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공생애 첫마디가 바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마태복음 4:17)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이 말씀은 천국의 실체이신 예수님(하나님)이 사람들 앞에 등장하였다는 뜻입니다. 이런 천국의 실체를 바로 눈 앞에 두고 무지한 바리새인들이 천국이 어디 있느냐고 질문하였으니 예수님이 어찌 그들이 허황되게 꿈꾸고 그려보는 천국이 이 우주공간 어디에 있다고 말씀해 줄 수 있겠습니까? 사람들이 하나님(예수님)과 함께 하는 것보다 더 풍요롭고 아름답고 안전할 수 있는 특별한 곳(천국)이 따로 있다고 하면, 사람들이 그 곳을 하나님(예수님)보다 더 존귀히 여겨 그 곳만 찾게 됩니다.
사람이 하나님 자체(말씀)보다 하나님의 집(천국)이나 재산을 더 사랑하게 되면, 반드시 사단처럼 하나님(말씀)을 배신하고 하나님의 소유물만 사랑해 가질려 합니다.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 하도록 만든 사람들이 자신보다 자신의 집이나 재산 같은 것들을 더욱 사랑해 가지려고 하면 그것은 도적들이지 결코 자신의 영원한 반려자가 될 신부들이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보다 자신이 거하는 집이나 소유물만 탐해 가질려고 하는 도적(사단)을 닮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천국의 실체를 자기 자신에다 두고 자신(성경말씀)만 사랑해 갖도록 하였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거룩한 뜻에서 나온 자녀 교육이며 또한 인성 양육법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세상 부모님들이 이 같은 고명한 자녀(인성) 교육 방법을 성경말씀을 통해 배워 깨달았더라면, 결코 자기 자녀들을 오늘날과 같은 도적 떼, 곧 부모의 재산이나 등골만 뽑아 먹는 원수들로 만들지 않고, 오직 이 세상에서 취할 수 있는 유일한 낙원과 최고의 행복이 바로 부모님 자신이라는 걸 깨달아 부모 공경에 주력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의 부모님들은 자신들의 모든 재산과 생애를 자식들에게 투자하여 부모님 자신들이 아닌 이 세상의 부귀공명만 탐하여 갖도록 가르칩니다. 즉 부모님 자신보다 세상의 것들을 더욱 소중히 여겨 갖도록 하였기 때문에 결국 오늘날과 같은 불효막심한 도적들을 만들고 말았습니다.
부모님 자신들은 비록 초근목피를 먹으며 고생하며 살지라도 자녀들만큼은 그런 비참한 생활에서 벗어나 물질적인 풍요를 갖추고 아름다운 주거 환경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그러하였다고 변명합니다. 그러나 자녀들이 이 땅 위에서 누릴 수 있는 유일한 안식과 행복은 오직 부모님을 기쁘시게 해 드린 효행 뿐입니다. 그런데 미련한 자식들은 또 부모님의 그 같은 무모한 자식 사랑은 부모로서의 마땅한 본분으로 강요하고, 자신들은 여전히 사단처럼 부모님의 등골과 소유물만 강탈해 갖고 사단과 함께 죄악된 쾌락만 즐기려 합니다. 그리고 등골이 소진되어 죽어간 부모님의 노고에 대해서는 다만 죽은 기일이나 명절 때에 간단한 차례상으로 예우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날의 기독인들도 자신들의 죄악을 대신해 죽으신 예수님을 마치 하나님이 사람들을 에덴동산에서 쫓아낸 죗값을 사죄하는 정도로 취급합니다. 그리고 자신들은 또 에덴동산의 풍요로움 속에서 사단과 함께 못다 누린 죄악의 쾌락을 즐기며 가끔 교회에 나가 거짓된 입술로 찬송하고 감사기도로 예배드리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오늘날 인간들이 죽은 부모님께 제사드리는 습관과도 거의 같은 짓입니다. 세상의 부모님들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보다 죽은 재물을 더욱 사랑해 따른 죄 때문에, 그의 자식들 또한 살아계신 부모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려는 산 제사보다 다만 죽은 다음에 초화화판 차례상으로 보답하는 죽은 제사만 드리려 합니다.
하나님이 사람들을 만드신 까닭은 그들과 함께 영생하며 즐기려 함이었으나, 사람들은 하나님의 실체가 되시는 말씀을 세상 어느 누구의 말보다 즐겨 순종하는 것으로 하나님과 함께하려 하지 않고, 다만 하나님이 거하시는 낙원만 찾아 내어 거기서 사단과 함께 죄악된 쾌락만 즐기려 합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태복음 6:24) 하심 같이, 사람이 하나님(말씀) 자신과 하나님의 소유물(재물)을 동등하게 취급해 섬길 수 없습니다. 이것은 마치 한 여인이 두 남자를 동시에 섬기려는 짓과 같습니다.
남자의 갈비뼈에서 태어난 여인이 남자 자체보다 남자의 소유물을 더욱 사랑하게 되면 반드시 결혼하여 남편을 배신하게 됩니다. 이런 배신은 남편과 소유물을 다 잃습니다. 아내가 남편 한분의 뜻만 오로지 존중해 따르면 남편에게 속한 모든 소유물은 부수적으로 갖게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된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예수님처럼 청종하게 되면, 하나님이 골고다에 가 계시면 그곳을 천국으로 취급해 따라 갑니다. 참된 아내는 남편 없는 낙원에서 홀로 사는 것보다 남편이 계신 골고다에 가 함께 고난당하는 것을 평안으로 취급합니다. 사람이 죽은 재물과 함께 낙원에서 홀로 사는 것은 수치스러운 치욕이지만, 생명의 하나님과 함께 골고다에서 고생하는 것은 최고 최대의 희락입니다.
그런데도 아내된 뭇 인간들은 남편되시는 예수님(성경에 기록된 예수님의 말씀)을 눈으로 목격하고서도 바리새인들처럼,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누가복음 17:20) 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등기된 집(낙원)과 재물만 찾아 구합니다. 마치 오늘날의 여성들이 자신의 유일한 천국이 되는 남자를 눈 앞에 두고서도 그 남자가 갖고 있는 집과 재물과 권세와 직위가 어떠하냐고 묻는 짓과 같습니다. 그래서 남자의 자존감이 전무한 허수아비(사단) 같은 사내들은 그런 것들만 악착 같이 긁어 모아 보이며 여인들의 마음을 도둑질합니다. 사람 자체보다도 사람의 소유물을 더욱 존중하는 것이 도둑이듯, 이 세상 대부분의 남녀들이 도둑년 도둑놈이 되어 상대방의 소유물(몸)만 챙기려 합니다.
오늘날 교회 목사들의 행태를 보십시오. 자신들은 예수님이 거치셨던 광야 길과 골고다 언덕은 버리고, 예수님이 바라보고 우셨던 거대한 성전에 앉아 제사장(하나님, 교황) 노릇만 하려 합니다. 예수님은 제사장들의 죄악과 세상 만민의 죄악을 단죄하는 바른말만 하셨기 때문에 그들 틈에 머리 둘 곳도 없었지만, 그의 심령은 항상 하나님의 뜻(말씀) 안에 계셨기 때문에 천국의 평안을 누렸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거하셨던 곳은 항상 풍요와 사랑이 넘쳤습니다. 이런 진솔한 천국을 소유하지 못한 오늘날의 목사들과 그들을 추종하는 신도들이 천국의 실체가 되시는 예수님의 뜻(말씀)에 거하지도 않은 채, 만나고 대하는 사람들마다 뜻도 내용(장소)도 모르는 천국만 소망하게 합니다.
오늘날 이 나라 정치인들의 행태들을 보십시오. 이 나라 이 민족의 유일한 평안(천국)이 되는 곳은 국법 자체를 존중해 지키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저들은 자신을 통치자나 유능한 공직자로 선출해 주기만 하면 김일성 일가들처럼 천국 같은 사회를 펼쳐 보이겠다고 열변을 토합니다. 국태민안의 근본이 되는 국법과 양심을 존중하지도 않은 채, 국민들에게 국법이 규정한 사회가 아닌 별다른 신천지(무상복지 사회)를 만들어 주겠다고 사기를 칩니다. 사람들의 유일한 천국은 오직 그 나라와 의가 되는 국법을 잘 준수하는 일입니다. 이것을 무시한 그 어떤 경제부흥이나 핵무장으로도 국태민안의 천국은 건설되지 않습니다.
천국의 주인은 예수님이며 예수님의 실제 형상은 그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확실한 천국은 예수님과 동행하는 일이며, 예수님과 동행하려면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지키고 실행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일상 생활 속에서의 천국(행복) 또한 바른말을 지키는 상태입니다. 기업체들이 판매원들에게 신속, 정확, 친절을 근본 모토로 삼아 고객들에게 서비스하도록 가르치지만, 판매원들은 신속과 친절에만 치중하고 정직은 뒷전에 둡니다. 그러나 정직(바른말)보다 더 신속하고 친절한 것은 없습니다. 정직(바른말)을 배제한 신속은 아무리 빨라도 시행착오를 일으키게 되며, 또 정직이 배제된 친절은 아무리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하고 달콤함직 하여도 상품의 가치와 질을 떨어뜨립니다.
남들보다 빠르고 친절한 것만 경쟁 사회의 승리로만 취급하고 남들보다 정확(정직)한 것을 무시하는 자들은 모두다 거짓의 아비 사단의 종들입니다. 빠른 것에 치중하면 시행착오를 일으키게 되고, 친절한 것에 집중하게 되면 거짓된 아첨으로 사람들을 속이게 됩니다. 그래서 지금의 대한민국 사회는 목적하고 있는 곳(것)과는 전혀 다른 지옥 같은 상황에 빠져들었습니다. 신속히 나아가려는 과도한 앞지름과 또 무상복지라는 친절로 분수에 넘치는 파티만 경쟁적으로 펼쳐 보이려 합니다. 천국(정직)을 소유치 못한 종북 세력들과 이에 맞선 보수 세력들이 항상 남(국가)의 돈(예산)으로 분에 넘치는 호화로운 파티(무상복지)만 펼쳐 온 나라를 빚 투성이로 만들어 마비시키고 있습니다.
앞선 통치자(김영상, 김대중, 노무현)들이 무책임하게 진탕 펼쳐 놓고 먹고 마시고 어지럽혀 놓은 파티 석상을 깨끗이(정직히) 청소(정리)하지도 않은 채, 또다시 새로운 파티만 개최해 자신들의 치적과 이미지만 부각시키려고 하는 그 어떠한 정권이든 간에 그들 모두는 이 나라 이 국민을 책임질 수 없는 한탕주의자들입니다. 이런 한탕주의자들이 줄 지어 다음 대선을 노리며 여태껏 신속과 친절로만 치달아 심히 부패된 이 사회의 기능들을 더욱 더 어지럽히려 합니다. 지금은 정확(정직)이라는 바른말로 국민들의 거짓되고 추악하고 음란한 심성을 깨끗이 설거지(청소)할 때입니다. 사람이 진리와 국법으로 그 심령이 깨끗이 청소되어야만 비로소 참된 평안과 풍요가 찾아와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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