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뜻 인터넷에서 본 것 같은데,
옆집사는 사람에게서 들은 이야기다.
일행과 산길을 가다가 고추 밭에서 고추 몇알 딸려고 손을 내밀다가
고추밭 주위로 쳐진 줄에 닿았단다.
아마도 전 날 내린 비가 다 마르지 않아서 대지를 타고 순식간에 감전 된 것 같다.
그 자리에서 심장이 멈추었는지 사망을 하였다.
440V의 전기가 흐르는 줄,
밭 주인은 멧돼지, 고라니등이 내려와 밭작물 망치는 것을 막으려고 밭 주위로 전기 전선망을 설치했다
길 가던 사람이 죽었다.
누구의 잘못일까
고추 몇개 딸려는 것이 죽을 죄인가?
농작물을 지키려는 농부가 죄인인가?
말 못하는 동물이 원인인가?
요즘은 환경단체가 동물의 생명, 종의 보존, 생태계 파괴...등등
많은 이유를 들어 산짐승마저 잡지 못하게 압력을 행사하고, 국가가 법으로 규제를 하고 있다.
이것이 원인이 아닐까
사람사는 세상에서,
사람의 생명보다 더 중요한 것이 산짐승, 들짐승, 수중 생물의 생명이 되었다.
사람의 생명은 후 순위로 밀렸다.
사람의 삶의 질은 아예 배제되고 있다.
환경운동가에 의해서
환경운동가
그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남성, 여성,
젊은 사람, 중년, 초노년
여하튼 활동력이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만의 눈으로만 보는 환경만을 생각하면 안될 것이다.
어린이, 노약자, 촌노, 심약자, 여린 여성...
무엇엔가 대항 능력이 없는 사람들, 또 생업으로 일하는 사람들,
우리의 이웃들이다.
이런 사람들도 자연을 즐기고, 이용하고, 사랑할 수 있는 권리는 있다.
헌데,
이런분들이 요즘은 환경보호라는 명목으로
생명의 위협에 노출되어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환경의 보존이라는 명분을 훼손시키고 싶은 생각은 없다.
하지만 환경보다도 사람의 생명을 우선시 해야 한다는 것이다.
평화롭게 산길을 가다가, 등산을 하다가
험악하고 배고픈 거구의 멧돼지를 만났을 때를 상상해 보라.
당신은 어떻게 처신할 것인가.
우리가 삶의 질을 양보하며 보살핀 멧돼지가 당신에게 돌진해 온다면,
그머리에 받히고 다리에 짖뭉개져서 목숨을 잃는 순간,
당신은 환경보존의 결과에 만족하며,
웃으며 죽어줄 수 있겠는가?
짜릿한 전류가 심장을 멈추게하는 순간,
당신은 누구를 원망할 것인가?
최소한 삶의 질은 양보를 한다지만
그것이 내 목숨과 내 이웃의 목숨을 위협한다면,
막아야 한다.
환경운동가,
당신은 사무실에 앉아서 법개정하며 환경운동하느라
얼마나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당신의 연로하신 부모, 당신의 귀여운 아들, 딸이
산에서 내려온 멧돼지 앞에서 바들바들 떨고 있다고 생각해 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