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님께는 미안하지만 나는 법정 스님의 팬은 아니다. (물론 안티도 아니다.)
아내가 한국의 지인으로부터 받았는지 언젠가부터 용도를 정확히 알 수 없는 보 하나가 우리집 커피테이블 위에 놓여있다. 메시지 전달이란 미묘한 것이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 라는 말이 있기도 하지만 말이란 그 자체도 중요하고 어떻게 전달되느냐는 그보다 더 중요하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분명해야 한다. 분명하기 위해서는 말의 사용이 정확해야 한다. 정확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어느 정도의 룰은 지켜줘야 한다.
위의 글을 보자.
'맑음'이란 말이 주어로 나왔다. ...말하고, 까지 읽어보면 그것이 아 오늘은 하늘이 맑구나, 가 아닌 사람(마음)의 맑음을 가리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면, 청정 또한 맑음이란 말인데 맑음이 개인의 맑음을 말한다... 약간 갑갑해진다.
다음 줄의 향기로움... 도 어딘가 어색하지만 더 불편해지는 건 마지막 줄의 영향력 메아리, 다. 아, 이 영향력과 메아리를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 스님의 머리 속엔 아마 '영향력의 메아리'가 있었을 것이다.
스님이 뭐가 급했을까. 15초 안에 집어 넣을 광고 카피도 아닌데.
인문학이란 급한 마음을 자제하지 않고서는 가까이 갈 수 없다. 왜냐하면 인문학은 사고해야 할 것이 많기 때문이다. 깊은 사고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판자에 못 하나 힘껏 박아 넣는 실용과는 차원이 따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결코 접근 난망은 아니다. 가는 길이 실용과는 다르다는 말일 뿐이다.
대통령, 나아가서 정치인과 인문학의 관계를 말한 일이 있다. 대통령이 조금이라도 인문학적 소양을 가졌으면 하고 말했다. 세상을 편의(expediency)로만 보는 시각과 사고가 결국엔 나라를 망치고 말았다.
야당의 리더라는 정치인은 호남의 민심을 얻지 못하면 정계를 은퇴하겠다고 했다가 이제와서는 그것이 전략적 발언이었다고 둘러댄다. '전략'이란 말에 말바꾸기의 의미도 들어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조용한 마음으로 보면 누가 인문학적 소양이 있는지 알 수 있다.
말이 경솔한,
행동이 가벼운,
표정이 평화롭지 않은,
약속을 지키기 위해 내 이익을 과감히 버릴 줄 모르는,
사람이 얼마나 소중한지 모르는,
능력없는 내 사람들로 주변을 채우는 정치인들은 이제 떠나주었으면 좋겠다.
우리도 제대로 된 인간이 정치하는 나라에서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