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 5.18 光州'는 진정으로 민주화 운동이었는가? #10
- 돌진하는 시위대의 장갑차, 불붙은 채 구르는 드럼통
- 돌멩이 던지기로 시작 ( 진압군을 殺傷하려는 의도가 명백 )
- 장갑차 및 차량을 돌진 시킴
- 불붙은 드럼통과 불붙은 트럭 버스 들을 돌진 시킴
출처 : 미래한국 , http://www.futurekorea.co.kr/news/articleView.html?idxno=31757
5월 18일(일)부터 10일간 진행된 5.18 光州 기간중, 우선 18일(일)-21일(수) 까지 4일동안 펼쳐진 공방전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시위대가 먼저 공격(돌진)하면
- 계엄군이 방어하거나 역습을 한다
- 5.18 光州를 포함하여, 이 세상 어느 시위에서도 경찰이나 진압군이 시위대를 먼저 공격하는 경우는 없다.
5월 18일(일) - 20일(화)
- 계엄군 투입 규모 : 全南대 - 7공수여단 33대대 , 조선대 - 7공수여단 35대대
- 光州시 일대 : 11공수여단 3개 대대 , 3공수여단 5개 대대, 31사단
- 병력 규모 : 31사단 1000명, 공수부대 3000명
- 계엄군 장비 : M16소총, 곤봉 ( 방패, 方石帽, 方石服 등 근래 전투경찰의 기본장비에도 못 미치는 수준 , 시위대가 돌을 던지면 막을 방법이 없슴 )
5월 18일(일) 오전 , 全南大 교문앞
- 학생 시위대가 ( 방패, 方石帽, 方石服 등이 전혀 없는) 계엄군에게 돌을 던지고 도망감
- 계엄군이 피하거나 맞음
- 시위대가 ( 방패, 방석모, 방석복 등이 전혀 없는) 계엄군에게 돌을 반복적으로 던짐
- 계엄군이 피하기를 반복하다가 결국 흥분하여 추격함
- 추격에 잡힌 시위대를 계엄군이 곤봉으로 때리고 체포자 상하의 탈의 및 원산폭격 실시
- 계엄군의 진압 방식 : 퇴로를 차단하고 포위하여 체포하는 방식
- 273명 체포 연행 , 쌍방 다수의 부상자 발생
5월 19일(월) , 오전 , 光州시내 전지역
- 시위대가 ( 방패, 方石帽, 方石服 등이 전혀 없는) 계엄군에게 돌을 반복적으로 던짐
- 계엄군이 피하거나 추격함
- 추격에 잡힌 시위대를 계엄군이 곤봉으로 때리고 군화로 밟은 후, 체포자 상하의 탈의 및 원산폭격 실시
- 각종 유언비어 난무, 유언비어에 자극받은 시위 군중수가 급증
- 대형을 유지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계엄군이 수적 열세에 놓임
5월 19일 오후 1시 30분경 금남로
- 일부 시위대가 제일교회 신축공사장에 있는 기름통에 불을 붙여 경찰 저지선으로 굴려 보내 폭발
5월 19일 15시 15분경 가톨릭센터
- 차고에 있던 승용차 4대를 시위대가 불태움
5월 19일 15시 27분경 문화방송국
- 5층 건물에 돌을 던지고 언론사 취재차량 1대와 인근 전자제품점에도 방화
5월 19일 17시 문화방송국 앞
- 시위대들이 정지한 공수부대의 장갑차 출입문을 열고 불붙은 짚단을 장갑차 속에 던져 넣으려 시도
5월 20일(화)
- 全南도청에만 계엄군이 주둔
- 光州시내 나머지 지역은 전부 시위대가 장악
- 방송국, 파출소 , 관공서 건물에 잇따라 시위대가 방화
- 경찰 4명, 돌진해 오는 시위대 버스에 깔려서 사망
- 군인 1명. 돌진해 오는 시위대 트럭에 치여서 사망
- 光州세무서 예비군 무기고 피습, 카빈 소총 17정을 시위대가 탈취하여 무장하기 시작 (20시)
5월 20일(화) 오후 4시경 , 全南도청 앞
- 시위대가 택시 100여대, 버스와 트럭 5-6대를 앞세우고 계엄군 방향으로 행진
- 주유소 점거 시위대가 차량에 기름을 부어 불이 붙은 차량을, 경찰 방향으로 밀어 붙임
- 불붙은 버스 1대가 경찰 저지선을 돌파, 경찰 4명이 버스에 깔려 사망
5월 20일(화)
- 저녁 8시경, 시위대가 파출소, 소방서, 시청, 경찰서 등을 점거
- 저녁 8시 이후 , 光州세무서 및 MBC 방화,무기고 피습, 시위대 무장 시작(카빈 17정)
5월 20일(화) 저녁 8시, 光州기차역 앞 광장
- 휘발유가 가득든 드럼통에 불을 붙여서 시위대가 계엄군 방향으로 굴림
- 드럼통을 굴리면서 버스 트럭등을 앞세우고 시위대가 계엄군 방향으로 돌격 ,계엄군 3명이 깔려서 중상
5월 20일(화) 22시 , 全南대 부근
- 돌진해 오던 11톤 트럭이 방향을 틀다가 전복, 계엄군 1명이 깔려서 사망
5월 20일(화) 22시 , 全南대 부근 , 지휘관의 事後 증언
- 박종규 3공수 15대대장 증언 : 악몽의 밤이었다. 나를 죽이기 위해 정면으로 달리는 적(트럭)에게 실탄과 총이 있음에도 사격을 하지 않았다. 시위대가 총을 가졌다는 것을 확인한 순간 “이제 막느냐 못 막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죽느냐 죽이느냐의 문제가 됐다. ( 육군 본부 자료집 )
- (증언 계속) “간헐적 무인 차량 공격과 더불어 각 방면에서 폭도의 몽둥이 공격, 투석 공격은 파상적으로 계속되었다. 적은 우리를 제압하기 위해 함성을 지르며 전진했고, 우리는 최후의 보루를 지키고 부대 건재를 파괴당하지 않기 위해 필사의 대항을 지속했다. … ‘머리를 때리지 말라’, ‘과격한 진압을 삼가라’는 말은 폭도의 돌멩이에 맞아 죽으라는 지시나 다름없었다. … 마치 소총 앞에 탱크가 출현한 미아리 전투와도 같았다.”
- (증언 계속) “차량 돌격조의 출발지를 공격해서 수색해보니, 진짜 조정자는 구멍가게에서 맥주를 마시며 지휘하고 있더라는 얘기도 들었다. 환각제 비슷한 약을 뺏어서 그 당시 군의관에게 확인시켰더니 ‘환각작용을 하는 약이 맞다’고 했다.”
5월 20일(화)
- 24시 , 계엄군 피해 상황이 각 군에게 전파됨
- 24시 , 62대대장 지프에 보관되어 있던 실탄을 중대장들에게 분배하기 시작.
5월 21일(수) 全南도청 앞 광장
- 오전
- 시위대가 점점 불어나기 시작. 시위대의 일부에 카빈 소총으로 무장한 사람들이 발견됨
- 장갑차, 버스, 트럭 등이 시위대의 선두에서 계엄군 방향으로 다가오기 시작
- 11시
- 중대장 1인당 싵탄 10발씩 배분
- 12시
- 각종 차량과 장갑차를 앞세우고 시위대가 전진하면서 시위대와 계엄군 간격이 10미터 수준으로 접근
- 시위대의 장갑차 1대가 계엄군 방향으로 돌진, 계엄군 2명이 장갑차에 깔리고 그중 1명이 사망
- 계엄군이 시위대에게 애국가를 틀어주면서 해산 호소
- 시위대 버스와 트럭이 계엄군 방향으로 계속 전진. 계엄군 후미에서 버스에 발포. 운전자 사망.
- 13시 30분 이전 , 全南도청 앞 광장
- 시위대 장갑차가 계엄군 방향으로 고속으로 1차 돌진 ,
- 계엄군 1명이 장갑차에 깔려서 사망
- 13시 30분 , 全南도청 앞 광장
- 시위대가 장갑차를 운전하여 계엄군 방향으로 고속으로 2차 돌진 ,
- 계엄군이 돌진해오는 장갑차를 향하여 집단 발포
- 장갑차 위에서 머리에 흰띠를 두르구 태극기를 흔들던 청년이 피격
- 시위대가 수백미터 후퇴
- 후퇴해 있던 시위대 중에서 5-6 명이 태극기를 흔들고 구호를 외치면서 튀어나옴
- 계엄군이 다시 이들을 향해 발포 ( 피격 결과는 미확인 )
(주) 영화 '화려한 휴가'에서 이부분에 대한 묘사
- "전남도청의 국기하강식 애국가가 끝나는 순간에, 멀찍이서 평화롭게 국기에 대하여 경례중이던 군중들에게, 계엄군이 무차별적으로 집단 발포"하는 것으로 묘사됨
(주) (<5·18관련사건 수사결과>, p.201)
고소·고발인들의 주장과 같이 위와 같은 발포가 대대장이나 여단장 이상의 상급 지휘관이나 별도의 지휘계통에 있는 특정인의 구체적인 발포 명령에 따라 행하여진 것이거나, 또는 光州시민들의 공분을 고조시키기 위하여 사전 계획에 따라 의도적으로 행하여진 것으로 인정할 수 있는 자료는 없으며,
결국 全南도청 앞에서의 발포는 현장 지휘관인 공수부대 대대장들이 차량 돌진 등 위협적인 공격을 해오는 시위대에 대응하여 경계용 실탄을 분배함으로써, 이를 분배 받은 공수부대 장교들이 대대장이나 지역대장의 통제 없이 장갑차 등의 돌진에 대응하여 자위 목적에서 발포한 것으로 판단됨.
5월 21일(수)
- 17시 , 全南도청에서 계엄군 철수
- 20시 , 시민군 ( 시위대가 무장한 무리 )이 全南도청을 접수
출처 : 미래한국 , http://www.futurekorea.co.kr/news/articleView.html?idxno=317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