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화 배경의 장편소설
행복마을 유기견들
목차
1.행복
2.大統領의 겨울
3.끝없는 추락
4.말밥 주는 돌이
5.미련
6.진실
7.가슴속에 正義
8.國民의 알 권리
9.문재인大統領님 어찌하시렵니까.
이 글 읽는 동안 한 남자의 절규에 인간적 슬픔에 젖고
正義감 소유하신 분이시라면 분노 끓을 것입니다.
(1) 행복
1981年 3월4일 신성호와 김영란 百年佳約 맺었다. 젊은 청춘들 서울로 상경 신접살림을 차렸다. 매일 이른 아침이면 부엌에서 달그락 소리 들린다. 깨소금 맛 풍긴다는 신혼 생활은 항상 행복하고 함께 시간은 오순도순 꽃길 걷듯이 즐거웠지만 國家 경제 상황은 오일쇼크 여파와 민주화 운동 후유증에 정치 불안정으로 소비위축 되어 1인당 國民소득 7,200달러 선이었다. 국내에서 직장 수입은 신통치 않다. 미래 위해 사랑하는 아내 남겨 두고 머나먼 리비아 행 비행기에 탑승, 트리폴리 공황에서 내렸다. 온통 생소한 이국땅, 얼마 후 회사에서 보내 준 버스 타고 대우건설 벵가지에 3천 세대 짓는 그곳으로 향하고 뿌연 먼지 일으키며 달리고 달려가도 끝 보이지 않는다. 사막 달리는 동안 풀 한포기 볼 수 없자 바짝 긴장 되었다. 목적지 도착하였지만 너무 오랜 시간 소요로 기진맥진 상태, 현장 나가면 사하라 벌판 모래 바람 휘~위 윙 몰아치고 기온 뜨거워 숨 막힐 정도지만 영란 모습 떠올리면 더위쯤 견딜 수 있었다. 역경 극복하고 85年 귀국, 그해 창업했다. 아시안 게임 준비로 건설 경기가 좋아지며 사업 퍽 순조로웠다. 성호 믹서기 소리에 눈 부스스 뜨면 얼마 후 영란 하루도 거르지 않고 당근 갈아 쟁반에 받쳐 들어온다.
“일어 나셨어요?”
영란 생긋 미소 지으며 하품하는 남편에게 쟁반 위 컵 집어 내민다.
“어 잘 잤어?”
성호 잠 덜 깬 듯 입 쩝쩝하다 상체 일으켜 마신 후 ‘고마워’ 싱긋 그릇 돌려 주고는 침대에서 내려와 유정이 방으로 후딱 들어간다. ‘녀석 꿈나라 여행이군.’ 혼잣말 흘리며 잠든 유정이 볼에 뽀뽀해 댄다. 그리고 조식후 출근하는 날, 항상 그랬듯 현관문 앞에서 구두 신으면 영란 미소 보이며 다가온다. 가볍게 스킨십해 주고 돌아서는 성호 뒤에서 영란 ‘다녀오세요.’ 상냥한 음성에 성호 밝은 표정으로 다시 뒤돌아 손 흔들어 보이며 나선다. 그리고 승용차 올라타 빌라 현장으로 달려간다. 직원과 실내 들어가자 인부들 사다리 길게 펼치고 서서 양고대로 핸디코트 작업하고 있다. 진행 상황 살펴본 후 다시 차에 올라타 아파트 현장으로 이동 로프 타는 사람들 외부 벽에 매달려 수성 페인트 로라 질하고 있다. 건물 밑에서 페인트 덕지덕지 옷에 묻은 작업반장과 한참 지켜보다가 현황 진척 체크 후 본사 사무실로 들어오자 직원들 일어나 인사한다. 일정 마치고 퇴근 현관문 열며 ‘유정아~’ 정감 있게 부르자 머리 꼬아 양 갈래로 묶은 유정 뛰어와 ‘아빠’하며 덥석 안긴다. 서둘러 번쩍 머리 위로 들어 올리는 성호 앞에 섹시한 영란 미소 머금고 고개 살짝 숙여 반긴다. 성호 이빨 만개하며 유정 무등 태워 안으로 들어선다. 그리고 옷 갈아입은 후 나오자 싱크대 앞에서 과일 접시 유정 제 가져가겠다고 떼쓰고 영란 허리 굽혀 같이 온다. 성호 얼른 받아 식탁 가운데 놓자 유정 좋아 함박하며 박수친다. 성호 딸 끌어당겨 무릎 위에 앉힌다. 포크로 과일 꼭 찍어 서로에게 먹여주며 웃음 꽃 터트리는 家庭 더 없이 행복한 나날이었다.
大統領의 겨울
1993年 2月 25日 제14代 김영삼 大統領님 취임식은 5,16 쿠데타 이후 32年 동안 군사 정권 시대를 종식하고 文民 정치 탄생 선언 날이었다.
“친애하는 7천만 국내외 동포 여러분, 이 자리 참석하신 귀빈 여러분 마침내 國民에 의한 國民의 정부가 이 땅에 세워졌습니다. 저는 14代 大統領 취임에 즈음하여 새로운 조국 건설에 대한 시대적 소명을 온 몸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누구나 신바람 나게 일할 수 있는 사회, 우리 후손들이 이 땅에 태어난 것을 자랑으로 여길 수 있는 나라, 그것이 바로 新韓國입니다. 우리 모두 이 꿈을 가집시다.~” 짝 짝 짝 짝 짝
文民정부에 기대는 希望 무척 컸고 출범 후 부응했다. 역사바로세우기, 금융실명제, 온갖 비리에 불만스러웠던 國民들 전반적 개혁 칼 빼들자正義 실현 되는 것 같고 선진국 진입 한껏 꿈꾸며 다수 박수쳐 댔다. 하지만 1990年 부터 계속이었던 경상수지 적자는 개선 없는 일로였다.
“부채비율이 1700%이오. 더 이상 대출은 큰 재앙을 초래할 것입니다.” “재계 14위 그룹이 도산 되었을 때 파급 고려하지 않을 수 없잖소.”
“死亡선고 내린 기업이나 다름없습니다. 도태시키는 판단이 옳습니다.”
1997年 1月23日 위태위태하던 한보철강 부도, 1月30日 결국 5조7천억 채무 안고 도산 그룹 파장은 실물 경제에 엄청 영향 끼치는 악재였다. 이어 삼미, 삼립, 진로, 대농, 한신 공영도 주르르 부도났다. 이 상태는 韓國 경제 추락 예고하는 징조였다. 노사분규로 인해 기아자동차 장기 파업하지만 정치인들은 채권금융권이 알아서 할 일이라며 적극 해결에 나서지 않아 國民들은 매순간 가슴 조이며 불안한 일과 지내야 했다. 사회 일각에서 이러다 國家적 변고 생기는 것 아니냐고 우려 일었다.
“대기업들이 저렇게 많이 무너지다니 참으로 걱정스런 일이야”
“前年도 경상수지 200억 달러 적자라잖아.”
韓國을 포함한 대부분 아시아 國家들은 세계의 기축 통화 미국 달러를 자국 통화에 고정시킨 고정환율제도 사용하고 있었다. 1990年 미국은 주택대부조합 사태에 따른 경기 침체를 극복하려고 기존 금리를 계속 인하하다가 1994年 2月부터 인플레이션 억제를 위해 기존금리 초기에 25%p 올렸으나 하반기에는 75%p까지 올려댔다. 전격 금리인상은 新興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