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일을 사필귀정이라면서 새해엔 다시 시작해보자는 국민적 결의가 고조되어 있다. 어느새 국민의 관심은 조기대선과 차기 대통령 선거에 옮겨 가고 있다. 대통령, 참으로 중요하다. 잘 뽑아야 한다. 그런데 문득 귓가를 때린다. “뭣이 중한디? 도대체가 뭣이 중허냐고?” 느낌이 확 오는 이 문장이 영화 <곡성>에서 나온 대사인 줄 나중에야 알았다. 시스템이 바뀌고 문화가 바뀌어야 대통령 한 사람 바뀌어 크게 달라지기 어렵다. 시스템이 바뀌고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 우리가 대통령의 실패에 실망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이것을 대통령 개인 탓으로만 돌릴 수 없다. 소속 정당의 실패요, 팀(청와대와 국무회의)의 실패요, 우리의 실패다.
우리 정당은 선거철 아닌 평소에는 존재감이 약하다. 국회의원 동업자 조합 같은 느낌이다. 시대의 비전보다 상투적인 진영 논리와 퇴행적인 이념 잣대로 행동한다. 국민의 정치적 의사를 형성·매개·조직화하는 정당의 헌법적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정책을 만들고 정치인을 양성하는 기능이 미흡하다. 좋은 대통령을 기대하기 전에 좋은 정당을 만들 필요가 있다.
지난 선거에서 747이나 경제민주화 공약은 참으로 허망했다. 거짓말에 대한 우리의 태도가 더 엄격해져야 한다. 또한 앞으로 대통령 후보는 영국의 새도우 캐비넷처럼 집권 후 함께할 팀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경제·교육·국방·외교 등 요직을 맡을 인물을 유권자가 미리 보고 정책의 방향이나 능력 수준을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
대통령의 실패의 근원을 헌법에서 찾는 사람도 있다. 하필 헌법 탓인가. 헌법 조문상 문제점이 없지 않겠지만, 그것이 그토록 결정적이었을까. 견제와 균형의 헌법원리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하는 법률적 차원에서의 입법과 정치문화적 수준이 미흡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우리 헌법은 독재자에게 줄곧 유린되어 왔다. 유신헌법은 그 절정이었다. 80년의 대통령 단임제는 지긋지긋한 장기독재에 대한 국민적 저항의 결과였고, 87년의 대통령 직선제는 국민의 의사와 무관한 대통령을 거부하고 직접 대통령을 선택하겠다는 국민적 욕구의 결과였다. 독재자의 액세서리에 불과했던 헌법이 우리 정치공동체의 최고 법규범으로 다가온 것은 지난한 민주화 투쟁을 겪어서였다.
대통령제와 내각제는 상대적 장단점이 있다. 전통시대를 공부하는 필자는 내각제에 대한 편견이 있다. 왠지 정치가 엘리트의 전유물이 되어 국민의 정치적 요구에 대한 반응도가 떨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다. 정답이 정해져 있을 수 없다. 국민의 정치적 경험과 학습을 토대로 한 제도가 현실에서 규범력을 얻는다.
우리 헌법이 많은 영향을 받은 독일의 바이마르 헌법은 당시 가장 선진적인 헌법이었다. 국가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국민주권을 제1조에 명문화하고 있는 것을 비롯하여, 평등·의회주의·법치주의·기본권(인권) 보장을 담고 있었다. 그러나 나치의 출현을 막지 못했고, 나치의 위헌적 법률로 규범력을 잃었다. 아무리 선진적인 헌법이라도 그 운명은 국민의 의식과 정치에 달려 있다. 헌법 탓보다 법률 차원의 노력부터 헌법 논의는 언제든지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그러나 개헌은 충분한 국민적 합의와 성숙한 시기가 필요하다. 국민과 동떨어진 정치인들만의 개헌론, 더 시급한 많은 과제를 방기하는 블랙홀이 되는 개헌론, 분열만 야기할 개헌론, 당장의 정파적 유리함만 도모하는 정략적 개헌론은 경계해야 한다.
“작은 것에서 큰일을 한다(爲大於其細)〈노자 도덕경〉”고 했다. 큰 것, 한 방만 바라보기보다, 작고 가까운 일을 실천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헌법의 부족함만 탓하기 전에, 한 단계 낮춰 법률 차원에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 법률에 위헌적 요소가 없는지 살피고, 헌법 정신이 제대로 구현되도록 법률을 제정·입법하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 대통령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민주 시민으로서 뭘 해야 할지 고민할 때다. 각성한 시민이 정당이나 정당정치를 보완할 단체에 관심을 갖고 참여해야 하지 않을까.
상황이 점점 어렵고, 낙관적이지 않다. 그래도 새해엔 세상이 좀더 나아지겠지 하는 희망을 버릴 수 없다. 조그만 실천이라도 해봐야겠다는 각오를 해본다. 새해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