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있었던 국민연금의 삼성물산·제일모직 간 합병 지지 결론이 삼성그룹의 최순실씨 지원과 맞물리면서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당시 청와대와 문형표 전 복지부 장관은 국민연금의 의결권행사 전문위원들에게 합병 찬성을 종용하는 전화를 했다. 문 전 장관은 “의견을 물었지만 찬성을 지시하지는 않았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장관의 전화 자체가 압력이 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설득력은 떨어진다. 문 전 장관 등의 움직임이 주목받는 것은 정부가 시민들의 미래자금을 지렛대로 특정 재벌의 숙원을 해결해주고 대가를 챙기려 했다는 의구심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국민연금의 합병 지지는 의문투성이였다. 당시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비율 1 대 0.35를 놓고 미국계 펀드인 엘리엇이 반대의사를 표시한 뒤 찬반세력 간의 지분확보 경쟁이 치열했다. 이 과정에서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던 국민연금이 삼성 편에 가세했다. 합병 결정 직전 의결권행사 전문위원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총수일가만 이롭게 한다며 항의했지만 묵살됐다. 합병 신중론자이던 최광 국민연금 이사장과 찬성파이던 홍완선 기금운영본부장 간 갈등이 첨예화하면서 최 이사장은 자리에서 물러났다. 홍 본부장은 최경환 의원의 대구고 동기로, 합병 찬성 직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만나기도 했다. 이 부회장의 그룹 지배력 강화와 승계를 위해 합병이 절실했다는 것은 새삼스럽지 않다.
이 부회장은 합병 결정으로 삼성물산이 보유한 7조원대의 삼성전자 지분을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직접 지배하게 되면서 경영권 승계를 마무리했다. 아마도 국민연금이 반대했다면 이런 일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합병 주총 일주일 뒤 박근혜 대통령은 이 부회장과 독대했고 한 달쯤 뒤부터 삼성은 최씨의 딸 정유라씨의 승마 지원용으로 고액의 자금을 보낸 데 이어 미르와 K스포츠 재단에 200억원이 넘는 돈을 출연했다. 미심쩍은 ‘커넥션’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8월 말 현재 국민연금 가입자 수는 2177만명, 기금 규모는 543조원에 달한다. 특정 재벌의 핫바지 역할이나 하라고 시민들이 국민연금에 돈을 맡긴 것은 아닐 것이다. 국민연금은 지금도 30대 그룹 상장계열사 184곳 중 93개사에 지분 5% 이상을 가진 주요 주주다. 의결권을 행사하려면 기준과 원칙이 뚜렷해야 한다. 유착을 염두에 두고 의결권 행사가 이뤄져서는 안된다. 의혹은 명백하게 규명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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