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부모급에 속한 분들의 말씀은 말을 낸 당사자, 곧 부모님의 입장(뜻)에서 그 말을 생각해야만 참뜻을 알 수 있을 뿐, 자녀급에 속한 자들의 입장(뜻)에서 그 말을 풀이하게 되면 대부분 그 말뜻을 곡해하거나 아니면 풀이하는 자의 인성과 지식과 능력에 따라 잘못 추정되고 이해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부모님 중에서도 으뜸 부모님이신 하나님이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창세기 2:17)" 하신 말씀에 대해 자녀급에 속한 자들 중에서 가장 간교한 사단은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창세기 3:5)"고 해석해(속여)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창조 세계의 최초의 반역자이자 거짓말장이인 사단이 자신과 만물을 만드신 하나님의 말씀(가르침)을 하나님의 입장(立場)에서 정직히 지키고 가르쳐 전하지 않고, 피조물인(자식된) 자신의 간교한 뜻으로 하나님(부모님)의 말씀을 해석해 반역(불순종)하고 가르쳐 전하였습니다. 이때부터 사단의 제자가 된 세상 사람들 또한 부모급(하나님, 부모님, 선생님, 국법, 상전)에 속한 모든 분들의 말씀(가르침)을 그들 부모급에 속한 분들의 입장에서 정직히 지키고 가르쳐 전하지 않고, 자신들의 사사로운 이기심으로 해석해 반역(불순종)하고 거짓되게 남들에게 가르칩니다.
부모급에 속한 분들의 선하고 의로운 말씀을 자의로 해석해 반역하고 악선전하는 것들 가운데서 가장 근본적인 폐해를 끼치고 있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자기 피로 값주고 산 사람들에게 파송하신 성령을 그리스도인들이 자의로 해석해 반역하고 가로막습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속내와 같은 심령으로서, 하나님의 자녀된 사람들이 자신들의 육적인 지혜와 능력으로는 도저히 간교한 사단의 간계로부터 벗어나 하나님께 충효할 수 없음을 아시고, 하나님이 친히 각 사람의 심령에 들어가 개인 교수 역할을 하시며 사단의 간교(흉악)한 술수와 압제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이끄시는 분이십니다.
이런 개인 교수를 죄인된 사람들에게 파송하려면,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불신(불순종)한 사람들에 대한 죗값부터 해소되어야만 비로소 하나님의 응어리진 마음이 없어집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사람들을 잃어버린 자식처럼 또는 순간적인 정욕에 눈이 멀어 간부(姦夫)를 따라간 철없는 아내로 취급해 구원하고자 하는 마음이 발생될 수 있습니다. 아버지와 함께 사는 것을 정면으로 무시하고 세상으로 떠난 탕자 같은 인생들, 또 남편 되신 하나님을 버리고 간부(姦夫) 같은 사단을 따라간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한 맺히고 응어리진 마음을 어느 누가 해소해 주어야만, 비로소 그러한 죄인들을 잃어버린 친 자식이나 미혹에 빠진 철없는 아내처럼 불쌍히 여겨 구출할 마음이 생길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이 같은 속 사정을 아시고 자기 몸으로 세상 죄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울분을 풀어 드렸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뇨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났느뇨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이사야 53:1~3) 하심 같이, 의식주 문제나 권력의 향방이나 음란방탕한 쾌락에 대해서만 관심 갖는 사람들에게는 예수님에 관한 말과 글들이 마치 외계인의 생소한 언행처럼 취급되어 멀리하였습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에게 예수님에 관한 말들을 하면, 재수 없는 말이나 흔한 유언비어로 취급해 멀리하거나 덮어버리거나 악한 댓글로 반박합니다. 그들이 그렇게 하는 것은, 그들의 삶의 목적이 사람다운 사람이 되는 게 아니라 하나님 보시기에 분뇨통 속의 배설물 수준의 육적인 부강이나 찾아 구하여 그것의 권세로 짐승들도 부끄러워 꺼리는 추악한 음란을 즐기려 하기 때문입니다. 구더기 같은 자들은 분뇨통 속의 추악한 오폐물을 진수성찬으로 취급해 찾아 구하고, 고명한 사람들은 땅에서 생존할 때에만 추악한 죄성이 아름다운 선으로 교정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그 일에 매진합니다.
분뇨통 속의 오폐물보다 더 추악한 죄의 때로 더럽혀진 사람들의 심신을 씻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예수님의 의로운 피(말씀)만이 가능합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이사야 53:4~5) 하심 같이, 죄악의 때로 더럽혀진 사람들의 심신은 오직 예수님의 말씀이신 피로 씻겨져야만 비로소 하나님이 그들을 잃어버린 자식처럼, 또는 집을 나간 철부지 아내처럼 불쌍히 여길 수 있습니다.
죄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가 해소되어야만, 그때부터 하나님이 죄에 빠져 허우적 대는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그러한 삶 자체가 바로 분뇨통 속의 구더기 짓임을 깨닫도록 해 주시는 선생, 곧 성령을 파송해 그들의 말과 행동 모두를 간섭해 하나님 보시기에 점도 없고 흠도 없는 온전한 사람이 되게 하십니다. 이런 사람이 되면 조폭 같고 간부(姦夫) 같은 세상 죄인들을 호되게 꾸짖어 질책해 물리칠 수 있는 의의 용사가 되며, 또 그가 싸워 이긴 전과(戰果)는 승리의 면류관이 됩니다. 성령이 믿는 사람들의 심령에 임하셨다는 것은, 마치 흉악한 범죄자들이 들끓는 형무소에 대통령의 사면권을 지닌 특사(特使)가 찾아와 출감할 수 있는 절차를 밟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신앙인들이 죄사함의 권세를 지닌 특사(特使), 곧 성령이 자기 심령에 임하여 길과 진리와 생명이 되시는 예수님의 말씀, 곧 죄악이라는 감옥에서 출감할 수 있는 절차를 밟고 있는 예수님(성령)의 지도는 무시해 버리고 오직 육신의 육감(肉感)으로 접할 수 있는 목사의 지시만 따르려 합니다. 즉 자신을 죄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유일한 선생이신 성령의 가르침은 버리고 그 대신 죄악과 타협해 공생하고자 하는 신학자(목사)들의 말로만 구원받으려 합니다. 이들에 대해 사도 바울은, "이러므로 하나님이 유혹을 저의 가운데 역사하게 하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로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니라"(데살노니가후서 2:11~12) 하셨습니다.
성령의 지도, 곧 죄에서 벗어나 거룩한 삶을 살게 하는 금보다 더 고귀한 삶, 곧 세상(죄악)을 이기는 믿음(가르침)을 원천적으로 무시해 거부하는 거짓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아예 가룟 유다처럼 사단의 유혹에 넘겨 주어 그들의 죄악된 삶, 곧 불법불의를 좋아하는 삶을 살게 하여 심판받게 하십니다. 마치 의를 숭상하는 남편에게 시집 온 여자가 남편처럼 의를 숭상해 본받을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고, 오직 세상의 돈환들과 같이 돈과 재물과 명예를 지닌 외간 남자들만 부러워하며 남편을 무시하게 되면, 그 남편은 그런 아내와 더 이상 함께 살아볼 의욕을 잃고 자기 아내를 갖고자 하는 돈환 같은 자들의 유혹에 넘겨 주어 더 이상 자신을 괴롭히지 못하도록 하는 것과 같습니다.
신랑(하나님)과 동거하면서 신랑의 거룩한 성품은 무시해 버리고 다만 그의 소유물만 존중해 달라고 앙탈부리는 아내들은 사실상 신랑 자체보다 신랑의 소유물(지위, 권세, 능력, 재물 등등)만 사랑해 가지려고 하는 도적 같고 간부(姦夫) 같은 사단을 흠모해 그와 결혼하려는 음녀들입니다. 거룩한 신랑이라면 반드시 이런 거짓된 신부와 동거하게 된 것을 괴로워하고 그의 갈길을 가게 합니다. 그래서 심판날에는 이런 거짓된 신부들, 곧 그리스도 자체이신 의의 성품(말씀)은 무시해 버리고(거역하고) 그가 가진 재물(복)과 능력(이적기사)과 지위(선생 노릇)만 탐하여 가지려고 발버둥치는 사단 같은 자들에 대해 예수님이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마태복음 7:23)는 추방령을 내립니다.
성령의 주된 역사는 죄로부터 벗어나 의를 행하는 일입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요한복음 14:26) 하심 같이, 성령이 생각나게 하는 것은 사단(죄)의 종 노릇에서 떠나 하나님의 자녀된 사람으로서의 마음가짐이 어떠하여야 한다는 내용들입니다. 또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요한복음 15:26) 하심 같이, 성령은 오직 예수님의 언행만을 따르도록 증거할 뿐, 세속에 물든 신학자나 그들의 교훈을 쫓는 부패한 자들의 말은 일체 증거하지 않습니다.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요한복음 16:7) 하심 같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다는 말씀을 듣고 제자들이 예수님과 떨어지게 된 일에 대해 두려워하게 되자, 예수님이 자신은 비록 세상을 떠날지라도 자신이 지금껏 못다한 말과 능력을 펼칠 수 있는 능력자, 곧 성령이 사람들에게 오는 것이 자신이 생존해 사람들을 이끌고 지도하는 일보다 더 크고 효울적인 일이라고 하였습니다. 즉 예수님은 온 세상의 만민들을 일일이 찾아가 가르칠 수 없지만, 성령은 세상 모든 믿는 자들에게 임하여 개인 지도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제자들과 육신으로만 접할 수 있지만, 성령은 육신을 장악하고 있는 제자들의 심령에 거할 수 있기 때문에 더욱 더 제자들을 양심적으로 하나님을 섬길 수 있도록 하게 합니다. 즉 가룟 유다와 같은 거짓된 믿음으로는 하나님을 섬길 수 없도록 하십니다. 오늘날의 사람들이 대부분 남들을 거짓말로 대하는 까닭은, 자신의 심령 속에 숨은 죄악의 실체를 보호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시대의 자녀들이 그런 척 잘하는 연기력이 뛰어난 연예인들을 우상 취급해 따릅니다. 사람의 심성을 정직하게 거룩하게 존귀하게 가르칠 수 있는 유일한 선생은, 사람들의 심령 속에 들어가 그들의 생각과 마음을 지도하고 이끄는 성령 뿐이십니다.
그런데 이런 성령의 지위와 권세와 능력을 오늘날의 신학자와 목사들이 가로 막고, 교인들에게 자신들의 지도와 교습을 받지 않고서는 정통 신앙인이 될 수 없다고 김일성 일가들처럼 세뇌 교육을 시키고 있습니다. 제 글을 통해 예수님을 만난 분들은 저조차도 성령으로 책망할 수 있기를 바랄 뿐, 결코 제게만 잘 보여 저의 칭찬과 상급만 받으려고 아첨하는 것은 싫습니다. 세상의 목사(권력자)들은 저의 이런 마음과 정반대입니다. 저들 대부분이 김일성 일가들의 습성을 빼닮아 자신들의 설교나 교회 방침이나 선교 정책을 따르면 칭찬하지만, 예수님의 말씀으로 자신들을 책망하면 당장에 스승을 거역하는 기초적인 자질에서 벗어났다 하여 이단시해 내쫓습니다.
성령의 지도를 받는 그리스도인들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여 거룩한 성도로 일컬음 받을 수 있지만, 성령과 같은 신분과 권세자로 자처하는 신학자와 그들의 제자로 전락한 목사들의 가르침만 받는 교인들은 대부분 하나님을 욕되게 하여 그로부터 미움을 받고 또 그들을 가르친 신학자와 목사들로부터도 결국에는 미운털이 박혀 멸시천대를 받습니다. 김일성 일가들이 자신들의 적화사상에 사로잡혀 총포탄으로 사용되는 자들에게는 거짓된 연기로 칭찬하고 존중하지만, 중심으로는 사단처럼 심히 멸시천대하여 그들을 자신들의 추악한 오물(지령)들만 받아 먹는 구더기들로 취급합니다.
이 세상 어떤 사람이든지 간에 만물을 낳고 만들어 양육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곧 성령으로 자처하면서 자신들의 교훈(지령)만 남에게 가르치는 자들은 모두다 마귀처럼 자신의 말 잘듣는 일로 칭찬하면서도 중심으로는 자신의 추악한 오물(배설물)들만 받아 먹는 구더기들로 취급해 짓밟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들이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자신이 낳고 기르는 자식이라 할지라도 부모된 자신에게만 오로지 칭찬받고 사랑받는 아첨배가 되게 하고 그들의 심령(양심)에 거하는 성령의 가르침을 무시해 거역하도록 방치하면, 반드시 그런 자식들은 북한의 김일성 일가들의 지령만 잘받아 수행하는 첩자들처럼 끝내는 자신들로부터도 개 취급 당하게 됩니다.
에덴동산에서 사람들을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게 하고 그 대신 자신의 말만 믿게 한 사단을 보십시오. 유혹할 때에는 온갖 감언이설로 사람들의 마음을 들뜨게 하였지만, 막상 자신의 거짓말에 사람들이 속게 되면 사람들은 자기 힘으로 건널 수 없는 죄의 바다가 펼쳐져 하나님께로 돌아갈 수 없게 됩니다. 그리고 사단이 고립무원한 그들을 여지 없이 짓밟아 뭉겝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뜻과 상반되는 말을 하나님의 말씀인 체 가르치는 자들은 반드시 처음에는 사단처럼 온갖 감언이설로 사람들의 귀를 즐겁게 하지만, 일단 자신의 제자로 등록되기만 하면 그 때부터 그는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를 잃고 그 사람의 종이 되어 섬 노예처럼 여지 없이 짓밟히게 됩니다.
그러므로 내가 가르치는 말(글, 신학, 훈시)로만 교인(사람)된 자들이나 자식된 자들이나 제자들이나 부하직원들이나 국민들은 모두 나에게 짓밟히는 섬 노예(개)들이 되지만, 하나님(예수님, 성령)과 일대일로 직접 사귀어 거룩하게 되도록 돕는 자들은 나조차도 두려워해 존경할 수 있는 거룩한 성도와 위인들이 됩니다. 성령의 지시로 나의 허물과 죄악마저 질책할 수 있어야만 비로소 그가 나의 진정한 친구가 되고 또 그를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한 전도(구원)일 뿐, 그렇지 못할 때에는 그는 나의 배설물만 받아 먹고 자란 볼품 없는 자이기 때문에 나에게도 미움받고 멸시천대받는 섬 노예가 됩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입장에서 생각케 하고 실행케 하고 또 가르칩니다. 반대로 마귀는,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의 입장에서 해석해 거역하고 또 남들에게 가르칩니다. 그러므로 모든 신앙인들은 지금껏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었는지, 사람들의 가르침만 받고 사는 마귀의 졸개들이었는지 시급히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면 그리스도인들에겐 이보다 더 절실한 자성(自省)이 세상 천지에 없지만, 사람들의 시각(입장)에서 보면 그러한 자성(自省)은 사람들과 세상과 싸우게 되는 험악한 십자가의 길이라고 합니다. 제발 이제부터라도 하나님의 입장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는 거룩한 성도들로 거듭 태어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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