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는 초기의 소노부에서 태조왕 때 계루부로 바뀐 후 계속 대를 이어 통치하였습니다.
백제의 경우에는 부여에서 내려온 비류 세력과 온조 세력이 서로 다투다가 주도권이 온조 세력으로 넘어갔지요.
그런데 신라에서는 박 씨 왕, 석탈해, 다시 박 씨 왕 그리고 석 씨 왕, 김미추, 또 다시 석 씨 왕으로 이어지다가 내물왕 때 와서야 김 씨 왕의 세습이 이루어졌지요.
이상하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원래 이들 박, 석, 김이 서로 친척이었다면 이해가 쉽게 되지요.
그래서 꾸며 보았습니다.
한문제가 한 때 압록강 중 상류에 웅거하였던 예맥족 통치자 남려가 한문제와 통하여 창해군을 설치하였지만 교통이 불편하여 2여년 후에 폐지하였다는 것이 우리가 배운 정통 역사입니다.
그런데 창해군에 위협을 느낀 흉노(훈)와 부여 그리고 위만조선이 연합하여 창해군을 공격하였다는 가설을 세우 보았지요.
흉노에서 온 친척인 박, 석, 김 씨족과 부여에서 온 소노부 및 위만조선에서 파견한 군대들이 창해군을 세차게 공격하여 결국 압력에 굴복한 한 무제가 철수하면서 핑계를 만든 것이 아닐까요? 서로 전투를 벌인 후 패배한 흉노 세력이 멀리 남쪽으로 이주하여 마한 땅
아무튼 창해군이 사라진 후 흉노 세력과 부여 세력 사이에 갈등이 생겨나 이었던 임진강, 서울에 도착하였지요.
그런데 승리한 부여 세력도 갈라져 일부는 역시 남으로 이주하였습니다.
초기 백제와 초기 신라의 전투가 바로 서울 근처에서 벌어지고 패배한 흉노 세력은 백두대간을 넘어 산동 반도에서 이주한 6촌 세력을 제압하고 신라를 상당히 선주 농경민이었던 왜의 세력이 강하였던 (일부는 인도에서 건너온 벼농사 기술자였을 것입니다) 가야를 정복하였다면 신라와 가야의 친분 관계 및 신라와 백제의 경쟁 관계가 이해되며 박 석 김의 교대 통치도 이해가 되지요.
마지막으로 영서 지방의 말갈 역시 이들과 같이 남하하였지만 농사 대신 계속 전통이었던 수렵을 이어갔고 해마다 가을이 오면 본거지였던 중국 북부에서 그랬듯이 농경지대인 백제와 신라를 습격하였다면 역시 이해가 됩니다.
한반도 판 ‘천고마비’라고 보아도 되겠지요.
그러나 아마추어의 가설에 불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