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이던 2016년 12월9일 경향신문에 기고한 ‘좀비 대통령을 넘어 사회·경제적 개혁으로’를 다시 올립니다. 조 수석은 11일 임명 후 “민정수석은 검찰에 수사지휘 하면 안된다”고 했습니다.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신설을 두곤 “국회 권한”이라면서도 “노무현·문재인 두 대통령의 소신이고 저의 소신이기도 하다”며 찬성 입장을 밝혔습니다. 다음은 지난해 12월 기고 전문입니다.
국회가 헌정문란 주범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를 압도적으로 의결했다. 지난 6주 동안 전국 방방곡곡에서 벌어진 대규모 촛불집회로 ‘정치적 탄핵’은 이미 이루어졌다. 박근혜씨는 정치적으로는 이미 사망선고를 받았다. 이제 헌법재판소는 ‘좀비 대통령’에 대한 ‘법적 탄핵’을 결정하는 절차를 시작한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뚜껑이 막 열렸던 초기, 국민들은 ‘하야’ 또는 ‘퇴진’을 요구했다. 정치권은 대통령의 ‘2선 후퇴’와 ‘과도거국내각’ 구성을 요구하는 등 ‘질서 있는 퇴진’을 요구했다. 그러나 박근혜씨는 대통령으로서의 권한을 포기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세 차례의 대국민담화에서 일관되게 자신의 죄를 부인했고, 국회에 공을 넘기는 이간책을 쓰기도 하였다. 그리하여 국민의 분노는 더욱 격화되었고, 정치권은 최후수단인 탄핵을 사용하기에 이른 것이다.
조국 민정수석이 11일 청와대 춘추관 대브리핑실에서 취재진의 질문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시간과 비용 절약 차원에서 제일 좋은 것은, 헌법재판소가 탄핵 결정 전 박근혜씨가 사퇴하는 것이다. 미국 닉슨 대통령의 예가 있다. 이것이 박근혜씨가 마지막으로 ‘애국’하는 길이며, 국민에게 속죄하는 마음으로 ‘연말연시 선물’을 올리는 길이다. 그렇지만 기대난망이다. 대통령에서 사임하는 순간 피의자 신분으로 특검의 수사를 받아야 하니 피하려 할 것이다. 직무는 정지되지만 대통령직을 유지하는 것이 수사 대응에 유리하다고 판단하고 있을 것이다.
현실적으로 볼 때, 박근혜씨와 그의 변호인단은 헌재 결정을 지연시키기 위하여 온갖 전술을 구사할 것이다. 예컨대, 특검 수사는 물론 최순실 등 공범의 재판 결과를 다 보고 난 후 결정을 하라고 요구할 것이다. 법률상 심판기간인 180일을 다 채우면 내년 6월7일이 된다. 박한철 헌재소장은 내년 1월31일 퇴임하고, 이정미 재판관은 3월13일 퇴임한다. 만약 이정미 재판관 퇴임 이후까지 결정이 미뤄질 경우, 남은 7명의 재판관 중 2명이 탄핵에 반대하면 탄핵은 무산된다.
이런 지연 전술을 무산시키는 힘은 다름 아니라 ‘촛불시민’에게 있다. 현행 헌법은 1987년 광장의 힘으로 만들어졌다. 헌법재판소 역시 그 힘 덕분에 탄생했다. 약 30년이 지난 2016년 주권자 국민은 헌법정신을 지키기 위하여 다시 광장으로 나왔다. 헌법을 지키는 ‘최종적 힘’은 헌법재판소가 아니라 국민이다. 헌법재판소는 재판관이나 법률가의 것이 아니라 국민의 것이다.
민주헌정을 복구하기 위하여 광장으로 나온 주권자 국민의 함성을 헌법재판소는 잊어서는 안 된다. 애초 헌법재판소는 대법원과 달리, 구성방식과 역할에 있어서 ‘정치적 사법기관’으로 설정되었다. 형법적 유·무죄 여부를 따지는 기관이 아니다. 헌법재판소는 박근혜씨에 대하여 이미 정치적 탄핵이 내려졌음을 직시해야 한다. 그리고 지금과 같은 국정 공백을 하루라도 줄이라는 것이 온 국민의 요구다.
이제 박한철 소장은 애국심과 책임감을 가지고 만사 제쳐놓고 이 사건을 집중 심리하여 자신의 임기 내에 결정을 내리는 지도력을 발휘해야 한다. 재판관들은 추천자 또는 임명자가 아니라 국민의 마음을 읽으며 자신의 이름을 걸고 결정을 내려야 한다. 만약 헌법재판소가 국민의 여망을 외면하고 ‘좀비 대통령’을 연명(延命)시킨다면, 국민의 분노는 헌법재판소를 향할 것이다.
현시점에서 헌법재판소의 최종 결정이 언제 어떻게 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국민과 정치권은 마냥 손 놓고 기다릴 수는 없다. 촛불을 꺼서는 안 된다. 법적 탄핵은 이제 시작이다.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것이 아니다.”(요기 베라) 그리고 광장에서 촛불을 드는 것 외에 할 일이 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발생하게 된 원인을 직시하고 방지책을 만드는 것이다.
먼저 ‘게이트’의 원인을 헌법 때문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동의하기 어렵다. 정치의 무능과 실패를 헌법 탓으로 돌리는 정치인, 조심해야 한다. 게다가 개헌 추진은 박근혜 정권의 실정에 대한 공범인 새누리당의 지분을 보장해주고 협상력을 높여주는 결과를 낳는다. 촛불시민은 “새누리당 해체하라”를 외치고 있지 않은가. 새누리당은 좀비 대통령을 만들고, 그 뒤에서 이익을 챙긴 부역자 집단이다.
대통령 측근의 발호와 비리를 막는 방법은 노무현 정부가 추진하다가 무산된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고비처)를 설립하는 것이다.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처장을 선정하는 이 조직이 만들어진다면, 진보·보수를 막론하고 집권세력의 부패와 비리를 집권 초부터 막을 수 있다. 검찰은 줄곧 박근혜 정권 옹호에 앞장서다가, 무너진다 싶으니 바로 ‘정의의 사도’인 양 칼을 들이댔다. 이런 ‘하이에나 검찰’로는 부패척결은 불가능하다. 여야는 개헌을 통하여 권력 지분 나누기에 한눈을 팔 것이 아니라 고비처 설립에 당장 착수해야 한다.
다음으로 정치권력과 결탁하여 경제 권력을 쥐고 있는 재벌에 대한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 재벌은 노동자와 중소기업에는 ‘슈퍼 갑질’을 일삼으면서 최순실 일족에게는 꼬랑지를 흔들며 아부하고 있었다.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에 근무하다가 급성백혈병으로 숨진 고 황유미씨에게 보상금으로 고작 500만원을 내밀었던 삼성은, 정유라씨에게는 100억원대의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재벌 총수를 하루 국회에 불러 혼내는 것으로 끝낼 일이 아니다. 촛불시민은 “재벌도 공범이다”를 외치고 있지 않은가. 지난 대선에서 여야 후보가 모두 공약했던 경제민주화를 신속히 제도화하여 실천해야 한다.
1987년 이후 많은 사람이 ‘87년 체제’의 극복을 말했다. 그런데 87년 체제의 극복은 단지 선거나 상층교섭을 통한 개헌이 아니라, 87년 체제를 만든 바로 그 힘을 기초로 해서만 가능하다. 2016년 광장에서 터져 나온 요구는 박근혜 또는 최순실 개인의 처벌만이 아니다. 촛불시민은 수구기득권을 재생산하고 강화하는 구조를 깨뜨리고, 공정하고 투명한 새로운 사회를 만들 것을 요구하고 있다.
2017년은 박근혜가 더 이상 대통령이 아닌 해가 되어야 한다. 법 앞의 평등 원칙에 따라 죗값을 치르는 해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2017년은 좀비 대통령 제거를 넘어 사회·경제적 민주화를 시작하는 해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다른 대한민국에서 살 권리와 자격이 있다. ‘명예혁명’은 계속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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