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건, 이렇게 소련을 붕괴시켰다
신무기 개발 경쟁을 유도하여 소련이 생존차원의 개혁
마가랫 대처 전 영국 수상의 회고록을 읽으면 레이건 미국 대통령의 소련붕괴 전략이 잘 드러난다. 그녀는 로널드 레이건과 콤비가 되어 공산권을 붕괴시킨 여걸로도 꼽힌다. 이 책에서 대처는 공산권 붕괴의 공을 레이건에게 전적으로 돌리고 있다. 대처는 또 소련제국이 큰 유혈사태 없이 해체된 데는 고르바초프라는 마음씨 좋은 러시아 사나이의 등장과 개혁 시도가 결정적이었음을 잊지 않아야 한다면서 러시아에서는 욕을 많이 먹고 있는 그를 변호하고 있다.
대처는 1983년3월에 레이건 대통령이 발표한 이른바 '별들의 전쟁 계획'(SDI=Strategic Defense Initiative)이 소련제국 붕괴를 가져온 가장 결정적 조치였다고 평가했다. SDI란 핵무기를 탑재한 미사일을 우주에서 요격할 수 있는 기술과 방어망을 가리킨다.
미국이 사람을 달에 착륙시켰던 그 국가 기술력을 총동원하여 '별들의 전쟁'을 시작하려고 하자 소련 지도부는 겁을 집어먹었다. 미국과 맞서 그런 미사일방어기술을 개발하고 배치하려면 경제력과 과학기술력을 집중시켜야 하는데 그렇게 하다가는 국가재정이 망가지는 것은 물론이고 다른 부문의 무기개발에 들어갈 돈도 이 대응조치에 전용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판단을 했다.
그 이후 소련의 對美 정책은 총력을 다해서 SDI를 포기하도록 하는 데 집중되었다. 레이건은 소련의 이런 초조한 자세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으므로 더욱 SDI를 정력적으로 추진하는 척했다. 미국 과학자들도 당시 기술로는 완벽한 核미사일 방어망을 만든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레이건은 우직하게 이 계획을 밀었다.
레이건 대통령은 대처 수상에게 솔직하게 말했다고 한다. 우리가 이 계획을 밀고나간다면 소련의 경제에 큰 압박을 가하게 될 것이다. 소련은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 인민들의 생활수준을 희생시키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결국 소련은 미국의 도전에 굴복하고 말 것이다. 즉 군비경쟁을 포기할 것이다. 이는 미국에 대한 소련의 군사적 우위를 포기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들은 개혁으로 나가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왜냐하면 對美우위의 군사력만이 소련 지도부로 하여금 개혁을 거부하도록 하는 마지막 보루이니까.
1986년10월11-12일 고르바초프와 레이건은 아이슬랜드의 레이캬빅에서 頂上회담을 가졌다. 이 회담에서 고르바초프는 전략무기 감축과 관련하여 양보를 거듭했다. 고르바초프는, 중거리핵미사일 감축 협상에서 영국과 프랑스의 미사일은 제외한다, 미소 양쪽이 모두 똑 같은 숫자의 전략무기를 남길 수 있도록 감축한다(그 전에는 현재 보유비율에 따른 감축을 주장했다. 그렇게 하면 소련이 더 많은 숫자를 보유하게 되어 있었다)는 데 동의한다고 했다.
레이건도 5년안에 전략핵무기-대륙간 탄도미사일, 폭격기, 장거리 크루즈 미사일을 반으로 감축하고 10년 뒤에 대륙간 미사일을 전부 폐기하자는 제안을 했다. 고르바초프는 한술 더 떠 10년 뒤에는 모든 전략무기를 폐기하자고 했다.
레이건은 10년내에는 ABM(장거리미사일요격망 건설 금지)조약에서 탈퇴하지 않을 것이지만 이 조약과 위반되지 않는 범위내에서 SDI 실험은 계속하겠다고 했다.
이때 고르바초프가 그동안의 양보를 일거에 만회할 수 있는 함정을 드러냈다.
"지금까지 소련이 제안한 양보는 조건부이다. 즉, 미국이 SDI 개발계획을 실험실에서만 추진한다는 것을 약속해야 한다."
고르바초프는 SDI를 단념시키기 위해서 그동안의 파격적 군비감축안들을 제안했던 것이다. 레이건은 주저 없이 고르바초프의 이 제안을 거부했고 頂上회담은 결렬되었다. 세계의 언론은 레이건을 공격했다. 세계 평화에 巨步를 내디딜 수 있는 기회를 차버렸다면서. 선전전에선 이겼지만 고르바초프는 속으로 이것으로 소련은 곤경에 처할 것임을 알았을 것이다. 재미 있는 것은 고르바초프가 레이건의 양보를 얻기 위해서 제안했던 군비감축안들을 거두어들일 수가 없게 된 점이다. 소련은 그 뒤 미국과의 협상에서 이들 제안을 토대로 양보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미끼만 떼인 결과를 낳았다.
고르바초프 회고록에 이 레이캬빅 회담을 묘사한 대목이 있다. 그는 레이건과의 마지막 담판은 '세익스피어의 드라마' 같았다고 했다.
"우리는 대화를 중단했다가 다시 만나 이야기하다가 다시 헤어지곤 했다. 회담의 성공은 바로 눈앞에 있었다. 그러나 SDI는 넘을 수 없는 걸림돌이었다. 대화는 돈좌하더니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레이건은 말했다. '조금만 더 양보하여 내 안을 받으세요, 그러면 미국 소련과 협조할 것이고 그것이 얼마나 득이 되는지 나중에 알게 될 거요'. 나는 거의 절망적으로 그를 설득하려고 다가갔지만 그는 한 걸음 뒤로 빠지고 있었다.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그는 평화를 만든 대통령으로 역사에 기록되었을 텐데..."
회담이 결렬되어 두 사람이 바깥으로 나왔을 때는 어두워지고 있었다. 레이건이 고르바초프를 향해 질책하듯 말했다고 한다.
"귀하가 여기에 오기까지 모든 일들을 이렇게 계획해서 나를 이 지경에 빠뜨렸습니다."
"아닙니다. 대통령 각하. 지금 당장 회담장으로 돌아가서 사인합시다. 귀하가 우주를 군사화하겠다는 계획을 포기한다면 말입니다."
"정말 미안하군요."
두 사람은 헤어졌다.
사실 레이건은 SDI를 추진할 때부터 대처 수상에게 "나는 어떤 경우에도 이것만은 양보하지 않을 것이다"고 약속했다고 한다. 배우시절 좌익과 대결하면서 공산주의의 악마적 속성을 체험했던 레이건의 이 무서운 일관성이 소련군사제국의 기반을 무너뜨리고 그들을 개혁으로 나가지 않을 수 없게 했으며 그 길은 공산권 해체로 연결되었던 것이다.
우리가 지금 김정일을 어떤 식으로 대해야 하는가에 대한 하나의 참고자료로 소개했다. 김정일이든 고르바초프이든 힘을 바탕으로 밀어붙이지 않으면 공산주의자들로부터는 어떤 양보도 얻을 수 없다. 공산주의자들은 강한 압박을 받아야 변한다. 김정일도 양심이 있을 것이다, 합리적일 것이다, 고마움을 알 것이라고 생각하는 바보가 아직 한반도에 살고 있다면, 더구나 그가 고위직에 있다면 우리는 잠을 잘 수가 없다.
조갑제닷컴 조갑제
악의 제국 소련을 붕괴시킨 레이건 으로부터 배우자
김정일이 사망한 지 2 개월째로 접어든다. 그러나 북한의 우리 동포들은 아직 희망 없는 추운겨울을 보내고 있다. 세계 많은 나라 사람들은 북한 사람들이 굶어죽던, 폭압적 독재에 시달리던 별 관심 없을 것이다. 자신들이 살아가기도 바쁜 세월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이 북한의 주민들에 대해 무관심 하다면 말이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의 계절이 다시 다가온 2012년 2월 초 인 지금 대한민국의 정치가들 중에서 북한의 인권을 이야기 하고 북한 주민들의 삶을 걱정하며 통일 강대국 대한민국을 만들자고 말하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미국의 타임(TIME)지는 김정일이 죽기 10개월 전 북한 주민들의 유일한 희망은 김정일의 죽음일 것이라고 주장했고, 김정일이 죽은 직후 세계 각국이 북한 정권의 안정을 원한다는 개념 없는 소리를 하고 있던 금년 1월 초,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The Economist)는 이제 북한의 권력을 교체하기 위해 논의해야 할 때라고 주장하며 김정은의 교체에 대해 논의한다는 것은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안정과 평화를 위해서 이며 헐벗고 굶주린 북한 주민들을 위해서라고 주장했다.
북한이라는 인류역사상 최악의 정치체제가 비록 방향을 읽고 헤매는 상황이지만 스스로 무너지기를 기다리고 앉아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군인들과 평양의 소수 귀족들에게로 갈 것이 뻔 한 식량이나 물자 원조를 인도주의라는 이름으로 재개해서도 안 된다. 우리사회 일각에서 논의되는 정상회담 운운은 더욱 말이 되지 않는 얘기다. 김정은을 북한 권력의 정당한 계승자로 인정해 주는 일을 대한민국이 앞장서서 하라는 말과 동의어이기 때문이다. 그럴 경우 북한은 70세가 넘은 한국 대통령이 28세 김정은을 알현하려 한다고 선전할 것이 뻔하다.
그렇다면 지금 대한민국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우선 올바른 말을 하는 것이다. 북한 정권이 개혁 개방함으로서 국민들을 스스로 먹여 살려야 할 것이라고 말하고, 도무지 국력에 맞지 않게 비대해진 군사력을 감축하고 핵무기를 포기해서 살길을 찾으라고 말해야 한다. 국민을 먹여 살릴 수 있는 가장 확실하고 검증된 방법을 말하는 것이 뭐가 그렇게 어려운가? 북한 정권이 북한 주민을 위해 노력하기는커녕 핵무기를 지속적으로 개발하고 군사만을 지속적으로 강조한다면 그때 대한민국과 세계는 북한의 변화를 위해 개입하지 않을 수 없다. 이코노미스트지가 이미 말했듯이 세계는 북한의 변화, 즉 레짐 체인지(Regime Change)를 위해 발 벗고 나서야 한다.
역사상 가장 빛나는 레짐 체인지 성공 사례는 레이건 대통령에 의한 소련 붕괴가 아닐 수 없다. 소련이 무너지기 바로 수년전 모스크바를 방문한 아더 슐레신저 교수는 “가게에 물건도 많고 식료품점에 음식도 많고 길에는 자동차도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웬일인지 잘 모겠지만 철갑상어 알 빼고는 모든 것이 풍요로워 지고 있다” 고 너스레를 떨었다. 소련시민들이 다 잘살아서 철갑상어 알을 먹을 수 있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말을 그렇게 한 것이리라. 노밸 경제학상에 빛나는 폴 사무엘슨 교수는 “소련은 아무문제 없는 나라, 소련이 곧 무너질 것이라고 믿는 다면 그것은 천박한 실수” 라며 소련이 곧 붕괴할 것이라고 생각하던 레이건 대통령과 그의 참모를 꾸짖었다. 이들 잘난 사람이 보기에 레이건 대통령은 멍청한 인간이었을지도 모른다.
레이건 대통령은 1982년 초 소련의 본질적으로 허약한 정치 경제 체제를 공격하기 위한 전략을 수립했다. 레이건의대소 전략은 경제전쟁을 포함하는 포괄적인 것 이었다. 극비 문서를 통해 이러한 공격 전략의 목표와 수단들은 구체화 되었다. 레이건 대통령이 사인을 했던 국가안보결정지침(National Security Decision Directives, NSDD)들은 소련을 붕괴시키기 위한 작전 계획이었다.
1982년 3월 레이건 대통령이 서명했던 NSDD-32는 소련의 동유럽 지배를 무력화 시킬 것이며, 이를 위해 동 유럽 국가 내의 반소(反蘇) 조직들을 지원하는 비밀 작전과, 제반 수단을 사용 할 수 있도록 허락 하는 조치였다. 1982년 11월 레이건 대통령이 서명한 NSDD-66은 ‘미국의 정책은 소련이 생존하는데 결정적인 요소들 세 가지를 공격함으로써 소련의 경제를 파탄 시키는 것’ 이라고 선언 했다. 1983년 1월 레이건 대통령은 자신이 주도한 NSDD-77을 통해 ‘미국은 소련과 단순히 공존하지는 않을 것이다.
미국은 소련을 근본적으로 변화 시킬 것’ 임을 천명했다. 이상의 조치들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던 소련의 공산제국주의의 권력을 코너로 몰아넣을 뿐 아니라, 소련과 경제전쟁, 자원전쟁을 개시하는 공격적인 정책이었다. 미국은 소련체제의 본질적인 결함으로 인해 이미 야기 되었던 소련의 약점들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 이었다.
물론 이 같은 미국의 대 소 전략은 외교가 아니라 작전(作戰, operation) 이었고 당연히 미국 CIA는 이 작전의 주역이었다. 소련 권력의 본질적 속성을 꿰고 있었던 윌리엄 케이시 CIA 국장은 레이건 대통령으로부터 막강한 권한을 부여 받아 세계를 종횡 무진 누비며 소련이라는 대제국을 해체 시키는데 성공했다.
물론 미국은 소련에 공개적인 도전장을 내밀기도 했다. 소련의 군사력이 미국을 훨씬 압도하는 상황에서 군축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판단한 미국은 미국의 기술적 우위를 적극 활용하는 강력한 군비증강을 선언했다. 미국으로 날아오는 소련의 미사일을 아예 우주 공간에서 요격해 버리겠다는 발상을 제시했다. 흔히들 Star Wars 라고 불리는 미국의 우주방위 계획이 바로 그것이다. 미국의 식자들은 레이건 대통령을 전쟁관이라고 비난하고 소련과의 군축을 주장 했지만 레이건 은 미국이 군사력으로 강할 때 비로소 소련은 미국의 군축제안을 받아들일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레이건 은 미국 군사력이 소련보다 앞서야 소련이 미국의 군축 제의를 받아들일 것 아니냐는 상식으로 잘난 척 하는 사람들에 대꾸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햇볕정책’ 이 바로 “총 한방 쏘지 않고 소련을 무너뜨린” 레이건의 정책과 같은 것이라고 주장했었다. 북한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북한을 비난하지도 못하고 돈과 식량을 퍼다 준 햇볕정책이 소련과 군비 경쟁을 공개적으로 전개하고, 소련을 붕괴시켜야 할 악의 제국이라고 공개적으로 선언한 레이건 의 대소 정책과 같은 것이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우리의 햇볕정책은 누구라도 동의하는 ‘허약한 북한’을 20년 이상 연명시키는데 기여했고, 레이건의 대소 정책은 잘나가던 학자들에 의해 ‘막강한 나라’라고 평가 되던 소련을 정책 개시 불과 8년 만에, 정말 총 한방 안 쏘고도 붕괴 시킬 수 있었다. 김정일 사후 북한에 대해 어떤 정책을 써야 할까? 레이건 대통령의 대소 정책을 다시 음미해 볼 때다.
이춘근
이 글은 미래한국 2012년 2월 이춘근박사의전략이야기에 게재 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