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영대장 이완이 허생을 찾아왔다. 허생의 능력이 예사롭지 않음을 안 부자 변씨가 데리고 온 것이다. 이완이 북벌의 계책을 물었다. 허생이
인재책과 명 후손들의 우대책을 제시했더니, 이완이 난색을 보였다. 마지막으로 가장 실행하기 쉬운 계책이라며 방책을 제시했다.
“나라의 청년들을 뽑아서 머리를 깎고 호복(胡服)을 입혀서 중국에 보내시오. 선비는 과거를
보게 하고, 평민은 멀리 강남에 가서 장사하게 하시오. 그곳의 허실을 정탐하고 그곳의 호걸들과 사귀게 한다면, 천하의 일을 도모할 수 있고
나라의 수치를 씻을 수 있을 것이요.”
이완은 난색을 보이며 말했다. “어찌 사대부가 예법이 있는데, 머리를 깍고
호복을 입는단 말이요?” 허생은 안이하고 고식적인 이완의 반응에 화가 나서 내쫓아 버렸다.
〈허생전〉에 나온 이야기다. 연암이
볼 때, 중국이 청조의 지배하에 안정을 이루고 있는데도, 사람들은 청에 대한 반감이 앞서 중국 정세가 매우 불안한 것처럼 오해하고 있었다.
선입견을 교정할 제대로 된 정보를 갖고 있지 못했기 때문이다. 중국뿐인가. 일본과 서방에 너무 무심하고 정보가 부족했다.
실사를 갖고 판단하는 것이 실학이다. 실학자들의 특성 가운데 하나가 세계지도에 대한 관심이었다. 세계 지형에 대한 지식은 중국
중심의 화이론을 벗어나는 생각을 하게 했다. 중심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내가 서있는 곳이 중심이라는 것이다. 중심은 상대적이었다.
작은나라가 대외관계를 어떻게 설정하고 어떻게 생존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실학의 한 테마이다. 큰나라에 의존하는 전략은 자칫
주체성을 상실하고 식민주의에 빠질 수 있다. 또한 추종하는 큰나라 외에는 차별하고 무시하는 이식된 선민의식에 빠지기도 한다. 반대로
주체성·자주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면, 자폐에 빠질 수 있다. 또한 국수주의적 배타성이 표출되기도 한다.
순혈주의와 고대사의
영광을 통해 주체성을 확보하려는 것은 이제는 위험하다. 삼한분립의식을 버리고 단군민족의식을 갖게 된 것은 몽골제국에 저항하면서였다.
단군민족의식은 대일항쟁에서도 위력을 발휘했다. 그러나 결속감과 함께 차별의식도 만들어낼 위험이 있다. 공존과 공영을 위해서는 스스로의 자존감을
견지하면서도 타자에 대한 존중도 갖춰야 한다. “하늘에서 보면 모두가 평등하다.”
큰나라는 내부의 이질성과 넓은 변방에 잠재적
위험이 있다면, 작은나라는 큰나라의 원심력에 의해 분열되거나 갑작스런 중심 변동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다. 세계정세의 변화에 대한
감각엔 근시안이 아닌 거시적·역사적 안목이 필요하다. 또한 구체적 실사를 살펴 방책을 구해야 한다.
□ 글쓴이 : 김 태 희
(다산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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