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운 한류와 노벨문학상 가수 밥 딜런
의견;
노벨문학상 2016 수상자 가수 Bob Dylan 의
가사-Lyrics 를 읽으면서
나도모르게 한류와 비교하게 된다.
그의 가사에는 철학과 사명이 들어있다.
그러나 한류 가수들에게 철학이나 사명이 있는가?
없다.
물론 모두가 다 그런 사명과 철학이 있어야 한다는건
아니나
전멸이라는게 문제이다.
정치와 대기업은 부정부패로 썩었으나
한류 덕분에 국외 다른나라로 많이 번져나갔고 알려졌다.
한류가 국외에 알려지지 않아도
정치와 대기업만 바로 선다면 그 힘은 한류보다도
몇백배 엄청나다.
지도자가 아닌 장사꾼 한국 정치인들이 만들어내는
연예계는
돈벌이이지 멀리보는 사명이나 철학은 없다.
정치인들은 그런 사명 철학은 원치 않는다.
정치인들이나 언론이 한류나 연예인들에게 바라는것은
오직 서커스단의 코끼리처럼 얼마나 외화를 잘 벌어들이는가만
본다.
한류를 타고 번지는 가수들은 출세가 힘들어지자
짧은 스커트에 향락적 자극적 포르노 몸매 가수들로
변질되간다.
무엇을 하던지 건전한 철학 즉 정신이 먼저 앞서야한다.
건전한 정신이 없는 종교는 상업적 장사일뿐이다.
나보고 그렇게 비판만 하지말고노래하고 시를 쓰라고
강요할지 모르나
나는 인문학에 관심이 있을뿐 가수도 시인도 아니다.
어케하면 연예인들 가수들이 정치인들의 꼭두각시
놀이에서 벗어날수가 있을까?
어케하면 사회, 정치, 경제, 최순실, 미르, K Sport, 등
비판적 노래와 문학을 할수있는 자유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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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Bob Dylan의 노래 영어 제목 번역을
보면
Blowing in the wind 를
‘바람만이 아는 대답’ 이라 번역했다.
또 아래
The answer is blowing in the wind 는
‘바람만이 그 답을 알고 있다네’ 로 번역을했다.
영어에 능숙한 한국사람이 번역을 했으니 아주 적절하게 잘 번역을 했다.
그런데 왼지 내 마음은 찜찜하다.
Bob Dylan 의 부모는 러시아계 유대인이고, 그는 미네소타에서 태어나서 영어가 모국어 주 언어이다.
그런데 왜 그는
The answer is knowing in the wind 라 안하고
The answer is blowing in the wind 이라 했을까?
나는 이 제목과 구절을
Blowing in the wind 문자 그대로
“[답이] 바람에 날리는” 이라 번역하고싶고
The answer is blowing in the wind 는
‘바람만이 그 답을 알고 있다네’ 보다는
”그 답은 바람에 날리고있다네” 로 번역하고싶다.
원 구절을 ‘알고있다’ 라고 번역을 해도
주어는 분명 ‘그답’이다. 그럼
‘그 답은 바람만이 알고있다네’ 로 번역을 해야하지만
가요계의 번역은, 강조하기위해서 바람이 먼저 나왔다.
이건 그리 문제가 안된다.
번역의 문제는
의역 ‘그 답은 바람이 알고있다’ 와
직역 ‘그 답은 바람속에 날리고있다’ 이다.
물론 한국 사람이 이해하는데는
“바람만이 그 답을 알고 있다네” 가 이해가 더
빠르다.
그러나 언어적 문자적으로보면
know 와 blow 는 분명 뜻이 다르다.
그 답이 바람 속에 휘날린다는건 어떤 조금 다른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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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유명한 노래는 4가지 정도가 있다.
* 아래 번역은 나의 번역 임
Blowing’ in the wind [답은] 바람속에 날리는
[인터넷 번역; 바람만이 아는 대답]
One more cup of coffee, 커피 한잔 더
Knockin’on heaven’s door, 천국의 문을 두드려라
Like a rolling stone, 구르는 돌 처럼
Rainy day woman #12 & 35, 정도가 히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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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Bob Dylan 소개
딜런은 10살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고,
1959년 미네소타 대학교에 입학하였으나
1961년에 중퇴하였다. 그 후,
그는 자신의 우상인 포크 가수 우디 거스리를 만나기 위해 뉴욕으로 간다.
뉴욕에 도착해 우디 거스리 Woody Guthrie [Red River Valley] 를 만나고 그리니치 빌리지
주변의 클럽들을 전전하며 연주하던 그는
유명 음반 제작가 존 하몬드의 눈에 띄어 콜롬비아 레코드를 통해 데뷔하게 된다.
그 후 앨범 The Freewheelin' Bob Dylan(1963)
의 성공을 통해 당시 활발했던 사회적 저항 운동의 상징적인 음악가가 되었으며,
특히
잭 케루악 Jack Kerouac 1922 ~ 1969 On the
Road /
앨런 긴즈버그 Allen Ginsberg [군국주의,
물질주의, 성적 억압 반대] 등 비트닉 작가들의
영향을 받은 그의 시적인 가사는 대중음악에서의 가사의 수준을 끌어 올렸다.
하지만 자신이 의도치도 않았던 저항 가수로서의 굴레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그는 언론과
자주 마찰을 일으키게 되며, 당시 비틀즈를 위시로 한 브리티시 인베이전 밴드들의 일렉트릭 사운드에 자극을
받아 정통 어쿠스틱 포크에서 일렉트릭 사운드로의 전환을 시도한다.
1965년 뉴포트 포크 페스티벌(The Newport Folk
Festival)에서 록 밴드 폴 버터필드 블루스 밴드와 키보디스트 알 쿠퍼를 대동하고 일렉트릭 사운드를 선보인 사건은
수많은 대중과 포크 팬들의 야유와 반발을 불러 일으키지만, 딜런은 자신의 음악적 전환을 확고하게 이어갔으며
이를 통해 포크 록이라는 새로운 음악적 영역을 창조하고 발전시켰다.
이 시기의 음반으로는 Bringing It All Back
Home(1965),
Highway 61 Revisited(1965), Blonde On Blonde(1966)가 있다.
1966년 7월, 오토바이를 타다가 의문의 교통사고를 당한 딜런은 록 밴드 더 밴드와 함께 잠적하여 주로 루츠록(Roots Rock)
장르의 음악을 만드는데, 이때 만들어진 곡들은 부틀렉 형식으로 떠돌아다니다가
1975년 The Basement Tapes라는
이름으로 음반화된다.
또한 1967년 즈음에는 컨트리로 전향하여 컨트리의
본고장인 내슈빌에서 컨트리록 음반 John Wesley Harding(1967), Nashville Skyline(1969)을 녹음해 발매하며 이후의 컨트리록 유행을 선도한다.
1970년대 초반에는 주로 더 밴드와 함께 작업했고, 친구이자 비틀즈의 전 멤버인 조지 해리슨이 1971년에 주최한 콘서트 포 방글라데시(Concert
For Bangladesh) 에서 공연하기도 했다.
이후 아내와의 불화와 이혼을 겪으며
Blood On The Tracks(1975),
Desire(1976) 등의 음반을 발매하며 활발한 공연 투어를 벌였다.
1980년대 초반에는 기독교로 개종하기도 했는데, 당시의 음악은 대부분 종교적 주제와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미국 연방법원이 판결문에 그의 가사를 인용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1982년 작곡가 명예의 전당에,
1988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으며
2000년에 폴라음악상을 수상하였다.[2]
1985년, 마이클 잭슨 등 유명 아티스트들이
다수 참가한 자선 프로젝트 'USA for Africa'에 참가하였으며,
1988년, 조지 해리슨, 로이 오비슨, 제프 린, 톰 페티와 '트래블링 윌버리스'를 결성하였다.
1999년 타임지는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에 밥 딜런을 선정했다.[3]
2000년에 영화 《원더 보이스》에 나온 그의 노래
"Things Have Changed"와 함께 아카데미 상을 수상하였고,
2008년에는 "팝 음악과 미국 문화에
깊은 영향"으로 퓰리처상의 표창장을 받았다.
2004년 10월에 출판된 회고록「Chronicles:
Volume One」(바람만이 아는 대답: 밥 딜런 자서전)은 뉴욕 타임스의 논픽션 부문 베스트셀러 목록에 19주간 머물렀다.[4]
2009년 4월 28일 딜런은 그의 33번째 스튜디오 앨범 Together Through Life을 발매하였다. 이 앨범은 빌보드 차트와 '가장 많이
팔린 200개의 앨범' 차트에서 모두 1위에 올랐으며, UK앨범 차트에서는 발매된 지 1주 만에
1위에 올랐다.
2010년 3월 31일, 데뷔한지 48년 만에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첫
내한 공연을 가졌다.
2016년 10월 13일, 대중 가수로는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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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 문학상 밥 딜런이 들려준 노래와 시
youtube [가사번역]
https://www.youtube.com/watch?v=fgCr64oIJUc
Published on Mar 11, 2016
Bob Dylan,
“Blowing in the wind”
“바람만이 아는 대답”
“[답이] 바람 속에 날리는” 나의 번역
How many roads must a man walk down
사람은 얼마나 많은 길을 걸어봐야
Before they call him a man
진정한 인생을 깨닫게 될까
How many seas must a white dove sail
흰 비둘기는 얼마나 많이 바다 위를 날아봐야
Before she sleeps in the sand
백사장에 편히 쉴 수 있을까
How many times must the cannonballs fly
전쟁의 포화가 얼마나 많이 휩쓸고 나서야
Before they are forever banned
영원한 평화가 찾아오게 될까
The answer, my friend, is blowing in the wind
친구여, 그건 바람만이 알고 있다네
The answer is blowing in the wind
바람만이 그 답을 알고 있다네
How many years must a mountain exist
산은 얼마나 많은 세월이 지나야
Before it is washed to the sea
씻겨서 바다로 갈까
How many years can some people exist
사람은 얼마나 긴 세월이 흘러야
Before they're allowed to be free
진정한 자유를 얻을까
How many times can a man turn his head
언제까지 고개를 돌리고
And pretend that he just don't see
모르는척할 수 있을까 ?
The answer, my friend, is blowing in the wind
친구여, 그건 바람만이 알고 있다네
The answer is blowing in the wind
바람만이 그 답을 알고 있다네
How many times must a man look up
얼마나 많이 올려다 보아야
Before he can see the sky
진짜 하늘을 볼 수 있을까
How many ears must one man have
얼마나 많은 귀를 가져야
Before he can hear people cry
타인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How many deaths will it take till he knows
얼마나 많은 사람이 희생되어야
That too many people have died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음을 알게 될까
The answer, my friend, is blowing in the wind
친구여, 그건 바람만이 알고 있다네
The answer is blowing in the wind
바람만이 그 답을 알고 있다네
The answer, my friend, is blowing in the wind
친구여, 그건 바람만이 알고 있다네
The answer is blowing in the wind
바람만이 그 답을 알고 있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