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전 대통령은 불법불의한 일을 보았을 때에는 남다른 정의심을 갖고 그 일을 응징하는 단호함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이런 사람들에게는 팔을 걷어부치고 그의 그런 일을 돌봐주십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고 난 후에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없고 그 모든 일들이 다만 자신의 영웅적인 행동의 결과라고 생각해 호기를 부리었고 또 그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권력을 갖고 여느 독재자들처럼 여색을 탐하게 되어 자신이 무너뜨린 불법불의한 자들의 악행을 또 다른 형태로 반복한 것과 같아서 하나님과 국민들로부터 또다시 제거되어야 할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가 집권을 연장한 일 때문에 하나님과 국민들로부터 제거되어야 할 대상이 된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왕정 시대에 합당치 못한 일, 곧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지 못하고 사단과 같은 영웅심에 사로 잡혀 국민들을 다만 의식주에 굶주린 짐승들로 취급해 그것들만 공급해 주면 그들 위에 군림해 김일성이나 진시황제처럼 주색잡기로 여생을 보낼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 심히 하나님께 밉보였습니다. 만왕의 왕 되신 예수님은 하나님께 충효를 다하여 공의와 정의와 정직을 실현해 사람들을 거룩하게 만드는 일에 진력하였습니다. 박정희 역시 그런 일을 따라 행하였더라면 그가 비록 백년을 통치하고자 할진데 어느 누가 그를 끌어 내릴 수 있겠습니까?
이처럼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는 남다른 정의심이 있어서 장기 집권을 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것을 뒷받침할 수 있는 서술력, 곧 하나님께 겸비할 수 있는 심령과 또 온 국민들을 설득해 이해시킬 수 있는 진리가 없어서 여느 독재자들처럼 권력으로 사람들의 비난을 잠재우려 하였습니다. 자신이 행한 정의로운 일에 대해 서술력을 갖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공의와 정의와 정직과 거룩함으로 단장하였더라면, 그는 장기 집권을 하였다 하더라도 하나님과 국민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는 정치라는 정(政)자 하나의 뜻도 제대로 모르는 당대 정치꾼들의 우상, 곧 민주주의 정치제도에 대해서는 어긋났어도 국리민복이라는 정치의 원칙에 대해서는 어느 정치인들보다도 뛰어났습니다.
그가 자신이 행하는 장기 집권에 대해 국민들을 납득시킬 수 있는 서술력이 부족해 전전긍긍하면서 언론 탄압을 할 때에, 제가 보다 못해 "한국적 민주주의"라는 제하의 글을 서신으로 보내어 자신의 장기 집권에 대한 타당성있는 서술력의 소스를 보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서술력 하나만 달랑 챙겨 들고 국민들을 설득시키려 하였을 뿐, 그 서술력을 뒷받침할 수 있는 튼튼한 배경, 곧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와 정직과 거룩함으로 단장하지 않고 무식한 군 출신 측근들의 아첨(충성심)에 둘러 쌓여 더욱 김일성이처럼 천상천하 유아독존하려다 결국 김일성이보다 먼저 죽게 되었습니다.
동서 양대 진영의 세력이 맞닿은 한반도의 남북통일이 사람의 얄팎한 정의심이나 영웅심만으로 가능할 줄 알고 있었던 것이 박정희의 한계점이었지만, 불법불의한 일에 대한 적개심과 그런 일들을 근절시키고자 하는 단호한 심성만은 누구보다 뛰어났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아버지의 그러한 심성만은 본받아 국리민복에 위배되는 일에 대해서는 목숨을 내어던져서라도 싸웠어야 했습니다. 아버지는 합법적으로 정권을 위임 받지 않았어도 종북 세력들을 엄벌하였는데, 그의 딸인 박근혜는 합법적으로 정권을 위임받고도 종북 세력들을 단죄하지 않았습니다. 국리민복을 위한 대통령이 되려면 반드시 종북 세력들을 단죄해 뿌리 뽑았어야 합니다.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국리민복에 위배되는 자는 그가 누구든지 간에 주적삼아 진멸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말 상대도 안되는 종북 세력들과 무슨 타협을 하려고 용납하였는지 기가 찹니다. "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가로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번까지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게 이르노니 일곱번 뿐 아니라 일흔번씩 일곱번이라도 할찌니라"(마태복음 18:21~22) 하심 같이, 사람이 개별적인 원수에 대해서는 일흔번씩 일곱번이라도 용서할 수 있지만, 국가나 국민에게 해악을 끼치는 적들에 대해서는 결단코 대통령의 개인 자격으로 용서해 줄 수 없고 반드시 국민들의 안녕을 헤치는 원한을 갚아 주어야 합니다.
어느 기독인 군인(경찰)이 적군(현행범)과 대치하여 교전하고 있는 중에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는 계명을 존중해 적군을 사살하지 않거나, 또 어느 기독인 법관이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의 송사에 대해, "예수님이 일흔번씩 일곱번이라도 용서해 주라 하였으니 당신을 억울하게 한 피고인을 아무쪼록 용서하도록 하십시오"라고 판결한다면, 이것은 판결이 아니라 죄인의 범법행위를 도와준 이적행위짓입니다. 법관(군인, 경찰)이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남들을 얼마든지 용서할 수 있으나. 남(이웃, 국민)에게 해악을 끼치고 있는 도적이나 강도나 적군의 만행을 보고도 제압하지 않고 용납(용서)하는 것은, 적군(강도, 도적)을 도와준 또다른 형태의 이적행위짓입니다.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너를 송사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하라 그 송사하는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내어주고 재판관이 관예에게 내어주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호리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단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마태복음 5:24~26) 하셨고 또, "큰 소리로 불러 가로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신원하여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나이까"(요한계시록 6:10) 하심 같이, 대재판장이신 하나님께서도 남(성도들)의 송사를 제 임의대로 용서해 줄 수 없어서 그들의 원한을 갚아줄 것을 확약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국리민복을 도모하는 일에 최고 수장(首長)이 되는 대통령은 국리민복을 저해하는 원수가 아무리 덩치가 크고 세력이 강하다고 하여도 그런 자들은 미친 개떼들로 취급해 진멸하여야 합니다. 국법을 요모조모 악용하면서 당리당략만 챙기고 국리민복을 외면하는 미친 개떼들의 난동들을 보다 못해 박정희 대통령은 자기 한 목숨을 던져서라도 나라를 바로 잡으려고 군사혁명을 일으켰습니다. 그런데 그런 정의의 피를 물려받아 합법적으로 정권을 위임받은 자식이라면, 계엄령을 선포해서라도 미친 개떼들을 진멸하였어야 했습니다. 그렇지 못하면 개인적으로도 아버지의 정신을 이어받지 못한 불효가 되며, 국가적으로도 직무를 이탈한 불충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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