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부(桃符)란, 복숭아나무 판자에 사악한 잡귀를 퇴치하는 신장의 모습을 그려 섣달 그믐날 자정 무렵에 대문에 부착하여 새해를 맞이하는 풍속으로 집안에 사악한 잡귀의 출입을 방어하는 일종의 부적으로 혹은 도판(桃板) 혹은 도경(桃梗)이라고도 한다.
도부에 관해서는 우리나라의 『동국세시기』와『조선왕조실록』중국의 『형초세시기』를 비롯하여 『풍속통의(風俗通義)』 등에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경전에 의거하여 복원한 도부(桃符) * 저작권 등록상품
도부의 기원은 이미 4,700여 년 전인 삼황오제 중의 황제 헌원 시대에 시작되어 동양에서는 시대와 국경을 초월한 세시풍속이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조선시대 말기에 이르기까지 성행하였던 풍속이다. 또한 도부의 주인공인 신도와 울루가 사는 곳은 삼족오(三足烏)와 같이 해 뜨는 구역인 동방이라고 하였으니 바로 우리나라에 해당한다.
이러한 유서 깊고 세계적인 풍속이 일제 강점기에 폐지되면서 현재 한국에서는 도부의 종주국이면서도 그러한 근본도 모르고 그 자취조차도 찾아보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도부에 관한 문헌은 국내외의 경전과 역사서를 비롯하여 명사들의 문집에 이르기까지 여러 문헌에 수록되어 있지만 여기서는 핵심적인 자료만을 나열한다.
문에 붙이는 첩자(帖子)에 ‘신도 울루(神荼鬱壘)’ 라고 네 글자를 쓴다. 옛 풍속에 설날에 도부(桃符)에 신도(神荼)와 울루(鬱壘) 두 신인(神人)의 형상을 그려 대문이나 출입문에 설치하여 흉악한 귀신을 막는다. 이 제도는 중국 황제(黃帝) 때부터 시작되었는데, 지금은 입춘의 첩자로 사용한다.
門帖 有神荼鬱壘四字 古俗 元日桃符 畵神荼鬱壘像 置之門戶 以禦凶鬼 其制自黃帝始 今用於春帖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입춘
[신라 풍속에] 설날을 중히 여겨서 서로 경축하고 잔치를 베풀며 차례를 지내는데, 해마다 이 날에는 일월신(日月神)께 예배한다.
重元日, 相慶賀燕饗 每以其日拜日月神
『구당서(舊唐書)』 동이전 신라 풍속
경전에서 말하는 해 뜨는 신성구역이 신라에 있기 때문에 신라에 이런 풍속이 있는 것이다.
해 뜨는 구역의 지명을 우이(嵎夷) 또는 양곡(暘谷)이라고도 하는데, 이곳은 태양 속 삼족오(三足烏)가 사는 곳으로 설날 풍속인 도부(桃符) 역시 이곳과 깊은 관련이 있다.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에 설날 풍속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도판(桃板)을 만들어 문 위에 붙이는데, 이것을 선목(仙木)이라고 한다. 두 신(神)을 그려 대문의 좌우에 붙이는데 왼쪽에 신도, 오른쪽은 울루이다. 세속에서 이를 문신(門神)이라고 한다.
『장자(莊子)』에, ‘닭을 그려 문 위에 걸어두고 갈대 새끼줄을 그 위에 매달아 복숭아나무 부적을 곁에 붙이면 모든 잡귀가 두려워한다.’ 하였다.
또 위(魏)나라 시대에 어떤 사람이 의랑(議郎) 동훈(董勛)에게 물었다.
지금 섣달 그믐날 아침에 문 앞에서 향을 사르며 도신(桃神)을 만들고 소나무와 잣나무의 가지를 갈대 끈으로 엮고 닭을 죽여 문 위에 매달아 역귀(疫鬼)를 쫓는 것이 예(禮)입니까?
동훈이 대답했다. ‘예(禮)를 보면, 12월에 갈대 새끼줄을 집에 걸어 역귀를 쫓고 닭을 죽여 피를 문에 바르고 가족이 모닥불을 피우면 예로부터 행기(行氣)를 돕는다고 한다.
복숭아나무는 나쁜 귀신들이 싫어하여 신인(神人)의 얼굴을 그려 만들어 불사(不死)의 상서로움을 거두어 묶어둘 수 있다고 여긴 것이다.’ 또 복숭아나무는 오행(五行)의 정기로 능히 백가지 괴변을 제압할 수 있으므로 선목(仙木)이라고 한다.
『괄지도(括地圖)』에‘도도산(桃都山)에 거대한 반도(蟠桃) 나무가 3천리에 서려 있는데, 나무에 금계(金鷄)가 있어 해가 비추면 곧바로 운다. 그 나무아래에 두 신(神)이 있어 하나는 이름이 울(鬱)이고 하나는 루(壘)인데 함께 갈대 새끼줄로 상서롭지 못한 귀신을 엿보아 살펴 잡아서 곧바로 죽인다.’고 하였다. 즉 신도(神荼)의 이름이 없다.
응소(應劭)의 『풍속통(風俗通)』에서, 『황제서(黃帝書)』에 이르기를, 상고시대에 신도와 울루의 형제 두 사람이 있었는데, 도삭산(度朔山)의 복숭아나무 아래에서 모든 귀신을 조사하여 망령되이 사람을 해치는 귀신은 잡아서 갈대 새끼줄로 묶어 호랑이 먹이로 던져 준다.’ 하였다.
이리하여 고을의 관리가 섣달 그믐날에 신도와 울루를 장식하고 갈대 새끼줄을 드리워 문에 호랑이를 그려 예전부터 내려오는 풍속을 본받도록 하였다.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
도경(桃梗)과 갈대 새끼줄 그리고 호랑이를 그리는 풍속을 상고하면, 『황제서(黃帝書)』에, 상고시대에 신도(神荼)와 울루(鬱壘)이라는 형제 두 사람이 있어 성품이 능히 귀신을 잡을 수가 있었다. 도삭산 위의 복숭아나무 아래에 서서 온갖 귀신을 검열하다가 도리가 없이 함부로 날뛰어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나쁜 귀신을 잡아서 신도와 울루가 갈대 새끼줄로 묶어 호랑이에게 먹인다.
『풍속통의(風俗通義)』 8권 사전(祀典)
설날에 복숭아나무 판자를 문에 붙이는데, 이를 선목상(仙木像)이라고 한다. 울루산(鬰壘山)의 복숭아나무는 모든 귀신이 두려워하는 곳이다.
『산해경(山海經)』에, 동해의 도삭산(度朔山)에 거대한 복숭아나무가 있는데, 3천 리에 걸쳐 서려 있다. 그중 낮은 가지가 동북쪽으로 향해 있는데, 이를 ‘귀문(鬼門)’이라고 하며, 이곳을 모든 귀신들이 출입한다.
이곳에 두 신(神)이 있는데, 하나는 신도(神荼)이고 하나는 울루(鬰儡)이다. 이들이 귀신들의 출입을 검열하여, 사람에게 해악을 끼친 자를 잡아서 갈대 새끼줄로 묶어 호랑이에게 먹인다.
이에 황제(黃帝) 시대의 법에 섣달 그믐날 자정 무렵 대문이나 지게문의 위에 복숭아나무 판자를 세우고 그 위에 신도와 울루가 갈대 새끼줄을 가지고 흉악한 귀신을 방어하는 그림을 그리며, 호랑이에게 사악한 귀신을 먹게 하는 그림을 문에 그렸다.
『풍속통의(風俗通義)』에, 황제 헌원의 상고시대에 신도와 울루의 두 형제가 있었는데 성질이 능히 귀신을 잡았다고 하였다.
『괄지도(括地圖)』에, ‘도도산(桃都山)에 거대한 복숭아나무가 있는데, 3천리에 서리어 있다.
이 나무 위에 금계(金鷄)가 있는데 해가 비추면 곧바로 울고, 나무 아래에 두 신(神)이 있는데 하나는 신도 하나는 울루이다. 함께 갈대 새끼줄을 가지고 검열하여 상서롭지 못한 귀신을 적발하면 곧바로 잡아 죽인다.’ 하였다.
『천중기(天中記)』4권
동해의 도삭산(度朔山)에 거대한 복숭아나무가 있는데 3천리에 서리어 있다.
그 낮은 가지가 동북쪽으로 향하고 있는데, 이곳을 귀문(鬼門)이라고 하며 모든 귀신이 출입한다.
여기에 두 신이 있어 하나는 신도(神荼) 하나는 울루(鬰壘)라고 하며 귀신 무리가 출입하면 검열하여 사악한 귀신을 잡아 호랑이 먹이로 준다.
이에 황제(黃帝) 시대의 법에 그 형상을 그린 도판(桃板)을 대문이나 출입문에 부착한다.
신도와 울루의 모습을 그려 흉악한 잡귀를 방어하는데, 이것이 곧 도판(桃板)의 제도이다.
대개 그 기원은 황제 시대부터인데 그러므로 신상(神像)을 도판(桃板)에 그려 그 아래에 왼쪽에 신도 오른쪽에 울루의 이름을 적어 설날에 대문이나 지게문에 설치한다.
『산해경(山海經)』에, ‘황제의 상고시대에 신도와 울루가 있었는데 형제 두 사람의 성품이 능히 귀신을 잡았다. 도삭산(度朔山)의 복숭아나무 아래에서 모든 귀신을 검열하여 무도한 자를 갈대 새끼줄로 묶어 호랑이에게 먹인다.’ 하였다.
『고금사문유취(古今事文類聚)』 6권 입춘
바다 가운데 도삭산(度朔山)이 있고 산 위에 복숭아나무가 3천리에 서리어 있다. 그 낮은 가지가 동북쪽으로 뻗어 있는데, 그 아래에 귀문(鬼門)이 있어 모든 귀신이 출입하는 곳이다. 신도(神荼)와 울루(鬱壘)라는 두 신이 그 문에 살며 모든 귀신을 통솔하며 검열을 주재한다. 그 중에 해악을 끼치는 귀신을 잡아 갈대 새끼줄로 묶어 호랑이 먹이로 준다. 그러므로 섣달 제석에 항상 악귀를 쫒아내기 위하여 신도와 울루 형상을 그리고 아울러 갈대 새끼줄을 대문에 매달아 재앙을 막는다.
『독단(獨斷)』卷上
조선시대
성종 13년(1482) 1월 1일
설날을 맞이하여 성종은 시를 지어 대왕대비에게 올렸는데, 그 중에 이런 구절이 있다.
복희씨의 해는 천 산봉우리의 눈을 못 녹였는데
순임금의 봄바람이 한 동산의 매화를 피게 했네.
천지 만물이 옛 그대로인데
아름다운 상서를 다 셀 수 없어라.
옥력(玉曆)을 처음 반포하니 세월이 새롭구나.
도부(桃符)를 옛 것과 바꾸는 태평한 아침이네.
[羲日未消千嶂雪 舜風先發一園梅 乾坤萬象眞如舊
屈指嘉祥未罄枚 玉曆初頒歲月新 桃符換舊太平辰]
연산군 12년(1506) 1월 25일
임금이 전교하기를,
"해마다 3월과 8월에 역질 귀신을 쫓을 때에는 복숭아나무 칼(桃劍)과 도판(桃板)도 또한 쓰게 하라."하였다. [傳曰 每歲季春 仲秋逐疫 桃劍 桃板 亦用之]
현종 13년(1672) 1월 24일
우의정 송시열(宋時烈)이 상소를 올려 사직하였다. 그 대략에,
"그러나 이것이 비록 가설적인 말이라 하더라도 역시 말할 수 없는 것인데 끝내 감히 말하고 만 것은 연유가 있었습니다. 고 판서 서필원(徐必遠)은 지금 정승 허적(許積)의 지기지우(知己之友)입니다. 그가 빨리 닮기를 원하는 마음을 심지어 도부(桃符)의 축문에 드러내기까지 하였으니, 그의 의(義)를 사모함이 무궁하다고 하겠습니다. [其速肖之願 至形於桃符之祝 則其慕義 可謂無窮矣]
현종 10년(1669) 2월 13일
송시열이 또 아뢰기를,
"『논어(論語)』에 ‘천승(千乘) 국가의 도리는 쓰임새를 절약하고 사람을 사랑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신이 매번 쓸데없는 비용을 절약하라고 진달하였는데 크게 감소하거나 생략한 것이 없습니다. 솔잎·복숭아 가지·도판(桃板)·춘번(春幡)·인승(人勝)·세화(歲畵)·진배(進排) 등의 일은 역시 쓸데없는 비용으로 감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니, 주상이 이르기를,
"이것을 혁파하기가 어찌 어렵겠는가. 모두 혁파하도록 하라." 하였다.
숙종 12년(1686) 11월 18일
영의정 김수항(金壽恒)이 또 아뢰기를,
"일찍이 선대왕(先大王) 때에 봉조하(奉朝賀) 송시열(宋時烈)이 경연(經筵)에 입시했을 적에 지나친 경비를 절감해야 한다는 뜻을 아뢰니, 선대왕께서 특히 궐내에 진상하던 솔잎·복숭아 가지·도판(桃板)·춘번(春幡)·인승(人勝)·세화(歲畫) 등의 물품을 폐지하였습니다.
그러다가 병진년(丙辰年, 1676년 숙종 2년)에 예조판서 이지익(李之翼)이 아뢰어서 세화(歲畫)는 다시 복구되었습니다. 하물며 지금은 지진 등의 재난이 극심하여 어공(御供) 또한 줄이는 판이니, 전례에 따라 폐지하는 것이 마땅할 것 같습니다."
하니, 임금이, "아뢰는 바가 진실로 그러하다. 폐지하라." 하였다.
숙종 43년(1717) 1월 3일
예조 참의(禮曹參議) 조태억(趙泰億)이 상소하였는데, 대략 이르기를,
"신(臣)이 병중에 새해를 맞이하니, 견마(犬馬)의 연모(戀慕)가 마음에 더욱 간절하여 감히 주자(朱子)가 도부(桃符)의 축문을 지었듯이, 이에 야인(野人)이 변변찮은 정성을 바치니 성명(聖明)께서는 살피시기 바랍니다.
이상 『조선왕조실록』
문첩(門帖)은 본래 옛날의 도부(桃符)이다. 도삭산(度索山)의 큰 복숭아나무가 있는 산위에 두 신인(神人)이 있었으니, 하나는 신도(神荼)이고 다른 하나는 울루(鬱壘)인데, 모든 잡귀를 물리칠 수 있었다. 그러므로 황제(黃帝) 헌원(軒轅)이 그 형상을 모방하여 섣달 그믐날에 두 신상(神像)에 푸닥거리하고 의식이 끝나면 곧 도경(桃梗)을 문에 부착했다. 경(梗)은 갱신(更新)의 뜻이다.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며 큰 복을 받으려는 소망이다. 후세에는 그것을 붉은 종이에 그렸다.
『임하필기(林下筆記)』 제34권 화동옥삼편(華東玉糝編) 문첩(門帖)
황제(黃帝) 시대에 두 형제가 있어 형의 이름은 신도(神荼), 아우의 이름은 울루(鬱壘)인데, 악귀를 잘 죽였다. 후세에 한 사람이 창해(滄海) 가운데 있는 도삭산(度朔山)에 당도하였다가, 큰 복숭아나무가 주위 3천리나 뻗어 있고 그 밑에는 두 신인(神人)이 새끼를 가지고 상서롭지 못한 악귀를 결박하는 것을 보았다 한다.’ 하였으니, 바로 위와 같은 것이다.
세속에서 섣달 그믐날 밤을 기하여 복숭아나무에 부적(符籍)을 그려 문 위에 걸고 아울러 신도ㆍ울루 두 신의 모습을 그려 붙이고는, 그들을 문신(門神)이라 칭하니, 이 또한 사악한 귀신을 방어하는 의의이다.
새해가 훌쩍 오고 묵은 해 바뀌어
설날을 삼조(三朝) 삼삭(三朔) 또는 삼원(三元)이라 하네.
뜨는 해에 예를 행한 순 임금 의례 성대하고
상서로운 날에 마음 씻은 한나라 조서 따뜻해라
때 맞춰 백성 기르느라 선왕들이 힘썼고
재앙 쫓고 복 맞이하는 민간 풍속 번성하여라.
도삭산에서 호랑이를 기르는 신도와 울루를 나열하고
집집마다 복숭아나무 부적 만들고 닭을 그려 대문에 붙이네.
『무명자집(無名子集)』제3책 설날(元日)
신도와 울루가 사는 곳, 선도산
『괄지도(括地圖)』에, ‘도도산(桃都山)에 거대한 복숭아나무가 있는데, 이 나무 위에 금계(金鷄)가 있는데 해가 비추면 곧바로 울고 나무 아래에 두 신(神)이 있는데 하나는 신도 하나는 울루이다. 함께 갈대 새끼줄을 가지고 검열하여 상서롭지 못한 귀신을 적발하면 곧바로 잡아 죽인다.’ 하였다. 이곳은 곤륜산 서왕모가 산다는 신선세계로 해가 뜨는 곳이며 태양 속 삼족오(三足烏)가 사는 곳이기도 하다.
신라 제51대 진성여왕이 나라가 어지러워지자 왕위를 태자(효공왕)에게 물려주고 당나라 황제에게 보낸 양위표(讓位表)에 이런 구절이 있다.
신의 본국은 비록 울루(鬱壘)의 반도(蟠桃)와 접경이오나 위력으로 군림하는 것을 숭상하지 아니하고, 또 백이(伯夷) 숙제(叔齊)의 고죽국(孤竹國)과 이웃이 되어, 본래 청렴하고 겸양함을 바탕으로 하였으며, 하물며 홍범구주의 남긴 규범을 빌리고 일찍이 팔조(八條)의 교훈을 계승하여, 말을 하면 반드시 하늘을 경외(敬畏)하고, 다닐 적에는 모두 길을 양보하였으니, 대개 어진 현인(仁賢, 기자)의 교화를 받아, 군자국(君子國)이란 명성에 부합되었던 것이옵니다.
臣以當國 雖欝壘之蟠桃接境 不尙威臨 且夷齊之孤竹連彊 本資廉退 矧假九疇之餘範 早襲八條之敎源 言必畏天 行皆讓路 蓋禀仁賢之化 得符君子之名
『동문선(東文選)』 제43권 양위표(讓位表)
이 표문은 신라 최치원이 지은 것이다. 서두에 ‘신의 본국은 비록 울루의 반도와 접경’ 이라는 구절은 신도와 울루가 귀신을 검열하는 큰 복숭아나무 또는 그 열매를 가리켜 선도(仙桃) 또는 반도(蟠桃)라고 하며, 이곳이 신라의 선도산(仙桃山)이라는 말이다.
신도와 울루가 귀신을 검열하는 반도(蟠桃)가 있는 구역은 비록 지상에 해당하지만 인간세상과 격리된 신선세계라서 접경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시대와 국경을 초월한 세계적인 설날 풍속인 도부(桃符)는 그 근원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것임에 틀림없다.
또한 신도와 울루가 사는 반도가 있는 구역은 본래 기자조선의 도읍지였기 때문에 표문에서 기자(箕子)에 관해 거론하는 것이며, 『산해경』에 나오는 군자국은 바로 이곳을 가리킨다는 말이다.
따라서 도교 경전에 선경(仙境)으로 서왕모가 사는 곤륜산이 바로 신라의 선도산이라는 결론이 된다.
이를 뒷받침하는 내용이『삼국사기』에도 보인다.
정화(政和, 1111〜1117) 연간에 우리 조정(고려)에서는 상서(尙書) 이자량(李資諒)을 송나라에 보내어 조공했을 때 신 부식(富軾)은 문필의 임무를 띠고 같이 가서 우신관(佑神館)에 참배하고 한 사당에 선녀상(女仙像)을 모셔둔 것을 보았다. 한림학사인 왕보(王黼)는 말했다.
“이것은 귀국(貴國)의 신(神)인데 공들은 이를 아십니까?” 마침내 말했다.
“옛날 제실의 공주가 있었는데 남편이 없는데도 아이를 배어 남에게 의심을 받게 되자 이에 바다를 건너 진한에 이르러 아들을 낳으니 해동의 첫 임금이 되었으며 제왕의 딸은 지선(地仙)이 되어 길이 선도산(仙桃山)에 있다는데 이것은 그 선인의 상입니다.” 하였다.
부식은 또 송나라 사신 왕양(王襄)이 지은 동신성모(東神聖母)에게 제사 드리는 글에 ‘현인을 낳아 나라를 세운다.’는 구절이 있는 것을 보고 그제야 동신(東神)이 곧 선도산(仙桃山)의 신성(神聖)임을 알았다.
그러나 그 아들이 어느 때 임금을 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신라 시조 박혁거세의 어머니를 선도성모(仙桃聖母)라고 하며 성모가 박혁거세를 낳아 신라를 건국하고 다시 천신이 되어 사는 산을 선도산(仙桃山)이라 한다. 그러므로 선도성모는 서왕모가 성인을 낳아 나라를 세우기 위하여 출현한 것이고 선인(仙人)의 눈으로 보면 선도산이 바로 경전속의 곤륜산이라는 말이다.
이렇게 중대하고 민감한 사안에 관해 송나라 제실을 대변하는 한림원의 학사가 고려 사신 일행들에게 여기에 모셔진 성모는 해동의 선도산에 사는 성모라고 밝히고 있으니 곤륜산의 위치나 선도성모에 관해 더 이상의 논란은 무의미한 것이다.
우신관은 천우신조(天佑神助)의 약어로 송나라 조정에서 나라의 복을 비는 천신을 봉안한 사당이다. 또 최치원이 지은 법장화상 전기에서 말하였다.
처음에 법장(法藏, 현수)과 해동의 의상법사가 동문수학하였는데, 그 후에 법장이 지엄의 가르침을 이어 받아 현의(玄義)의 과목을 연술(演述)하여 의상에게 보내면서 서신을 보냈는데,……
또한 해동 화엄의 각모(覺母)는 의상이 시조이다. 그러나 처음에는 동쪽 집의 구(東家丘, 공자)와 같을 뿐이었는데, 법신(法信)이 멀리서 전해지자 미혹한 무리들이 두루 환히 알게 되었다.
이것은 실로 촉룡(燭龍)의 눈이 열려 문득 광명을 놓았고, 불길 속에 사는 쥐의 털로 화완포(火浣布)를 짜는데 더욱 기특함을 나타내어 교화는 온 나라에 미쳤고 화엄종은 10산(山)에 두루 하였으니 화엄종이 반도(蟠桃, 선도산)에서 무성하게 빛나게 된 것도 역시 법장의 힘이었다.
해가 뜨고 달이 달리는 것이 모두 동방에 있으니 돈교(頓敎)와 점교(漸敎)가 모두 원만하고 문장과 뜻이 쌍으로 아름다웠다.
初藏與海東義想法師同學 其後藏印 師說演述義科寄示於想 仍寓書曰 … 且海表覺母 想爲始祖 然初至止若東家丘 及法信遐傳得 羣迷徧曉 斯實闓燭龍之眼頓放光明 織火鼠之毛益彰寄特 誘令一國學徧十山 雜華盛耀蟠桃 蓋亦藏之力爾 日出月走俱在於東 頓漸兩圓文義雙美
최치원이 지은 『법장화상전(法藏和尙傳)』한국불교전서 3권.
신라 의상대사가 당나라에 유학하여 중국 화엄종의 조사인 지엄(智儼)의 문하에서 법장(法藏)과 동문이 되어 화엄경을 공부하고 귀국하여 지리산 화엄사에 주석하며 전국 십여 곳의 화엄종 사찰에 화엄대학을 설립하고 화엄경을 전파하였다. 이 무렵 동문수학하던 현수(賢首, 법장)국사로부터 서신과 함께 법장이 지은 화엄경 관련 저술이 신라에 전해져 불교계에서 교재로 사용되었다. 이 무렵 의상대사는 문무왕의 명을 받아 지금 화엄사 각황전 자리에 장육전(丈六殿)을 건립하고 대법당의 사방 석벽에『 화엄경)』을 새겼다.
지리산 화엄사는 절 이름이 말해주듯이 해동 화엄종의 종찰(宗刹)이요, 중심 도량이다.
현재 학계에서는 선도산의 위치에 관해 경주에 있는 선도산(仙桃山)이라는 설이 지배적이지만, 정작 신라의 대문호인 최치원은 화엄십찰의 종찰인 화엄사가 있는 지리산이 신도와 울루가 사는 반도(蟠桃)이고 선도산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지리산의 서남단에 자리한 구례군에서는 매년 4월 20일 곡우절을 기하여 ‘남악제(南岳祭)’라는 이름으로 지리산 산신제를 거행한다. 삼국유사에 이런 말이 있다.
신모(神母, 선도성모)는 본래 중국 제실의 공주였는데 이름은 사소(娑蘇)이다.
일찍이 신선의 술법을 터득하여 해동에 와서 머물러 오랫동안 돌아가지 않았다. 그의 아버지인 황제는 편지를 솔개의 발에 묶어 보내면서, “이 솔개가 멈추는 곳을 따라 집을 삼으라.” 하였다.
사소가 편지를 받고 솔개를 날리니 이산에 와 멈추므로 마침내 그곳에 궁전을 짓고 살다가 지선(地仙 산신)이 되었다. 그래서 산 이름을 서연산(西鳶山)이라고도 한다.
신모가 이 산에 오래 웅거하면서 나라를 도와 신령스럽고 기이한 일이 심히 많았다.
개국한 이래로 항상 3사(三祀)의 하나가 되어 서열이 산천에 지내는 모든 제사의 위에 있었다.
제 54대 경명왕이 매를 날려 사냥하기를 좋아하더니 일찍이 선도산(仙桃山)에 올라서 매를 날렸다가 잃었다. 이에 성모에게 기도하기를 “만약 매를 얻게 되면 마땅히 벼슬을 봉하리라” 했더니 조금 있다가 매가 날아와 책상 위에 앉았다. 이로 인하여 천왕[天王, 원문에 大王이라고 하였으나 天王의 오기이다.]으로 작위를 봉했다.
성모가 처음 진한에 와서 성자(聖子)를 낳아 동국의 첫 임금이 되었다 하니 대개 박혁거세와 알영부인 두 성인의 유래다.
『삼국유사』 5권 선도성모 수희불사
지리산 산신을 선도성모라고 하며, 남악제의 기원에 관해서는 신라가 ‘개국한 이래로 항상 3사(三祀)의 하나가 되어 서열이 산천에 지내는 모든 제사의 위에 있었다.’ 고 하였다.
신라에서는 명산대천의 신에게 제사하는 의식을 대사(大祀) 중사(中祀) 소사(小祀)로 구분하였는데 신라 국모인 선도성모는 대사(大祀)에 해당하며 그 중에서도 서열이 최상의 지위에 있었다고 하였다. 신라 대사(大祀)의 대상으로는 내력(奈歴) 골화(骨火) 혈례(穴禮) 등 세 곳으로 모두 여신이며, 현재 위치가 미상이다.
그런데 삼국시대에 구례군이 백제에 속하였다는 역사인식이 지배적이어서 아직까지도 남악제의 기원에 관해 명확하게 밝히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뿐만이 아니라 도부의 주인공인 신도와 울루가 사는 반도(蟠桃, 선도산)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것을 역사의 질곡(桎梏)이라고 한다. 이런 취지에서 지리산 산신과 관련된 몇 가지 문헌 자료를 살펴보기로 한다.
고려시대 박전지(朴全之, 1250〜1325)의 「영봉산 용암사 중창기(靈鳳山龍巖寺重創記)」에서 말하였다.
옛날에 개국 조사(祖師) 도선(道詵)에게 지리산의 주인 성모 천왕(天王)이, “만일 세 곳의 암사(三巖寺)를 창건하면 삼한이 합하여 한 나라가 되고 전쟁이 저절로 종식될 것이다.” 한 비밀스러운 부탁으로 인하여 이에 세 곳의 암사(三巖寺)를 창건하였으니, 곧 지금의 선암사(仙巖寺)∙운암사(雲巖寺)와 이 절이 그것이다. 그러므로 이 절이 국가에 대하여 큰 비보(裨補)가 되는 것은 고금 사람들이 함께 아는 일이다.
『동문선(東文選)』 제68권 기(記).
[장흥 보림사 창건주 원표(元表)대사가] 반드시 그 적합한 절터를 얻고자 지팡이를 짚고 느린 걸음으로 방황하고 머뭇거릴 때에 한 선아(仙娥, 선녀)를 보았는데, 안색은 가냘프게 아리땁고 주옥으로 장식하고 화관(花冠)을 단정히 쓰고 옷자락을 가벼이 끌며 연못 위에서 나와 절하자 그 까닭을 물으니 곧 대답하기를
“나는 방장산(方丈山, 지리산) 제일 상봉 위의 천왕(天王)의 딸입니다. 나도 역시 성모 천왕(天王)으로서 이 땅에 온 지 여러 해 되었는데 대지가 용신(龍神)이 웅거해 산지가 오래인지라 한쪽 곁에서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바라건대 부처님 가피력을 입으시어 길이 거처할 곳으로 삼으소서.” 하였다.
必欲得其眞扶笻 緩步彷徨 躑躅之際 見一仙娥 顔色綽約 瓊珮綝纚 整花冠 曵霞於出拜池上 問之則曰 我是方丈第一峰上 天王之女也 我亦以聖母天王 來此地有年 而大地久爲龍神所據了處 一傍不能自專 願蒙佛力 永爲之所
「가지산 보림사 사적(迦智山寶林寺事蹟)」
보림사 사적기는 천순(天順, 1457〜1464) 연간에 지은 것으로 조선 초기인 세조 3년〜10년에 해당한다.
지리산 산신이 선도성모라는 사실은 김종직(金宗直, 1431~1492)의 『유두류록(遊頭流錄)』에서도 거론되고 있다. 유두류록은 김종직이 함양 군수로 있을 때 일행과 함께 지리산을 등정하였던 일을 기행문으로 엮은 것이다. 이때에 천왕봉에 올라보니 그 아래에 성모의 석상이 모셔진 자그마한 사당이 있어 관대를 갖추고 세수하고 사당에 들어가 제사를 드리고 나서,
또 묻기를 “여기에 모셔진 성모는 세상에서 어떤 신이라 이르느냐?” 하니 대답이 “석가모니의 어머니 마야부인이라 한다.”
“아! 이럴 수가 있느냐. 서축(西竺, 인도)이 동진(東震, 조선)과 더불어 천백세계가 가로 막혔는데 가유국 부인이 어떻게 이 땅의 신이 되겠는가. 나는 일찍이 이승휴의『 제왕운기』를 읽어보니 성모가 도선에게 명하는 구절의 주석에 지금 ‘지리산의 천왕(天王)’은 고려 태조의 어머니 위숙왕후를 가리킨 것이라고 하였다. 고려 사람이 선도성모(仙桃聖母)의 이야기를 익히 들었기로 그 임금의 계통을 신성화하기 위하여 이 이야기를 만든 것이다. 이것을 이승휴가 믿고서 제왕운기에 적어 놓았으나 이것 또는 증빙할 수 없거늘 하물며 승려들의 허무맹랑한 말에 있어서랴.”
『점필재집(佔畢齋集)』제2권 유두류록(遊頭流錄)
라고 하면서 불쾌감을 나타내며 반박하고 있다.
이 내용을 보면 지리산 산신에 관해 불교계에서는 석가의 어머니 마야부인이라 하였으나 김종직은 반박하고 있고, 원래 박혁거세의 어머니 선도성모인데 고려 김부식 일행이 송나라에 사신으로 갔을 때 선도성모에 관해 자세하게 들은 바 있으므로 고려에서도 그 임금의 계통을 신성화하기 위하여 태조 왕건의 어머니 위숙왕후가 지리산 산신이라고 했다는 말이다.
김종직도 지리산 산신이 선도성모라는 사실은 인정하고 있다.
『화엄경』에 의하면, 마야부인은 도의 경지가 이미 관세음보살과 같이 부처의 경지이고, 석가모니를 낳았을 뿐만 아니라 미래의 미륵불을 비롯하여 무려 2백여 명의 부처가 될 이의 이름을 거명하면서 그들 모두의 어머니가 된다고 하였다.
이 뿐만이 아니라 마야부인은 이 세계에서 보현의 행원(行願)을 모두 닦아서 모든 중생들을 교화하려는 이에게도 그들의 어머니가 된다고 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신라 시조 박혁거세와 고려 태조 왕건이 후자에 해당하며 두 왕조의 건국신화가『화엄경』에 의거하여 인증된다.
또한 『구례읍지』에는 이렇게 말하였다.
지리산 산신을 마야부인이라고 한다. 천왕봉에 성모의 사당이 있었는데 부인의 석상과 그림이 있었다. 어느 시대에 세워져 언제 폐지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동인(東人, 고려의 김부식)이 중국에 사신으로 갔을 때 중국인이 한 오래된 그림의 여자 선녀상(女仙像)을 보여 주면서 말하기를 “이것이 조선의 지리산신입니다.”고 하였다.
지금도 성모천왕의 옛 석상(石像)이 남아 있다.
智異山神 稱摩耶夫人 天王峰有聖母祠畵夫人像 刱廢不知何時 東人入中國 中國人 示一本古畵女像曰 此朝鮮智異山神 今聖母天王古碣尙存
『구례속지』 명승고적
지리산 산신은 본래 석가모니의 어머니 마야부인인데, 신라에서는 선도성모라고 부르고, 또 신라 54대 경명왕이 선도성모를 천왕(天王)으로 봉하였으므로 성모를 천왕(天王)이라고도 부른다.
현재 학계에서는 선도산의 위치에 관해 경주에 있는 선도산(仙桃山)이라는 설이 지배적이지만, 지리산 산신이 박혁거세의 어머니 선도성모라는 설이 엄연히 존재한다.
이에 대해 최치원은 ‘화엄종이 반도(蟠桃)에서 무성하게 빛나게 된 것도……’ 라는 구절에서 알 수 있듯이 신라 화엄종의 중심도량인 화엄사가 있는 지리산이 바로 선도산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지금 경주에 있는 불국사를 비롯하여 어느 사찰도 화엄십찰에 포함되지 않는다.
도부의 제작은 예로부터 전승되는 법식에 맞아야 효험이 있다. 실제로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 사악한 잡귀들의 장난으로 신병(神病)을 앓거나 가정의 우환을 겪고 있는 경우를 흔하게 볼 수 있다.
복숭아나무는 오행(五行)의 정기로 능히 백가지 괴변을 제압할 수 있으므로 선목(仙木)이라고 한다.
첨부한 도부 사진은 필자가 전형적인 법식에 따라 복숭아나무 목재에 제작한 것이다. 앞으로도 설날 도부 풍속의 부활을 위해 법식에 맞게 제작하여 필요한 가정에 보급할 예정이다.[문의 yongbang@daum.net]
옛날에는 신도와 울루의 형상을 복숭아나무 판자에 조각하거나 그려서 제작하였지만, 지금은 특수인쇄 기법을 응용하여 복숭아나무판자에 바로 인쇄하여 도부를 제작할 수 있다.
복숭아나무는 오행(五行)의 정기로 능히 백가지 괴변을 제압할 수 있으므로 선목(仙木)이라고 한다. 그리하여 복숭아나무는 나쁜 귀신들이 싫어하여 그 위에 신도와 울루 형상을 그려 물리치는 것이다.
도부는 이미 황제 헌원 시대에 시작된 이래로 시대와 국경을 초월하여 구한말에 이르기까지 계승되다가 일제강점기 민족문화 말살정책으로 폐지되어 현재 우리나라에는 도부의 종주국임에도 불구하고 퇴계 이황의 종가(宗家)를 비롯하여 전통 있는 가문에서 몇몇 대문에 창호지에 한자로 신도 울루 네 글자를 써서 붙인 것이 이러한 전통이 우리나라에도 있었다는 사실을 대변한다.

21세기는 문화전쟁의 시대라고 하였으며, 지금 당장 이웃나라 중국의 동북공정이 진행되고 있다.
문화재는 역사의 부산물이다. 현재 한국사는 조선시대 사대주의 정책과 일제 강점기 식민사관으로 인해 심각하게 왜곡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과거 위정자들의 정치적 목적에 의해 자행된 왜곡된 역사관으로는 민족의 정체성도 확립할 수 없고 전통문화에 대한 이해도 왜곡될 수밖에 없으며 그러는 동안 정작 민족문화의 정수가 담긴 전통문화는 사장되고 단절되는 불행한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