 친히 들었어도 예수님은 자신의 출생지가 유대 땅 베들레헴이었다는 것에 대한 증빙 서류 같은 것을 제시해 저들의 말을 반박하지 않고 오직 위로부터 내려오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직접적인 증거만 의뢰하였습니다. 즉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구세주라는 것에 대한 증거를 자신보다 못한 것들, 곧 주위에 산재한 무지무능한 사람들이나 땅이나 육적인 증빙 서류 따위를 일체 의지하지 않고 오직 자기보다 위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의 산 증거만 의지하였습니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뇨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자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 증거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증거하는 이가 셋이니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이 합하여 하나이니라 만일 우리가 사람들의 증거를 받을찐대 하나님의 증거는 더욱 크도다 하나님의 증거는 이것이니 그 아들에 관하여 증거하신 것이니라"(요한1서 5:5~9) 하심 같이, 예수님이 자기가 어떠한 사람인가에 대한 증거를 자신보다 못한 사람들이나 육적인 증빙 서류 같은 것으로도 충분히 증명받을 수 있었으나 결코 그리하시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능력, 곧 성령의 증거(능력)만 의지하였습니다.
이게 무슨 뜻인가 하면, 모든 진실한 분들, 곧 당대 사람들의 선생 노릇을 할 수 있는 분들은 자기보다 무지무능한 아랫 것들의 증거에 의존하지 않고 다만 자신과 동등하거나 뛰어난 분들의 증거만 구한다는 뜻입니다. 즉 예수님 자신이 남들을 구원해 이끌 실력이 있는지 없는지는 자기보다 무지무능한 제자들이나 사람들로부터 받는 증거에 의한 것이 아니라, 오직 자기와 자기 윗선에 계신 하나님과 그의 영이신 성령으로부터만 증명받겠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마치 지식(知識)과 기능(機能) 자격증은 자신보다 무지무능한 제자들이나 문외한으로부터 취득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보다 뛰어난 국가가 공인하는 실력자들의 철저한 시험과 검증으로만 취득할 수 있다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의 자존감도 이 정도인데 하나님 자신의 자존감이 어느 정도인지 사람된 자존감을 가진 사람이라면 한번 쯤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된 증명을 하기 위해 여러가지 이적기사를 사람들 위에 펼칠 수 있었어도 하나님의 명(뜻)이 아니면 그리하지 않았습니다. 하물며 하나님께서는 더더욱 자신에 관한 증거를 육신을 갖춘 사람들에게 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지존무쌍한 분이시기 때문에 무지한 인간 육신의 요구조건에 맞는 시험 행위로 자신의 신분과 형체를 과시하실 분이 아닙니다. 윗분은 아랫 사람을 시험하고 평가할 수 있어도 아랫 사람이 윗분을 시험하고 평가하는 것은 교만이고 거역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거짓된 종북 반역 세력들은 남의 아내와 자식들을 유혹하기 위해 김일성 일가들처럼 불에 타 소멸될 육적 부강만 펼쳐 자랑합니다.
만일 하나님이 철부지 인간 육신의 요구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그들 앞에 자신의 형체를 펼쳐 보이거나 이적기사를 남발하였더라면, 천하만민은 물론이거니와 종북 반역 세력들도 자신들의 흉악한 심성을 감추고 하나님을 섬길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방법에 의해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은 오직 사단과 같은 기질로 하나님을 헛되이 섬기며 일평생 반역할 기회만 노릴 뿐, 예수님과 같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섬길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근본 실체가 되시는 말씀을 먼저 믿고 따르려 하지 않고 오직 무지막지한 육신의 요구조건을 충족시키는 일들만 골라서 믿고 따르려는 짓은 음녀의 짓입니다. 이런 음녀의 습성을 갖고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은, 신령한 남편과 영존하려는 거룩한 아내가 아니라 남편의 지위와 재산만 챙기고 언제든지 도망가 반역할 음녀(교황, 교주)들입니다.
하나님의 소유물만 챙기기 위해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가 바로 하나님을 반역한 사단의 도적 사상입니다. 그래서 그의 도적 사상에 물든 신앙인들이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이룩할 수 있는 신령한 말씀에 대해서는 먼저 육신의 요구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어야만 그 말씀을 믿고 따르겠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이런 도적들을 데리고 아무리 풍족한 에덴동산에서 살더라도 그들은 사단과 같은 기질로 기회만 생기면 하나님을 배신해 반역을 도모할 뿐, 결코 하나님께 사랑받을만한 동반자로서의 삶을 살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 시시콜콜 따지고 덤벼드는 패역무도하고 불효불충한 자식은 사단 하나로만 그쳐야지, 또다시 70여억에 이르는 사람들 전부를 사단과 같은 자녀가 되게 하는 것은 없는 것보다 못한 괴로움이며 고통입니다.
하나님이 만일 무지무능한 인간들의 육적인 증거, 곧 "보여주면 믿겠다."는 허황된 요구에 치중해 천하만민들에게 그 형체를 들어내어 보여 주신다면, 사단이 지끔껏 하나님께 대한 파렴치한 도전에 대한 죗벌이 자연적으로 소멸됩니다. 즉 지난날 자신의 그 같은 거짓된 행위가 오늘날 이같은 하나님의 진노에 이르게 될 줄 모르고 하였다는 말이 성립되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이 사람에게는 무지무능한 혈육의 뜻으로 이해할 수 있고 납득할 수 있도록 나타내어 설명해 주면서 왜 자신이 하나님을 속이고 반역할 땐 오늘날 이같은 지옥형벌에 이른다는 것을 예시해 이해시키지 않고 납득할 수 있도록 설명해 주지 않았느냐라는 법의 형평성에 따라 마귀도 무죄자로 취급받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 때문에 예수님이 "내가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 듣는대로 심판하노니 나는 나의 원대로 하려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원대로 하려는고로 내 심판은 의로우니라 내가 만일 나를 위하여 증거하면 내 증거는 참되지 아니하되 나를 위하여 증거하시는 이가 따로 있으니 나를 위하여 증거하시는 그 증거가 참인줄 아노라 너희가 요한에게 사람을 보내매 요한이 진리에 대하여 증거하였느니라 그러나 나는 사람에게서 증거를 취하지 아니하노라 다만 이 말을 하는 것은 너희로 구원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한복음 5:30~34)라고 설명하셨습니다.
천사급 이상의 영물들은 하나님을 인식할 수 있는 영을 지녔기 때문에 오직 하나님의 산 증거를 의존해야만 정당한 인격체로 하나님을 대할 수 있을 뿐, 어느 것이든 하나님(말씀)을 배제한 채 무지무능한 혈육에 속한 것들에게만 인기를 얻어 사람들 위에 군림하게 되면 자기를 지으신 부모인 창조주 하나님을 배반한 반역자로 죄책을 당하게 됩니다. "내가 갔다가 너희에게로 온다 하는 말을 너희가 들었나니 나를 사랑하였더면 나의 아버지께로 감을 기뻐하였으리라 아버지는 나보다 크심이니라"(요한복음 14:28) 하심 같이, 예수님이 이 때문에 무지무능한 사람들의 지지나 육적인 증거에 치중하지 않고, 오직 자기보다 크신 하나님과 성령의 지지와 증거만 의지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이처럼 위에 계신 하나님과 성령의 지지와 증거만 구하며 살아가신 뜻은, 천사급에 해당되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에 합당한 처신을 하도록 하여 자신과 같은 동급, 곧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게 하려 함입니다. "나는 사람에게서 증거를 취하지 아니하노라 다만 이 말을 하는 것은 너희로 구원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한복음 5:34) 하신 말씀에 유의하십시오. 오늘날 많은 신앙인들이 예수님처럼 위로부터 오는 증거는 구하지 않고 다만 자신들과 동급에 속한 거짓된 사람들의 인기(증거)를 얻어 행세하려고 합니다. 영적 존재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자신들보다 크신 하나님께 평가받고 인정(증거)받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동급에 속한 자들의 육적인 증거(자격증)로만 행세하게 되면 반드시 부패타락하게 되어 불신자들에게도 내침을 받는 교주와 교황이 되고 맙니다.
하나님은 자기 이하의 피조물로부터 받는 증거(인기)보다 자기가 자기 스스로에게 증명되는 증거에 더욱 치중하였습니다. 즉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에 가리켜 맹세할 자가 자기보다 더 큰이가 없으므로 자기를 가리켜 맹세하여 가라사대 내가 반드시 너를 복주고 복주며 너를 번성케 하고 번성케 하리라"(히브리서 6:13~14)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자신과 동급에 속한 아들(예수님)과 성령(하나님의 영)의 증거에만 주력할 뿐, 자기 이하에 속한 만물이나 육신 뿐인 자들로부터 받는 하찮은 증거로는 만족해 하실 분이 아니십니다. 자기의 아들이신 예수님도 다만 명분상으로만 아들일 뿐, 하나님 자신의 지혜이며, 성령도 명분상으로만 사람들을 지도하는 선생일 뿐, 하나님 자신의 영이십니다. 이 세분이 각각 서로를 증거해 자신들 보기에 한점 부끄러움이 없이 떳떳하게 행동하십니다.
하나님의 자존감이 이와 같기 때문에 모든 인간들이 이 같은 자존감에 합당한 자녀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믿음으로 실행해 지켜야만 비로소 미천한 흙의 습성에서 벗어나 영혼의 자유에 이르게 됩니다. 하나님을 거역하는 자들은 자식 취급해 사랑할 수 없고 그들이 하나님께 행한 그대로의 결과물을 갖고 영벌에 처하게 됩니다. 흙으로 조성된 무지무능한 육신은 흙의 본성대로 생존하려 하고, 하나님께로 태어난 거룩한 영은 하나님의 자녀된 분수와 도리를 존중해 지키려 합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영과 흙으로 조성된 육신의 합성체입니다. 그런데 무지한 육신의 생각에 영이 이끌려 살아가는 것이 합당합니까, 영의 생각에 육신이 순종해 살아가는 것이 합당합니까?
하나님의 자존감이 그대로 자기 자녀된 사람들에게 적용되어 그들에게 가르치는 교육의 주된 내용이 다만 아버지 되신 하나님께 대한 분수와 도리를 깨우치는 일입니다. 인간 육신에게 보이고 잡히고 나타난 흙(천지만물)들은 사실상 가장 불확실하고 믿을 수 없는 가변성의 존재로 창조주 하나님의 뜻에 따라 언제든지 생성, 소멸, 재창조될 가장 최하위에 속한 도구적인 존재들일 뿐, 결단코 모든 존재의 으뜸(근본)이 아닙니다. 만들어질 수 있고, 다른 형태와 성질로도 바꿀 수 있기 때문에 나타나 보여지고 감지될 수 있게 되었고, 또 보고 있는 자(창조주)의 뜻과 의지에 의하여 또 다시 재창조 되어 변형되기 위해서 보여지고 나타난 것이 바로 우주만물입니다.
모든 존재의 최하위에 속한 것이기 때문에 보이고 나타난 것일 뿐, 모든 존재의 으뜸(근원)이라서 보이고 나타난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보이고 나타난 우주만물은 실존이 아니라 가상의 존재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물질의 원소가 어떻고, 인체의 구조와 작동이 어떻고, 만물의 생성소멸과 기원과 나이가 어떠하다는 등등 아침 안개와 같이 소멸될, 곧 존재가치를 부여할 수 없는 저질스런 것들을 가르치는 교육은 일체 하지 않고, 오직 그 모든 것들의 근원이 되는 창조주 하나님께 대해 피조물의 대표된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분수와 도리, 곧 자녀된 본분(인격)만 주로 가르쳤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이 가르치고자 하는 이런 인성 지식에 온전하면 그는 하나님의 동반자가 되어 영생하게 되며, 그때부터 하나님의 천군천사들도 사람들을 수종하게 되며, 또 우주만물은 영생한 사람들의 손바닥 위에 놓인 한낱 조약돌에 불과하며, 그 조약돌에 불과한 우주만물은 영생하는 사람들 앞에서는 감히 “나는 존재한다.”라는 기색조차도 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영생은 만물의 생성소멸을 좌우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자기에 관한 것, 최고의 지식과 기능을 갖도록 하였건만, 그들은 흙의 본성과 잣대로 자신의 거룩한 영마저 흙의 습성으로 살게 하였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자신의 거룩한 영을 저질스런 흙의 습성으로 살게 한 자들은 영벌을 면치 못합니다. 즉 땅과 생물들을 정복해 다스리는 영의 본분을 저버린 책임을 면치 못합니다. 정신 차리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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