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알고 있는 중국 역사에 등장하는 이 씨가 몇 명 있지요.
노자로 알려져 있는 이이
한 무제 때의 장군이며 전세가 불리해져 흉노에 항복한 이능
이능을 변호하다가 격노한 한 무제에 의하여 사마천이 궁형을 받았지요.
그 후 등장하는 당나라를 세운 이연. 이세민 등의 당나라 황제들,
돌궐 사타부 출신 이존욱 등이 알려져 있고
이여송과 이홍장이 유명하지요.
이여송은 고려인의 후손입니다.
그러나 임진왜란 때 명나라 대군을 이끌고 온 이여송은 명실상부한 중국인 즉 명나라 사람이었지요.
아무도 이 사실에 대해 다른 의견 즉 ‘이여송은 고려인 후손이다!’고 주장하지는 않지요.
그런데 6국을 멸망시키고 중국을 통일한 후 강력한 군현제를 실시하여 중국이 계속해서 강대국으로 남게 한 인물 진시황에 대해서는 다른 주장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즉 ‘진시황은 동이족이다.’는 주장이 아직도 나오고 있지요.
그러나 이여송이 고려인 후손이지만 엄연한 중국인으로 받아들여진 것처럼
진시황 역시 동이족 후손이지만 엄연한 중국인입니다.
주의 무왕이 천자였던 상나라의 주왕을 공격하여 죽이고 중원을 차지하여 서주를 건국하였을 때 계속된 우환거리인 서융에 대비하기 위하여 주에 복속된 동이족 일부를 보냈지요.
이들이 훗날 견융의 침입으로 황폐해진 호경을 (장안, 오늘날의 서안)되찾고 수도로 하여 점차 발달하기 시작한 진나라의 선조들이지요.
다시 말하면 진시황은 동이족의 후손이지만 엄연한 중국인이었습니다.
예외는 김일제의 후손인 김알지이지요.
한 무제의 대대적인 공격으로 포로가 된 흉노 좌현왕의 아들이 한나라에 항복한 후 공을 세워 김일제가 되었고 계속 공신 대우를 받게 되었지요.
그러나 한을 멸망시키고 신을 건국한 왕망의 세력에 밀리게 되어 모든 것을 잃는 위기에 봉착하였지요.
물론 모든 후손들이 다 위기를 당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일부 후손들은 왕망 편에 섰거나 중립을 지켰겠지요.
아무튼 왕망에 반기를 들었던 이들에게는 중국을 떠나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여 생명을 이어갈 수밖에 없었지요,
그런데 왜 한반도의 오지인 사로로 이주하였을까요?
적어도 두 가지의 조건이 필요합니다.
김알지와 추종세력들이 흉노 말을 잊지 않고 있었다는 조건과 그 때 사로국의 중심 세력이었던 박 씨 일족과 석 씨 일족이 흉노족의 후손이었거나 밀접한 관계를 가진 종족이었다는 조건이 필요하지요.
즉 이주한 김 씨 일족과 받아들인 박 씨 및 석 씨 일족이 풍습, 종교, 말 등을 공유하였던 종족이었다면 가능한 이야기이지요.
실제로 이주가 일어났으니 위의 가설을 받아들이는 것이 합리적이지요.
한 편 삼국지에 나오는 김위 역시 김일제의 후손이지만 그대로 중국에 남았지요.