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들의 간음 성추행 성폭행 사건들
간통 간음 adultery
성추행 sexual molestation, sexual harassment,
성폭행 sexual indecent assau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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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년 동안 키운 아들, 알고보니
목사님 아들
친자확인 유전자 검사 결과 99.99% 일치
CBS가 입수한 유전자 시험 성적서.
조 목사와 김 집사의 아들이 친생자 관계가 성립된다고 나와 있다.
인천 xx교회에 다니던 남편 김 집사는 최근 인생이 무너지는 경험을
했다.
17년 동안 금이야 옥이야 키웠던 아들이 사실은 자신의 아들이 아니라, 담임목사님의 아들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내 아들과 담임목사의 유전자가 99.99% 일치하다니.."
김 집사의 아들과 조 목사의 유전자를 검사한 결과 99.99%가 일치로
나왔다.
조 목사의 유전자를 검사한 병리사는 "간혹 돌연변이가 나올
수는 있지만, 99.99%라는 수치는 친자와 다름 없다는 결과"라고
말했다.
또 다른 의사 역시 "유전자 검사는 매우 정확하다"며 "99.99%는 사실상 아들이라는 이야기"라고 했다.
김 집사는 "유전자 검사 결과를 듣고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며 "몇날며칠을 통곡하고 울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자신의 신세가 처량한 것도 있지만, 아들이 불쌍해서 견딜수가 없었다.
김 집사는 자신의 아들과도 유전자 검사를 했지만, 결과는 친자가 아닌
것으로 나왔다.
그런데 어떻게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김
집사의 주장을 들어보자.
"저와 아내는 ㅇ교회에서 만났습니다. 연애를 시작했고, 결혼까지 약속했죠. 목사님께 말씀 드리러 가니 이상하게 축복해주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때는
그렇게 넘어갔죠. 그런데 아들이 크면서 주변 사람들이 자꾸 저랑 안 닮았다고 하는 거예요. 그런데도 의심할 수는 없으니 넘어갔습니다."
김 집사는 너무 배신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김 집사는 아내가 결혼한 뒤에도 기도를 핑계로 교회에 가는 일이 잦았다고 말했다.
새벽에 들어오는 경우가 많았지만, 그래도 김 집사는 아내를 믿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아내의 행동에 의심은 더해져만 갔고, 결국 목사의 집에서 나오는
걸 몇 차례 목격했다고 주장했다.
의심은 깊어졌고, 부부싸움은 잦아졌다. 김 집사는 어떻게든 가정을 지키고 싶었지만, 아내가 더 이상의 결혼
생활을 원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래서 2년 전부터 별거에
들어갔고, 이혼소송을 시작했다.
"담임목사 때문에 가정 깨졌다" 주장
김 집사는 담임목사 때문에 가정이 깨졌다고 생각했다. 법정에서도 그렇게
주장했다.
법원은 조 목사를 증인으로 채택했다. 조 목사도 법원에 나와서 몇
차례 증언을 했다.
김 집사는 2015년 자신의 아들과 친자확인 검사를 했다. 친자가 아니라는 결과가 나왔다.
김 집사의 주장에 따르면 법원은 조 목사에게도 친자확인을 위한 유전자 검사를 받으라고 했다.
하지만 조 목사는 이에 따르지 않았다.
결국 법원은 조 목사에게 최후통첩을 했다.
유전자 검사를 받지 않으면, 친자라고 보겠다고 했다.
결국 조 목사는 유전자 검사를 했고, 결과는 99.99% 일치라고 나왔다.
하지만 조 목사의 주장은 김 집사와 전혀 다르다.
김 집사는 아내를 줄곧 의심했고, 폭력까지 행사했다고 했다. 또 유전자 검사와 관련해서는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했다.
기자가 유전자 검사 결과 99.99% 일치하는 결과가 나왔다고 하자, 조 목사는 "믿을 수 없다"고 했다. 조작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김 집사는 유전자 검사를 한 기관은 법원에서 지정해준 곳으로, 조작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또 자신은 교회에 충성해왔다며, 교회
일이라면 팔을 겉어붙이고 나섰다고 했다.
폭력 역시 단 한 번도 아내에게 폭력을 휘두른 적이 없다고 했다.
일단 상황은 조 목사에게 불리하다.
유전자 검사 결과가 너무 확실하기 때문이다. 검사 결과는 법원에 제출한
상태.
김 집사는 "20년 동안 교회에 충성했는데, 목사에게 속았다는 생각뿐"이라며 "억울해서 죽고 싶은 마음"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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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목도한 첫 성폭행 사건
집안 사정이 어려워져서 아파트를 떠나 주택가 반지하로 이사했다. 막
건설하고 있던 동네라 자제가 나뒹굴었고, 친구들과 나무와 못으로 총을 만들어서 놀았다. 교회 친구들도 많이 사귀기 시작했다. 친구들과 헌금으로 몰래 사탕과
과자 사 먹는 재미에 즐거웠다. 물론 어머니랑 친했던 슈퍼 사장님이 아침에 오고 또 왔냐고 말해 집에
가서 자주 맞았지만 말이다.
하여튼 이때 다니던 교회에서는 어린 나도 친구들과 지내는 일이 즐거웠다. 반대로
어머니는 너무 충격적인 사건을 접하면서 목회자 불신이 커졌다. 한 목사가 여성 교인을 성폭행하는 사건이
일어난 탓이다. 담임목사가 아닌 부흥 강사로 온 목사가 일으킨 범죄였다.
요새는 부흥 강사가 오면 교회에서 부흥회 기간 입을 와이셔츠와 속옷 등을 전부 사준다. 당시에는 여전도회 집사와 권사가 부흥 강사 빨래를 해주었다. 숙소도
교회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모텔이나 여인숙을 잡아주었다. 이 정도 정황만 이야기해도 감이 올 것이다. 숙소에서 쉬던 목사가 빨래와 청소를 하러 온 젋은 집사를 강간했다.
무용을 전공한 키도 크고 날씬한 여성이었다고 어머니는 기억한다. 신혼이었고
돌이 막 지난 아기가 있었다. 피해 여성은 큰 충격에 휩싸였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성폭행 피해자가 강간범보다 더 지탄받던 시기였던 터라 두려움이 컸다.
치졸하기 그지없었던 목사는 젊은 집사를 협박했다. 남편에게 강간당한
사실을 알리겠다고 말했다. 그런 상황이 일어나지 않게 하려면 자기 방으로 한 번 더 찾아오라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부터 피해자인 집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러다
아기와 가면 혹시라도 괜찮을까 싶어 어린아이를 안고 목사 숙소로 찾아갔다. 인면수심이었던 목사는 아기
앞에서 두 번째 강간을 저질렀다.
결국, 이 사실을 교회에 다니지 않는 남편이 알았다. 처음에는 교회에 와서 담임목사 멱살을 잡고 난리를 쳤다. 자초지종을
알게 된 남편은 부흥 강사가 시무하던 교회에 찾아갔다. 그곳에서도 그 사람을 말릴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일요일 밤늦게까지 난리 치며, 목사를 죽이겠다고 소리쳤다고 한다.
그런데도 그는 강간한 목사를 만날 수 없었다. 목사는 끝까지 나오지
않았고, 목사 아내가 나와서 무릎을 꿇고 용서를 구했다고 한다. 여성
뒤에 숨어버린 것이다. 죄는 목사가 저질렀는데, 용서는 사모가
구했다. 남성이 여성에게 저지른 잘못을 무고한 다른 여성이 사죄해야 했다. 피해자와 가족에게 정의는 없었다. 목사 아내 개인 외에는 목사도, 교회도 끝내 사과하지 않았다.
피해자 부부는 이혼했다. 성폭행이 피해 여성 탓이라는 생각이 지금보다
더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에 살 수 없었던 피해 여성은 교인들과 인사도 하지 않고 미국으로 떠났다. 이후 피해 여성과 남편 이야기는 확인할 수 없었다. 피해자가 다니던
교회는 시간이 흐르고 아무런 문제 없었던 것처럼 잘 돌아갔다. 흔히 말하는 정상을 회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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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경석 목사 여신도 성폭행사건 피해자 증언
Ⅰ. 피해자 이현주(가명)씨의 증언
저는 1989년 제 여동생을 통해서 예림교회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처음 예림교회에 갔을 때 예배시간에 교인들이 울고불고 쓰러지고 목사는 강대상에서 지나친 욕설을 퍼붓고 하는
것이 상당히 거부감이 들었습니다. 장로교에서 어려서부터 신앙생활을 했지만 이런 모습은 처음이었습니다. 제가 갔을 때는 전에 있던 성도들이 다 목사를 배반하고 나갔다 하여 몇 사람 없었습니다. 그 당시 저는 남대문에서 의류사업을 하고 있었으며 재정적으로도 넉넉했습니다.
목사는 지나치게 저에게 관심을 보이며 개인상담도 많이 해주었습니다. 오 목사는 '우리 부모보다 내가 너를 더 사랑한다, 나는 영적인 의사다'라고 수없이 이야기하며, 병원에 가면 거리낌없이 벗고 진찰을 받듯이
숨김 없이 자기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도록 했으며 자신이 '영적인 아버지'라고 늘 강조했습니다.
오 목사는 교회에서 철야를 강조했으며 급기야 저는 집을 나와 지하선교관에서 지방 출신 여자 청년들과 몇몇 신도들과
함께 집단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오 목사는 이 교회에 나온 사람은 사명자라며 "사명 저버리면
죽는다, 교회를 떠나면 저주받는다" 강조하여 세뇌가
될 정도였습니다. 목사의 눈밖에 난 사람은 예배 시간 중에도 지목 당하여 욕설과 저주를 들어야 하고
결국 교회를 나갈 수밖에 없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그 교회를 나가는 것은 사명을 저버리는 것으로 저주받는
것임을 세뇌 당한 교인들은 어떻게든 목사의 눈에 들기 위해 헌신 충성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던 중 오 목사는 저를 재정위원을 시키는 등 총애를 하였으며 다른 교인들이 질투를 할 정도로 개인적인 관심을
보였습니다. 하루는 피곤해서 지하선교관에 있는데 목사가 들어왔습니다.
목사는 늘 아프다며 목회실, 지하선교관, 예배실에서도
누워 청년들에게 다리를 주무르라고 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수종위원이라며 다리 주무르고 안마하는 청년들을
곁에 두기도 했습니다. 목사는 방으로 들어와 이불 펴고 누워서는 저에게 다리를 주무르라고 하더니 갑자기
끌어안고 키스를 하는 등 심한 성 추행을 하였습니다. 문밖에는 목사의 세 자녀가 있어 소리를 지를 수도
없었습니다.
얼떨결에 당하여 정신이 없는 중에도 목사가 매일 은혜 갚아라 강조했기 때문에 이것도 은혜 갚는 일인가 구분이
가지 않았습니다. 그 후에도 목사는 계속 저에게 접근했고 추행에서 상습적인 성폭행으로 이어졌습니다. 아래층에서 할머니들이 기도 드리고 있는데 위층에서 저를 성폭행할 정도로 오 목사는 때와 장소를 구분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저는 낙태까지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에 저는
목사의 그러한 행동이 성적인 것으로 느끼지 못했습니다. 목사 스스로
"이것은 성적인 것이 아니다. 사랑으로, 믿음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죄가 안된다"고 했으며 자신이 영적 아버지임을 계속 강조했습니다. 저는 사업하여 그 날 번 돈을 고스란히 교회에 바치고 목사 승용차까지 바칠 정도로 헌신하였으며 교회에서는 오
목사 말 그대로 스타의 대접을 받기도 했습니다. 때로 갈등이 있어 그 교회를 그만 나가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떠나면 저주받는다고 세뇌되었기에 나갈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제 여동생의 일기장을 보게 되었고, 동생도 오경석에게
당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일기장에는 오경석의 이름은 나와있지 않았지만 그 교회 다니는
어느 누가 보아도 그 주인공이 오경석 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나 뿐 아니라 동생까지 그런 일을 겪고
있다는 것이 기가 막혔습니다. 나는 다른 여자청년들 몇 몇과 함께 목사에게 따져 묻기로 하였는데 그런
사실을 목사가 미리 알게 되어 예배시간에 공개적으로 욕설과 저주를 듣게 되었습니다. '목사 가슴에 비수를
꽂았다. 목사를 도마 위에 올려놓았다' 하며 오 목사 특유의
온갖 욕설과 저주를 들어야 했습니다. 당시 목사를 비방하면 저주받을 것으로 틀림없이 믿고 있었던 우리들은
두려움에 떨고 그 일을 덮어 둘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이후에 오 목사의 태도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저를 내쫓으려는 것이었습니다. 그 전에도 자신이 성폭행 당했던 여
성도들에게 간음마귀 들어갔다 하면서 내쫓았던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저는 교인들 앞에서 오 목사가 나에게
했던 일들을 폭로했습니다. 그 일 이후 여러 성도가 교회를 그만두었습니다. 그 이후에 오 목사는 더 이상 거짓말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는지 강대상에서 교인들에게 무릎 꿇고 자신이 간음죄를
저질렀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리고는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와 간음했지만 회개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용서해서 끝까지 왕으로 잘 살수 있었다며 자신이 '회개했기 때문에 모든 것을 용서받았다. 그러니 자신을 비난하는 사람은 오히려 하나님의 처벌을 받을 거'라고
설교했습니다. 그리고는 무슨 의식처럼 모든 교인들에게 '죄
자백'이라는 것을 시켰습니다. 죄 자백 안 하면 구원 안
받았다 해서 남편, 아내 있는데서 모두 간음죄만 고백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리고 교인 한 사람씩 부르면서 네 죄가 크냐, 목사 죄가 크냐, 묻고는 '내 죄가 큽니다' 하고
대답하도록 하여 자신의 죄를 은폐시키려 했습니다.
저는 교회를 나와, 그 동안 목사에게 당했던 피해자들과 함께 교단
본부에 오경석을 고소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저는 영육간에 망신창이가 되었으며 사업자금에 집 살 돈까지
모두 바쳐 지금은 갈 곳도 없이 빚 더미에 올라 앉아있습니다. 저는 지난 2월부터 상담소를 찾아오기까지 오경석에게 당한 것과 비교될 만큼의 상처를 또 한번 입었습니다. 나를 도와주겠다던 사람들은 오히려 나를 이용하였습니다. 지금 그
교회에 남아있는 교인들의 협박전화는 오히려 견딜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함께 탄원서를 썼던 다른 피해자들도
한둘씩 자취를 감추는 것에 분노합니다.
조속히 일을 처리해 줄 것이라 믿었던 교단도 일 년이 되도록 오경석을 파직시키지 않고 있습니다. 주님의 양들은 영육 간에 파멸을 맛보며 지옥을 살고 있는데 파렴치한 행위를 한 목사는 아직도 교단간판을 걸고
버젓이 목회를 하고 설교를 하고 있다는 것이 기가 막힙니다. 저는 모두가 저를 떠나고 욕을 한다고 해도
혼자서라도 끝까지 이 일을 처리할 각오가 되어있습니다. 또 다른 피해자가 나오지 않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오경석에게 이 전에 당했던 피해자중 누구하나라도 이 일을 드러내고 해결하려고 했더라면 나 같은 피해자는 나오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실 것을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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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지방법원은 교회 신도의 딸 13살 조 모 양과 정신지체아 조카
등을 상습적으로 성 추행하고 폭행한 혐의로 구소기소된 모 교회 목사 김 모씨에 대해 징역 5년을 선고했습니다.
또 딸과 조카가 성폭행 당한 사실을 알고도 이를 방치한 혐의로 부모 조 모씨 등에 대해 징역 1년을 선고했습니다.
재판부는 김씨가 목사라는 지위를 이용해 어린아이를 오랜 기간에 걸쳐 추행하는등 피해 어린이에게 평생 씻을 수
없는 정신적,육체적 피해를 입힌 점이 인정돼 중형을 선고한다고 밝혔습니다.
재판부는 또 조 씨등은 부모로서의 기본적인 보호의무조차 잊고 자식과 조카가 성폭행 당하도록 방치한 것은 인륜에
어긋나는 중대한 범죄라고 말했습니다.
김씨는 지난 2015년 자신의 교회 신도의 9살짜리 딸과 10살짜리 조카 등을 성추행한 혐의로 구속기소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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