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 곽재우 ㅡ
임진년에 수십만 일본 대군이 조선 땅을 유린하며 침략해 왔기 때문이다
곽재우는
관군을 믿고 있을 수 없다고 판단, 사재를 털어 의병 모으기에 나섰다.
곽재우는 동네 사람들을 모아놓고 이렇게 설득했다.
"적병이 이미 박두했으니 우리의 부모,
처자는 장차 적병의 포로가 될 것이다.
우리 동네에 나이 젊어 싸울 수 있는 자가 수백 명은 될 것이니
만약 마음을 같이 해 정암나루(鼎岩津)에 의거해 지킨다면 우리 고장을 보전할 수 있을 것이다.
어찌 가만히 앉아서 죽기를 기다릴 것인가."
처음에 곽재우를 따라 모인 병사들은 십여 명에 불과했다.
하지만 곽재우가 용력 있는 자들을 수소문해 모았다.
그리하여 심대승(沈大升) 등 장사 50여 명이 모여 부대의 모습을 갖추었다.
그러자 전쟁 초기 흩어졌던 패잔병들도 합세해 제법 세를 이루었는데,
그 숫자가 무려 천여 명에 이르렀다.
이렇게 모인 의병을 이끌고 곽재우는 스스로 의병대장이 되어 일본과의 결전에 나섰다.
의병들은 정예부대인 일본군에 정면으로 맞서기에는 훈련이 부족했고 무기도 허술했다.
그래서 이들에게는 치고 빠지는 유격전이 전술적으로 유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