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서가 발행되기 전 왕들의 평균수명은 50.14세,
한의서 발행 후 왕들의 평균수명은 43.37세
6.67세 차
의방유취(醫方類聚:)는 1477년 출판되었고 동의보감(東醫寶鑑)은 1613년에 출간되었다. 1477년부터 계산해서 1910년 일본 침략자들이 강제적으로 고종황제 이희(李熙)에게 왕권을 포기하도록 할 때까지, 연산군 이융(李隆), 광해군 이휘(李暉), 그리고 유명무실했던 마지막 황제 순종 이척(李坧)을 포함한 이씨 조선은 열 아홉 명의 항제가 왕위에 올랐으며, 433년간 지속도었다. 그 중 인종 이호(李호)가 독살당했다는 의심을 제외하고 다들 정상적인 죽음을 맞이하였다. 이 열 아홉명의 황제 중 , 가장 오랫동안 장수했던 영조 이금(李昑)으로 여든 세해(83세)를 살았다. 가장 일찍 죽은 이는 헌종 이환(李奐)으로 고작 스물 두 해(22세) 살았다. 이 열 아홉 명의 평균수명은 43.37세 였지만, 1477년 이전 이씨 조선은 142년 동안 여덜명의 왕들이 잇따라 왕위에 올랐다. 단종 이홍휘(李弘暉)가 탄압에 의해 일찍 세상을 뜬 것을 제외하고, 다른 일곱 명의 왕들은 정상적읜 죽을음 맞이하였다. 그 중 열 아홉에 병사한 예종 이황(李晄)이 포함되어 있다. 이 일곱명의 왕들의 평균수명은 50.14세이다. 즉 의방유취(醫方類聚:)와 동의보감(東醫寶鑑)이 존재한 후 조선 제왕의 평균수명은 늘어나지 않고 오히려 6.67세나 줄어들었다는 것은 [의방유취]나 [동의보감] 같은 의서가 결코 조선인의 건강에 공헌한 바가 없다는 사실을 여실히 증명하고도 남지 않은가?
그 원인을 찾았다.
조선조에는 지금 국세청 병무청이 있듯이 치종청(治腫廳)이라 하여 종기를 치료하는 관청과 종기전문의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분의 임금님 즉 효종은 8일(41세), 성종은 10일(38세), 정조는 15일(49세), 문종은 22일(39세)만에 돌아가셨다. 아무리 생각해도 의학적으로나 상식적으로 종기로 그렇게 일찍 돌아가실 이유는 없지 않았게나.
그 원인이 무엇일까?
그 당시 치료방법이라 해 보아야 기와를 데워 붙이거나 뜸을 뜨거나 침을 놓거나 하였을 것이고 그 과정으로 패혈증(sepsis)을 만들어 일찍 돌아가시게 한 것이 아닐까?(사실 효종은 수전증을 앓고 있던 어의 신가귀가 '종기의 독이 얼굴로 흘러내리면서 또한 농을 이루려 하고 있으니 반드시 침을 놓아 나쁜 피를 뽑아낸 연후에야 효과를 볼수 있습니다.'라며 효종의 머리에 침을 놓고 고름을 조금 짜내니 피가 서너 말이나 솟아 나왔다.효종의 마지막 말 '가귀가 아니었더라면 병이 위태로울 뻔하였다' 라는 말을 남기고 과다 출혈로 돌아가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