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세계에서 1위를 지키고 있는 대한민국의 효자산업인 반도체 전자공업의 기반을 다짐
- 역사적으로 농경시대에는 농사를 짓는 기술이, 산업사회에서는 기계기술과 전자기술이 생존 수단이었다. 그리고 박정희 대통령 시대가 바로 우리나라가 최초로 산업사회로 들어서는 시기였다. 바로 그 시기에, 박정희 대통령은 철강, 조선, 자동차, 반도체 등의 기간산업을 정부 주도형으로 기획하고 육성하였다.
중화학공업이 박정희 대통령에 의해 육성되던 시기인 1974년 1월에 한국반도체는 설립되었다. 국내 유수의 오퍼상인 켐코(KEMCO)가 기술집약적인 웨이퍼 가공 생산을 하려고 했던 것이다. 이 회사가 바로 이건희 눈에 띄었다. 1973년에는 오일 쇼크가 닥쳐 큰 폭풍에 휩싸였는데, 이건희는 한국은 부가가치가 높은 첨단 하이테크산업으로 진출해야 한다는 확신을 가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1974년에 한국반도체라는 회사가 파산에 직면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던 것이다. 30대 초반이었던 이건희는 아버지에게 한국반도체를 인수하자고 건의했지만 이병철 회장은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이건희는 물러서지 않았고, 결국 아버지의 도움을 받지 않고 뛰어들었다.
하지만 이병철도 반도체에 관심이 없던 것은 아니었다. 1977년에 한국반도체를 인수했는데, 언젠가는 반도체사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병철은 이후 박정희 대통령을 찾아가 만났는데, 그는 "전자산업이 앞으로 한국을 먹여 살릴 산업이니 국가적으로 키워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박정희 대통령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곧바로 전자산업의 문을 열라는 지시를 내렸고, 일은 수월하게 진행되었다.
1970년대 중화학 공업 정책을 육성할 때 반도체는 당시에 최초로 국내에 도입되어서 연구가 시작되었다. 시제품을 만들고 본격적으로 제품을 내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였지만, 연구개발은 1970년대에 박정희 대통령의 승인과 적극적인 지원을 통해 기업체에서 시작되었다. 메모리형 반도체 산업육성정책을 연탄을 찍어내는 일, 또는 쌀농사를 짓는 것과 같다라고 보았던 것이다.
1980년~1990년대 반도체, 휴대전화기로 옮겨가게 된 것은 바로 1960~1970년대 수출드라이브 정책과 수출지향산업화 전략이 결실을 거둔 것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처음에는 수출을 확대했고, 이후 중공업, 선박, 화학, 자동차, 반도체, 소비재 전자제품에 집중적으로 투자를 하여 경공업과 중화학공업을 동시에 이룬 것이었다.
그 결과, 현재 삼성그룹 전자계열사 제품을 국내 외 유통, 국내 반도체 유통부문에서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1위의 공급자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우리나라의 반도체 분야 1위는 1992년에 삼성전자가 메모리 반도체 세계 1위에 오르고 나서 지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