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왜 '5.18' 인가 ?
- '오로지 金大中만을 위한 석방 운동'이라는 다른 표현 일 뿐이다.
1979년 10월 26일 朴正熙 대통령이 암살당한이후 전국적으로 크고 작은 시위가 끊이지 않고 있었다. 5.18일부터 시위가 새롭게 시작된 것도 아니고 이미 수개월전부터 전개되어온 시위사태가 持續적 斷續적으로 진행되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수식어 혹은 관형사 처럼 따라다니는 '五一八'.
'5.17'도 아니고 '5.16'.도 아니고 '4.19'도 아니고 '12.12'도 아니고 '10.26'도 아니고 '5.18'이라는 수식어 혹은 관형사의 존재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
5월 17일(토요일)과 5월 18일(일요일) 사이에 결정적인 차이점은 무엇인가 ?
1) 5월 17일 24시 ( 18일 0시 ) 부터 地域 계엄령에서 全國 계엄령으로 확대되었다.
2) 5월 17일에 金大中이 연행되었다.
( 참고 : 경향신문 호외, 1980년 5월 18일 일요일 -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0051800320101004&officeId=00032 )


그 당시 토요일은 민간 기업이나 공무원 학생 금융기관 등 모두가 오후1시까지 정상근무를 하던 시절이다. 일하는 토요일 주말을 끼고 위의 두가지 사항이 시행되면서, 朴正熙 대통령 서거이후 진행되어온 政局은 5월 18일부로 일대 전환점을 맞게 되었다.
光州라는 지역에서는 지역계엄령이든 전국계엄령이든 큰 의미가 없다. 光州는 이미 계엄령이 적용되어 오던 지역이었으므로 濟州道가 계엄령에 들어가든 말든 큰 의미가 없다. 지역계엄령이면 계엄사령관은 국방장관의 지휘를 받는다. 전국계엄령이면 계엄사령관은 국방장관의 지휘를 받지 않고 직접 대통령의 지휘를 받는다. 그러나 이점은 형식적인 차이점 일 뿐이다. 朴正熙 대통령 서거이후 혼란 상황에서 지역계엄과 전국계엄의 차이점을 구분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5.18이 핵심적인 분수령이 된 이유는 그 하루전에 金大中이 연행되었기 때문이다. 그 당시 정부는 金大中을 비롯한 26명의 저명 인사들을 연행하여 조사를 시작하였는데, 金大中을 비롯한 일부에게는 사회혼란 조성 및 시위 배후조종 혐의를, 金鍾必을 비롯한 일부에게는 권력형 부정축재라는 혐의를 적용하였었다. 金永三은 연행되지 않았으나, 사실상 가택 연금 상태에 들어가면서 일체의 對外 활동이 강제로 금지 당하였으므로 사실상 金大中의 연행과 비슷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朴正熙 대통령 서거이후부터 5월 18일 까지 대략 半年동안, 한때 '서울의 봄 3金시대'라는 용어가 등장하였었다. 3金(金大中, 金永三, 金鍾必)중 어느 한사람이 후임 대통령으로 선출 될 것이 거의 틀림없어 보이던 시절이었으므로 3金이라는 용어까지 등장하였었다. 그러한 3金이 한꺼번에 동시에 강제로 정치활동 불능 상황에 처하게 된 시점이 5월 18일이므로 5.18 이라는 용어가 수식어 처럼 붙어서 5.18 광주가 되었다.
그런데 관심가는 포인트는, 5.18 光州 운동/사태가 진행중인 기간에 또는 그 이후 30여년 동안 나타난 구호 중에, 光州지역에서, '金大中을 살려내라' 라는 구호는 핵심적인 구호로 자리잡았으나 '3金을 살려내라' 혹은 '金永三을 풀어주라' '金鍾必을 풀어주라'라는 구호는 등장한 적이 없었다. 金大中과 함께 연행된 수많은 인사 그 누구에 대하여도 석방하라라는 구호가 등장한 적이 없다. "文益煥을 살려내라"라는 구호가 등장한 적도 없고 "金東吉을 살려내라"라는 구호가 등장한 적도 없었다. 오로지 "金大中을 살려내라"라는 구호만 존재하였을 뿐이다.
金大中만 민주화 인사이고, 나머지는 아니었다는 말인가 ? 왜 하필 金大中이라는 이름만 유일하게 등장하였었는가 ? 金永三은 민주화인사가 아니었는가 ?
5.18 光州사태가 진정으로 민주화 운동이었다면, 모든 민주화 인사 들에 대한 구호가 나타나면서 구명 운동이 전개되었어야 하지 않았겠는가 ?
그 당시에 光州에서 , 金大中이라는 이름이 아닌 다른 사람의 이름을 거명한 구호가 있었는가 ? 만약 그러한 사진이나 기록이 존재한다면 한번 제시해 보라 !
결국 '5.18 光州운동' 이라는 의미는 '오로지 金大中만을 위한 석방 운동'이라는 다른 표현 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