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5년의 러일전쟁때 영국, 미국 등은 적극적으로 일본을 도와주었고 일본으로서는 조선을 차지하여야 열강의 대열에 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으므로 필사적이었지만 국내 문제에 더 관심을 쏟아야 하였던 러시아로서는 조선에 대한 영향력을 상실하여도 무방하다는 의견이 지배하고 있었겠지요. 세력권에 있었던 핀란드의 독립을 묵인해야 할 정도로 국내 사정이 어려웠기 때문에 일본과의 전쟁에 전력을 기울일 처지가 아니었습니다. 이런 사정을 미리 탐지하고 일본이 전쟁을 일으킨 것이지요. 국력의 차이가 전쟁의 향방을 결정짓지 못한 것이지요.
그러나 1939년에 만주와 몽고의 국경인 노몬한에서 격돌한 소련의 극동군과 일본의 관동군 사이의 전투는 양상을 달리하였지요. 그때 동맹관계였던 나치독일을 믿을 수 없었던 소련의 독재자 스탈린은 이렇게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당연히 일본과 나치독일에 많은 스파이들을 파견하였을 스탈린은 이들의 첩보 특히 전설적인 스파이 조르게의 첩보를 들었을 것이고 혹시 일본이 나치독일에 협력하여 동서 양쪽에서 소련을 침공해 오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였겠지요. 그런데 만약 노몬한 전투에서 또 다시 러시아의 후신인 소련이 패배한다면 일본이 계속해서 소련으로 진격할 것이라고 생각하여 전력을 기울였을 것입니다. 이 전투에서는 국력의 차이가 그대로 반영된 것이지요. 참패한 일본은 나치독일이 원했던 소련으로의 진격을 단념할 수밖에 없었고 대신 동남아시아와 태평양으로 진출하여 미국과 격돌한 것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