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조직론(112).. '0차원'의 세계.
차원은 어떻게 결정되는 것인가 심각하게 고민한 적이 있다. 그래서 차원이라는 것을 재정의 하기로 했다. 그래서 우선 '1차원'이라는 것을 정의했다. '1차원'이란 '선'으로 무한히 긴 것을 의미한다. 그럼 유한한 길이의 무한개가 있는 것과 동일한 것이다. 그럼 그것은 무한의 변수라고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 1차원은 무한의 변수의 합이라고 정의되어도 되는 것인가? 그렇데 아직 아니다. 그 유한한 길이의 선분도 분해능을 제한하지 않으면 무한의 변수를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유한요소법'이란 것을 생각했다. 유한요소법은 문제를 유한의 변수로 해석하는 것이다. 유한의 변수이므로 그 차원은 바로 '0차원'인 것이다. 그럼 1차원은? 무한의 무한의 변수가 바로 1차원인 것이다. 즉 무한의 변수는 1/2차원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그럼 차원과 그리고 변수와의 관계는 아주 명확해지는 것이다. 그때 생각한 것은 이 우주에서는 가장 큰 수가 존재하는냐?의 것이다. 그건 가장 큰 것을 가장 작은 수로 나눈 수가 될 것이다. 즉 그 수는 아주 거대한 수이나 아마 정수일 것이다. 그게 정수가 아니면 그 나눈 수가 가장 작은 수라는 판단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소수 이하가 없이 정수로 나뉘어져야 진짜 가장 작은 수일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이 우주는 어떠한 표현을 한다고 하더래도 그 본질은 바로 '0차원'이라는 것이다. 0차원은 모든 임의의 차원이 가능하지만, 실제로는 그 본질은 바로 '0차원'이라는 것이다. 즉 '모든 임의의 차원을 시뮬레이션한 결과'라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우주 마저도 그것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 이 우주는 아무리 달리 보여도 실제로는 유함의 요소로 해석되어지는 0차원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 이 우주의 공간은 어떻게 존재하는가? 우리가 시공간이라고 한다면 공간을 결정하는 3차원의 3가지 요소에 시간이라는 또하나의 차원으로 본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게 사실일까? 이 우주의 동질성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것은 이 우주는 3차원의 공간과 1차원의 시간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2차원의 평면과 그리고 시간차원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 우주의 팽창의 원리는 허블이 상상한 등속팽창이 아니라 '등가면팽창'이라는 것이다. 그럼 우주는 초기에는 아주 빨랐다가 점점 더 늦어지는 팽창을 할 것이다. 그리고 팽창이 멈추는 일도 전혀 없다. 아인쉬타인은 이 우주에서의 중력의 효과를 너무 과도하게 생각한 것 같다. 우주의 초기 직후에도 이미 이 우주의 팽창속도는 '광속의 지평'을 넘고 있었던 것이다. 아인쉬타인의 물리학에서는 광속 이상의 속도에서의 물리학을 전혀 포함하고 있지를 않다. 또 광속이 변했다는 사실을 그냥 잊어버리려고만 한다. 아인쉬타인의 물리학의 핵심이 광속은 일정하다는 원칙을 고수하면서 이루어진 물리학이니 광속이 변하는 것이라는 것을 인정하기는 쉽지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 우주의 이해할 수 없을 정도의 균일성을 설명할 수 없어 우주 초기의 임의의 기간에 '인플레이션의 과정'이 있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그건 논리의 비연속성을 말하는 것이다. 자연은 절대로 그렇게 부자연스러운 것은 아닐 것이다. 광속이 변하는 것이라는 것을 그대로 인정하면은 불필요하고 그 부자연스러운 '인플레이션의 과정'이 필요없어지는데 말이다. 또 시간의 차원은 공간을 구성하는 1,2,3차원과 동일한 차원을 구성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시간에는 우리가 모르는 더 복잡한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이 우주는 처음부터 시간이 포함된 시공간인데, 그 초기는 시간이 생김으로해서 이 우주에서의 공간이 생겼다는 믿음이다. 즉 이 우주에서의 공간과 시간은 사로 절대적인 관계를 가지고 태어났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우주의 최대차원을 생각해 보앗는데 그 결과는 공간의 요소는 전혀 없는 시간만의 함수가 이 우주의 본질일지 모른다는 결론을 가지게 되었다. 즉 이 우주의 본질은 시간의 시간의 함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손대는 순간에 그 시간이 쪼개져서 시간과 공간이 생겨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현대물리학에서 다루는 '불확실성의 원리'는 바로 차원의 문제이다. 차원 그대로라면 그 차원은 우리가 이해하기 어려운 동시곤존의 시공간이나, 그것을 어느 물리적 현상으로 국한하면 그 공간은 우리가 보통 아는 물질계의 현상으로 바뀐다는 것이다. 그것이 이 우주에서도 그대로 반복된다. 우리가 이 우주를 알기로 하는 그 순간에 이 우주는 물리적 특성을 갖고 그대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본질은 바뀌는 것은 아니므로 이 우주의 본질은 처음부터 공간은 없는 시간만의 함수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즉 이 우주는 처음부터 빅뱅은 없었다, 그리고 이 우주는 이 우주의 공간 마저 다 사실은 다 허상이라는 것이다. 그럼 이 우주의 본질은 아주 고등차원의 존재의 손 안에 들린 작은 구슬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 큰 존재를 우리는 神이라고 부를 수는 있지만은, 그 존재는 우리의 이 우주를 한순간에 다시 도로 원위치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다 없어지고 다시 도로 원시의 초우주로 되돌아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초우주는 아주 작은 한점에 불과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럼 우리의 존재는 작은점의 작은점의 그리고 아주 작은점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신의 아주아주 작은 구성물이기도 할 것이다. 그럼 우리도 신의 한부분이라는 것이네? 아주아주 작지만은 그래도 우리도 신의 한부분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아주 작지만 그래도 신의 자신의 한부분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즉 우리도 신의 한부분이라는 것이다. 즉 우리는 신의 일부이자 또 신이라는 것이다, 아직 아주 작지만은 그래도 神이며 현상이라는 神의 피조물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본질은 모두 같은 神의 한부분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神이라고 해서 아주 완전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神의 속성상 神이 없어도 사탄은 존재하는 것이며, 또 神의 선에도 선이 없어도 악은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神도 발전과 진화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神도 피조물의 존재에게 의존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神의 존재에도 '예수'라는 존재는 필수라는 것입니다. '예수'라는 존재는 神도 神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피조물과의 필연의 관계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와 神서 神도 우리가 피조물이라는 한계를 벗어버리면 우리는 원래의 神의 본질로 되돌아갈 것이다. 그러니 神은 우리의 존재에 그렇게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이다. 그리고 神도 神의 부조리한 점이나 부족한 점과 적을 제거해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에게 아주 완전하지 않는 존재는 神에게도 제거해야만 하는 자신만의 창조의 부스럭지이니 말이다. 그래서 그것도 지금은 神은 이제 스스로 완전해지는 한 과정이라는 것이다. 神이라도 이제 자연이라는 환경은 처음부터 아주 완전해질 수는 없다는 자연의 원칙을 아주 완전히 거스릴 수는 없었을테니 말이다. 神도 자신의 성장을 위해서 창조의 부조리함을 스스로 제거해나가며 성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神도 우리를 통하여 진정으로 더 나아가며 성장해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神도 자신이 좋든 싫든지 간에 우리는 결국 우리는 神의 또 한 부분이며 또 그 부속물이지요, 즉 또 우리 인간은 神의 본질을 가진 또하나의 부속물이지요. 그래서 神도 자신의 조각인 우리를 통하여 우주를 순화하고 정화함으로 더 성숙해지는 것입니다, 神도 우리를 통해서 神과 우주와 그리고 우리를 포함한 모든 피조물들과 함께 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