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을 주군으로 모시던 사람들은 결국 아첨꾼과 간신밖에 없었다는 것은 박 전대통령을 따르던 그 많은 사람중에 단 한사람의 진정한 장자방이 없었다는 것으로 판명이 났다.
진정 박근혜 전 대통령을 주군이라 생각하고 따르던 장자방이었다면 탄핵을 지켜보면서 무심하게 지금처럼 자신의 안위만을 위해 몸을 숨기고 있었겠는가? 단호하게 정치를 떠나 옥살이 하는 주군의 옥방의 인근에 천막을 치고 함께 하던가 아니면 주군을 제대로 모시지 못한 죄로 할복하는자가 아무리해도 몇 명은 있었어야 되지 않겠는가? 그 정도는 되어야 주군에 대한 최소한 예의이며 이 나라에 대한 애정이 조금이라도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겠는가?
문재인정권은 위정을 위한 장기적인 계획은커녕 개념조차 갗추지 않았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단지 정권을 갖기 위하여 우리 유교문화의 저변이었던 경로사상은 하수구에 처박아 버리고 젊은이들을 부추겨 어르신을 멸시하는 것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판세라고 오판하였다.
이러한 경향이 이 나라의 근간인 타인에 대한 공경하는 정신세계를 무너떠림으로서 사회의 부조화의 원인 되어 미래에 어떠한 문제를 야기하는가에 대한 고심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없다.
문재인정권은 정권획득만이 목적이 되었고, 위정보다 논공행상에 눈이 멀고, 이브의 사과와 같은 국민의 눈을 멀게하는 정책만 난발하고 있다. 진정 이 나라를 위하여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자가진단을 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자신들의 정권이후에는 이 나라가 어찌되든 상관없다는 식으로 막나가는 짓만 하고 있다.
여당의 대표라는 자는 아직도 자신이 조직폭력단체의 행동대장인양 매번 걸레를 씹은 듯한 소리만 되내이고 있을뿐만아니라 자신이 문재인정권 창출의 중심이 되는 듯 안하무인의 행동을 서슴치 않고 있다. 역대의 어느 여당대표가 이렇게 격이 떨어지고 시시때때로 추태를 연출한적이 있었던가?
야당의 대표라는 자도 가관이 아니다. 흔히 똘아이적 행동으로 정신병자 같은 미국 대통령을 코스프레하는 짓으로 국민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는 4차원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앞뒤 분간도 하지 못하고 있으니 이를 지켜보는 국민의 가슴은 답답하기 그지 없다.
문재인 정권의 노동정책이 얼마나 잘못을 하고 있는지 깊이 심도 있는 자기성찰이 반드시 필요하다.
지난 우리나라의 실업정책중에서 실업급여를 언급하지 않을수 없다. 실업급여의 수급자들 상대로 실체적인 조사를 해본적이 있는가? 기업의 인사.총무담당자들로부터 실업급여의 허실에 대하여 의식조사를 해 보았는가?
근로자로서 자신이 세금처럼 낸 고용보험료에 대한 혜택을 보고 싶지 않는 근로자가 어디 있겠는가? 기업조직의 치열한 경쟁에서 버티고 인내하며 열심히 살아가는 근로자는 실업급여를 받을 기회조차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하지만 실업급여를 수령하는 사람들 대부분 실업급여를 수령하고 여행을 단 한번이라도 가지 않는 사람이 거의 없다. 회사에서 실업급여 대상기간만 되면 열심히 일할 생각보다 실업급여를 노리는 사람이 된다. 조금도 미안한 생각이 없다. 반대로 실업급여를 받지 못하는 근로자의 대부분은 틈도 없이 일하다보니 여행은커녕 생각조차도 할 엄두도 내지 못한다. 이런 저런 이유로 실업자가 되더라도 하루빨리 새로운 직장을 구하다보니 실업급여 신청조차 낭비가 될뿐이었다.
결국 실업급여는 일부 근로자들이 회사생활에 열성적으로 임하지 않게 하는 마약과 같은 실업정책이 되버렸다.
일부 지차체 단체장이 추진하는 실업청년의 구직장려금이라는 달콤한 정책이 무개념청년들에게 당근은 될지 몰라도 채찍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정말 모른단 말인가?
최저임금 1만원이 우리보다 10배나 더 큰 경제력을 가진 일본조차 시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왜? 그럴까라고 생각 한번 해보지도 않고 예서 외면하는 것은 무슨 꿍꿍이인가?
최저임금 1만원이 역차별적인 정책이 되고 있다는 것에 대한 고찰을 왜 하지 않는가? 가장 먼저 골목상권이 망하고 중소기업이 망하는 것을 꼭 지켜봐야 그 결과를 알겠는가?
지금 이순간 가진자들은 부자증세와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빠른 판단과 계산을 할 것이다. 만약 당신이 가진자중의 한 사람이라면 무슨 생각을 할것인가? 빈 껍데기만 남긴 기업을 남기고 ‘헬코리아’ 할 것이다. 빈껍데기 뿐인 기업에서 남은 자들은 아귀다툼을 할것이고, 규모가 어느정도 큰 기업은 정부가 빗청산을 해 줘야하는 의무만 남을 것이다. 그나마 영세기업의 근로자는 남의 잔치일뿐이다.
기업들이 어렵다고 아우성인데 정부가 나서서 기업을 도산으로 몰아가는 형국인데 어느 누구도 이러한 것에 생각조차도 하지 않는다.
양육강식이라는 논리가 엄연히 존재하는 국제사회의 치열한 무대가 대양이라면 이를 항해하는 배의 선장이 선원들을 안전한 곳으로 인도하지 않고 폭풍우 속으로 항해하도록 이끄는 것에 왜 다들 선장의 잘못된 판단에 대하여 한마디 충언을 하지 못하는지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는 박근혜 전대통령에게 장자방이 단 한사람도 없었다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서민들은 허리띠를 졸라메고 30-40년을 살았고, 은퇴를 한 이후에도 한달에 채100만원을 넘지 않는 돈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그 수많은 세월동안 정말 앞만보고 살았왔지만 정부의 지원이나 혜택을 받을 만한 그 흔한 기회조차 없다.
그런데 저소득층 또는 극빈자계층에 대하여 이 시대는 너무도 후한 대접을 하고 있다. 한달에 이런 저런 제목으로 60여만원에 달하는 지원과 후원금의 혜택을 받고 있다.
그럼 국가로부터 지원받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대부분 젊은 시절에 열심히 일하지 않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남들이 먹을거 안먹고, 나들이 한번 제대로 하지 않고 열심히 살 때, 빗을 내어 흥청망청 살았던 사람들이 많다.
결국 허리띠 졸라메고 힘든 여건속에서 열심히 산 사람이나 흥청망청 살았던 사람이나 현재 시점에서 차이나는게 없다. 따라서 30-40년동안 열심히 땀 흘리고 여행은커녕 외식한번 제대로 못해본 사람들의 가슴속에 맺히게 되는 아픔은 누가 위로하나?
오히려 흥청망청 먹고 마시고 입고 놀러다니고, 술주정하고 툭하면 다니던 회사 때려치웠던 사람들이 국가로부터 대접 받는 것이 부러울뿐이다.
저소득층중에 안타까운 사연보다 그렇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있는가? 이들을 외면하자는 것이 아니다. 최소한의 양심을 가지게 할수 있는 정책부터 개발하고 난후에 지원을 하든 말든 했어야 하는게 아닌가?
최소한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손해보는 세상을 만들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의 양심을 논할만큼 심오한 사회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미 우리나라의 건실하였던 중산층은 파괴되었고, 피폐되었다. 너도나도 ‘헬코리아’를 외친다. 이젠 가진자들이 ‘헬코리아’를 외치며 떠날 것이다. 그들은 쉽게 이 나라를 떠날 수 능력을 가졌기에 쉽게 떠날 수 있을 것이다. 열심히 노동하였지만 어쩡쩡한 계층은 국가로부터의 버림과 냉대을 받으며 ‘지옥’을 눈앞에 두고 있다.
썩은 정권이 썩은 정부를 만들고,
썩은 국회가 썩은 정책을 받들고,
썩은 자치는 썩은 고기를 뜯고,
크거나 작거나 정치하는 사람들이 인간이 되는 세상이 언제 오겠는가?
이 몸이 죽어 또 죽어 골백번 죽어도 영원히 오지 못할 세상일 것 같아 서럽다.
오뉴월 더위만큼 가슴에 열불나는 어느 노동자가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