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사투쟁 머리띠
“마을 분위기가 좀 어수선하고... 살벌하네요...”
멀리 수원에서 일부러 저를 찾아오신 어떤 분이 저와 수인사를 나누면서 약간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하신 말씀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우리 마을은 온통 붉고 검은 현수막들이 마을 초입부터 줄줄이 걸려있기 때문입니다. 그 적혀진 구호도 강경하고 살벌하여-
“너도 죽고 나도 죽는다.” “목숨 걸고 반대한다.” “사생결단 반대투쟁”... 등입니다.
사연인즉- 우리 황둔 마을에 ‘열병합 발전소’가 들어온다는 것이고 이에 마을 주민들이 반대시위에 나선 것인데 주민들의 주장은 그 시설이 “쓰레기를 소각하여 얻은 열에너지로 기계를 돌리는 시설” 이라는 것입니다. 불에 탈 수 있는 여러 가지 온갖 쓰레기들을 마을로 실어 와서 태워 가동을 한다는 것인데 그럴 경우 마을 오염이 불을 보듯 뻔-하다는 하는 것이며 이에 대처하기 위한 자주 열리는 마을 회의에 나가 보면 이 경우와 같거나 비슷한 피해사례들을 예를 적시한 여러 가지 유인물을 나누어 주고 있습니다.
주민들의 한결 같은 주장은 청정마을로 유지되고 소문이 나서 강원도에서는 드물게 주민 수와 가구 수가 늘어나고 있는 우리 마을인데 쓰레기 소각 발전소가 웬 말이냐는 것으로서 우리 마을 뿐만 아니라 이웃으로는 10분 거리인 주천면과 인근 영월 경계 마을들이- 아래쪽으로도 역시 10분 거리 도경계에 위치한 제천시 오미리 마을 주민들까지 반대 서명과 시위에 합세하고 있습니다.
“맑은 물 맑은 공기 우리 힘으로 지켜내자.”
“청정마을 찾아온 나, 열병합 발전소가 나가라 하네-!!”
마을 중앙 차로 양쪽에 서 있는 전봇대와 전봇대 사이에- 또 이삼층 건물 마다 만장(挽章)기처럼 내려 걸려서는 바람에 펄럭이고 있는 붉고 검은 바탕에 ‘강경체(體)와 투쟁체(體) 글씨들이 투쟁의 열기를 대변하여 주고 있는데 상기한 것처럼 우리 마을에 처음 와보는 사람들과 지나가는 나그네들의 눈에는 과연 ‘살벌한-’ 모양으로 비추어질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구호들은 외지인들로서는 쉽게 알 수 없는 마을 주민들의 “오염시설 결사반대”로 끓어오르는 심경의 분출입니다. 명백한 오염원의 유입을 막고 마을을 지켜내려는 주민들의 노고와 단합의 모양이 연일 계속되고 있는데 엊그제는 우리 마을과 인근 마을들에서 이 같은 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기꺼이 뛰어나온(!) 수백 명이 마을회관 앞에 모여 반대시위를 벌였습니다. 저 역시 “꼭 나오셔야 합니다.” 하는 반장님의 통지 전화를 받고 정한 시간에 두툼한 옷으로 무장을 하고는 나갔습니다.
200여명 정도가 모여서 북치고 꽹가리 치며 시위를 주도하는 이들의 선창에 따라서 불끈 쥔 주먹을 들었다 내렸다 하며 반대 구호들을 외치기도 하는데 제 곁에 있던 어떤 연세 높으신 할머니 한 분의 카랑카랑한 목소리 외침이 인상적입니다.
“염병할 발전소 반대한다, 반대한다!!”
아마도 ‘열병합’을 ‘염병할’로 발음하신 것 같은데 그렇다고 짚어 물어보기도 그렇고... 어쨌거나 그 뜻과 의미는 반대시위에 합(合)하고 상통(相通)하는 것이니 괜찮을 것이겠습니다만 그보다는 먼저 그분의 건강이 염려되어 그 만큼 하셨으면 이제 집에 가셔서 쉬시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시위 내내 줄곧 하였습니다. 이렇게 추운 날씨에 저렇게 나이 많으신 어르신들께서도 기꺼이 나오셔서 새하얀 입김에 구호를 담아 뿜어내시는구나...
주최 측에서는 반대 구호가 적힌 머리띠와 어깨띠를 나누어 주어서 모두가 다 착용하고 있어서 저도 하나를 받아 이마에 둘렀습니다. “결사투쟁-!!” 머리띠... 허허 어쩐지 목사의 이미지와는 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지만 저 역시 우리 마을 주민의 한 사람이고 또 그 시설이 들어서는 것을 반대하는 한 사람인지라- 기꺼이 동참하였습니다. 그렇게 한 시간 여를 시위 현장에 서서 연사로 초청되어 온 인근 지역 인사들의 힘찬 반대 웅변도 들었습니다.
“어유, 추워-추워-”
‘결사투쟁 머리띠’를 두른 채로 집에 들어온 나를 보고 아내는 파안대소(破顔大笑)를 하며 스마트 폰으로 인증 샷을 남기겠다고 합니다. 그렇게 머리띠를 풀어 옷걸이에 걸어 놓고 따듯한 보리차를 한 잔 마시고 있자니 여러 생각들이 겹치면서 떠오릅니다. 머리띠라.. 이 얼마 만이냐... 아마도 저 어릴 적 초등학교 운동회 때에 청군 백군을 가리는 머리띠를 착용하였던 이후 처음 해본 것 같습니다. 그때 청색 머리띠를 두르고 기마전의 용사가 되어 공공의 적으로 규정되어진 백군의 진용으로 와- 하고 용감하게 뛰어 들어 갔었는데... 그 친구들은 다 어디서 무엇을 하면서 살고 있나...
그리고는 TV에 비추어지는 여러 가지 크고 작은 시위 현장 들 속에서 붉은 색 머리띠를 두르고 구호를 외치는 이들의 상기되고 결의에 찬 얼굴들이 떠오릅니다. 그렇구나... 누군들 좋아서 하고 싶어서 길거리에 나오겠는가... 다 사연이 있고 사정이 있고 형편이 있으며... 처자식이 있으니까... 언젠가 한 전시회에 나왔던 사진이라고 소개하는 흑백 사진을 보니까- 이제 막 엄마의 자궁에서 꺼내져 나와서 온통 양수로 젖어있고 또 미처 탯줄도 자르지 아니한 상태로 의사의 손에 들려진 한 아기가 눈을 ‘질끈-’ 감고 주먹은 ‘불끈-’ 쥔 모습으로- 마치 무슨 큰 대의 적 결의를 다짐하고 각오하는 듯한 모습이 있었습니다. 제목은 ‘투쟁의 시작’이라고 하던가...
그래... 이 험한 세상에 나왔으니 각오하고 결심하는 것이냐... 맞아, 이 세상은 어떤 때는 눈을 ‘질끈-’감고, 또 어떤 때는 주먹을 ‘불끈-’쥐어야만 하는 때를 종종 내 앞에 놓아주지... ‘사생결단 머리띠’를 두르고 나오지는 않아서 다행이기는 하지만- 세상을 살다보면 어쩔 수 없이, 선택의 여지없이 두르게 되는 일도 생기지... 그래서 눈을 질끈 감아야 하는 일을 피하기 위해서는 항상 크게 눈을 뜨고 주변을 더 잘 살펴야 하고- 주먹을 불끈 쥐어야 하는 일과 맞닥뜨리지 않기 위해서는 늘 정직함과 진실함으로 자신을 잘 다스려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한두 번쯤은 머리띠를 힘껏 두르고 나가야 할 때가 분명히 생길 터이니- 쯧-! 어쩌겠느냐, 그날이 겨울날이 되지 않도록 기도 하거라...
산골어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