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6월25일 38선 전역에서 기습공격을 감행한 金日成은 단숨에 부산까지 점령해서 한반도를 그의 지배 아래 통일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미국이 중심이 된 UN군의 도움으로 북한군을 밀어내고 38선을 돌파한 李承晩 대통령도 이 기회에 분단된 한반도를 다시 통일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러나 예상하지 못했던 중공군의 대거 참전으로 통일의 꿈은 사라지고 1951년 중반부터 현재의 휴전선을 따라 전선이 고착되었고 전쟁은 지루한 高地戰·소모전으로 바뀌고 말았다.
양측은 막대한 희생을 각오하지 않고서는 그들의 의도를 관철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공산세력의 팽창을 일단 저지하는 데 성공한 미국은 더 이상 국민에게 출혈을 강요할 명분을 잃게 되었고, 소련 역시 제3차 세계대전으로 비화할 수도 있는 이 전쟁에 계속 자원을 소모할 수는 없었다.
1951년 3월, 美 국무부는 다시 38도선을 경계선으로 하는 휴전안을 작성했고, 5월 중순 그것을 공식정책으로 확정했다. 그러나 어느 쪽도 체면 때문에 먼저 휴전을 공식적으로 제의하려고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