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베트남전 파병을 통해 막대한 군사적, 경제적 이익을 통한 '베트남 특수'를 누림
- 베트남 파병으로 인한 특수는 한일국교정상화 청구비용과 함께 박정희 대통령의 1960년대 경제개발 신화를 이끈 쌍두마차로 불리운다. 이 베트남 파병을 통한 베트남 특수는 '한강의 기적'이라는 경제적 신화를 만드는 데에 충분했다. 베트남 파병은 박정희 대통령이 정치와 경제 이익을 노리고 미국이 생각하기도 전에 이미 먼저 시행착오를 내부에서 논의하고 제안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안보와 경제적 실리라는 두 마리 토끼를 이 기회에 잡으려고 했던 것이다. 베트남 파병은 결과적으로 박정희 대통령이 의도한 거의 모두가 달성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는데, 한국 국방부 공개 자료에 따르면 군사 원조 증가분이 10억 달러, 미국의 한국군 파월 경비 10억 달러, 베트남 특수 10억 달러, 기술 이전 및 수출 진흥지원이 총 50억 달러의 외화 수입 효과가 발생했다고 한다.
미국의 일반회계국이 1973년에 작성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군의 베트남 파병과 관련해 미국 정부가 한국에 지불한 돈은 모두 10억 3000만 달러로 추정했다. 미국 국제개발처(AID)도 1966년부터 1972년 사이 한국이 베트남에서 벌어들인 외화 소득을 총 9억 2500만 달러 정도로 추산했다.
이러한 경제적 실리 이외에도 1950년 6월 25일에 일어난 6.25전쟁에서 막대한 비용과 군사를 지원한 미국이 사상 처음으로 지원을 받은 한국 정부를 외교적 동반자로 생각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당시 베트남 전쟁에 대한 명분이 없었기에 미국의 편에 서서 참전하기를 국제사회는 꺼렸기 때문에 우리나라가 미국에게 은혜를 갚았던 격이 되었기 때문이다.
특히나 중요한 것은 당시 베트남 전쟁에 대한 일반적인 국제사회의 시각이 인종전쟁, 즉 프랑스와 미국의 백인계와 베트남, 중국의 황인계의 인종전쟁이라는 불명예를 받았던 것인데, 이러한 인식을 깨기 위해서는 동양의 국가가 미국의 편에 서서 참전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국가는 바로 우리나라가 되었다.
이후 우리나라가 본격적인 베트남 파병을 통해 미국으로부터 전쟁물자 및 용역을 제공받았고, 또 한국군의 장비 현대화와 차관 제공 등의 경제 및 군사지원을 미국으로부터 약속을 받아냈다. 그 결과 1968년 말 박정희 정부가 미국에 M-16 소총 10만 정 제공 및 공장 건설, 전폭기 17개 대대, 전략 공군 기지 건설 지원 등을 요청하여 요구 장비의 85% 수준을 약속했다.
베트남 파병은 이와 같이 베트남 특수를 통한 한국 경제의 도약을 가져왔던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으며, 동시에 한국과 미국의 안보 체제가 더욱 강화되는 시너지 효과를 냈다. 뿐만이 아니라, 6.25전쟁 이후 군사훈련을 통해서 이론적으로만 학습하던 것을 베트남 전쟁을 통해 실질적인 전쟁경험 기회를 전투병들이 체험하여 안보의 중요한 역할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